하나님의 백성들이 애굽을 탈출한 후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기까지 40년 동안 광야를 행진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수백만 명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예배하는 회막을 중심에 두고 동서남북 각 세 지파씩 나누어 정확한 자기의 위치와 역할과 사명을 가지고 행진하도록 하였습니다. 오랫동안 몸에 배어 있던 잘못된 노예의식을 벗어버리고 확실한 소속감과 예배 중심의 질서의식을 훈련하는 과정이 필요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를 위해서는 각 개인이 전체의 맥락과 연결되어 ‘하나 됨’을 이루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러한 신앙의 원리는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 함으로 모든 사람은 사망의 형벌 가운데 있습니다. 사망이라는 뜻은 하나님으로부터의 분리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최고의 형벌은 분리되는 것입니다. 죄인에게 주는 형벌도 분리되는 감옥에 넣는 것입니다.

마음의 고독도 분리되는 느낌의 고통입니다. 사망의 종이 된 인간의 삶에는 끊임없이 분리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원수마귀가 역사하면 항상 분리가 일어납니다. 행복해야 할 가정이 분리되고 이웃과 이웃이, 민족과 민족이 분리되고 교회까지도 분리됩니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분리된 것을 하나로 만들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엡2:13,14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고후5:18,19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예수님의 십자가로 ‘하나 됨’을 이루는 것이 올바른 믿음입니다. 교회는 이 ‘하나 됨’을 세상에 증거하고 누리는 곳입니다. 2002년 월드컵 때 한국의 응원은 ‘하나 됨’을 통해 어마어마한 힘을 증거하고 누렸습니다. 그러나 축구공으로 하나 되는 것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진정한 변화를 가져올 수도 없습니다. 영원하신 예수님, 우리 죄를 대신하여 화목제물이 되신 십자가의 희생과 사랑으로 하나 되어야 합니다.

십자가로 하나 됨을 이루는 특징은 언제나 약한 자에게 관심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마치 건강한 몸의 특징은 약한 곳에 관심이 집중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건강한 사람의 손에 가시가 박힌다면 그 사람의 관심은 다른 곳이 아닌 가시가 박힌 그 약한 손에 집중됩니다. 어떤 사람은 다른 곳은 다 건강한데 위가 약하다고 한다면 그의 관심은 위에 있게 됩니다. 이와 같이 건강한 교회, 예수님의 십자가로 ‘하나 됨’을 이룬 교회는 항상 약한 자에게 관심을 갖게 됩니다.

반대로 교회의 세속화, 신앙의 타락은 언제나 강한 자에게 관심을 집중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권세 있고 유명한 사람이 있다고 자랑하고 돈 많은 기업가, 힘 있는 사람에게 집중하는 교회는 분명히 잘못되고 있는 교회입니다. 또 교회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강한 힘을 사용하고 목소리를 높여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신앙의 타락입니다. 하늘나라의 진실한 영향력은 희생이며 섬김이어야 합니다. 만왕의 왕, 만주의 주 예수님은 가장 낮은 자리에 오셔서 우리를 섬기는 종이 되어주셨습니다.

이제 우리가 더 큰 은사를 사모하고 복을 구한다면 그것은 약한 자를 섬기고 내가 희생하며 사랑을 실천하기 위한 까닭이어야 합니다. 교회의 부흥이 약한 자를 섬기기 위한 하나님의 축복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