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5일자 The Washington Post는 단기선교 여행에 대한 기사를 실었습니다. 미국교회들 사이에서 단기 선교가 큰 유행이 되어 있으나 그 효용성에 의문이 있다는 것이 요지였습니다. 프린스톤 대학교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2005년 한 해 동안 미국에서 단기선교에 참여한 사람들 수가 160만명, 사용한 돈은 대략 60억 달러에 이른다고 합니다. 하지만 쏟아 부은 돈에 상응하는 효과를 거두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많다는 것입니다.

이 기사는 몇 가지의 예를 듭니다. 어느 단기 선교팀이 브라질에 있는 어느 고아원에 가서 축구장 벽을 세웠으나, 선교팀이 떠나고 나자 고아원 측에서는 그 벽을 다시 허물어 버렸습니다. 멕시코에 있는 어느 교회는 한 여름 동안 여섯 개의 서로 다른 선교팀이 찾아와 여섯 번이나 페인트를 칠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설사, 그 지역에 꼭 필요한 일을 했다 해도 문제는 여전히 있습니다. 캘빈 칼리지의 한 교수는 “2천 달러짜리 집을 짓기 위해 3만 달러를 들여 선교팀을 보낸다는 것이 도대체 이치에 닿지 않는다”라고 비판합니다. 결국, 단기 선교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선교사’(missionary)가 아니라 ‘휴가사’(vacationary)라고 해야 할 듯하다는 겁니다.

저는 멕시코 선교단에 합류하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 기사를 읽고 우리 교회에서 행하고 있는 단기 선교 여행에 대해 깊이 반성해 보았습니다. 멕시코를 향해 가면서 그리고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지켜 보면서 저는 이 기사의 내용을 계속 생각했습니다. “과연, 이 선교 활동의 효용성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를 고민하며 지냈습니다.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제 마음에는 이런 믿음이 들어찼습니다. “제대로만 행한다면, 단기 선교는 돈 값으로는 계산할 수 없는 고귀한 열매를 맺게 한다.” 단기 선교가 고귀한 열매를 맺으려면 사람을 만나는 것에 초점을 두어야 합니다. 만일 사람을 만나지 않고 페인트만 칠하거나 집을 고치고 오는 것으로 만족한다면, 차라리 그 비용을 송금해 주는 편이 나을 것입니다. 하지만 희망을 찾을 수 없는 이들과 만나 의미 있는 시간을 함께 나누는 것에 초점을 둔다면, 사정은 영 달라집니다. 영혼과 영혼이 진실하게 만날 때, 거기서 영적 사건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그 영적 사건은 3만 달러가 아니라 3백만 달러를 주고도 살 수 없는 일입니다.

이번 멕시코 단기 선교가 그러했습니다. 영혼과 영혼이 만나는 일에 최선을 다했고, 그로 인해 잊을 수 없는 일들을 경험했습니다. 단기 선교에 함께 참여했던 딸아이가 돌아온 후에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나도, 가기 전에는 굳이 이렇게 해야 하나, 도대체 열흘도 안 되는 날 동안 무엇을 할 수 있나, 혹은 그런 활동으로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나 싶어 회의적이었는데, 이제는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참 보람 있었고, 진실로 가치있는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고백을 듣고 저는, 눈에 보이고 수치로 계산할 수 있는 것 이상의 세계가 있음을 그 아이가 믿기 시작하는 것 같아, 마음으로 감사드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