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내리자마자 마중 나온 학교 관계자의 차를 타고 제일 처음 도착한 곳이 바로 학교 기숙사였다. 기숙사는 정말 작고 답답한 곳이었다. 문을 열자마자 바로 리빙룸이 있었는데 세발자국 정도 걸으니까 벌써 방이었고 두 발자국 걸으면 키친이었다. 화장실은 방에 붙어 있었는데 화장실 변기에 앉아보니 문과의 거리가 불과 1미터도 되지 않았다.

‘정말 공부 열심히 해야지’하는 남다른 각오를 다지며 처음엔 수도하는 마음으로 “그래 공부하려면 좋은 환경은 안돼” 이렇게 마음먹고 시작한 기숙사 생활은 만 8년여를 하게 되었고, 미국 와서 딱 3개월동안 중국타운에 살았던 것을 제외하면 나의 30대의 인생은 기숙사 인생이었다.

나는 항상 2층에 살았는데, 오랫동안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익숙해 진 것이 한가지 있었다. 바로 1층에서 2층으로 올라올 때 손잡이가 있는 문이었다. 처음엔 이 문이 너무 불편해서 건물 관리하는 사람에게 항의도 했었다. 도대체 이 문이 있어야 하는 이유가 뭐냐고.

주로 시장을 보고 손에 물건을 잔뜩 들고 올라 올 때면 그냥 한번에 나의 룸까지 왔으면 좋겠는데 꼭 여기서 한번 손에 든 것을 내려 놓아야 했다. 문을 열고 다시 시장 봐 온 장바구니를 들려면 기운이 얼마나 빠지던지.

어떤 때는 일부러 발로 차보기도 했었고, 저절로 닫히는 문이 야속해서 한쪽 발로 벽을 향해 힘껏 밀쳐 보기도 했었다. 어떤 때는 아예 끈을 가지고 와서 저절로 닫히지 못하도록 묶어 놓기도 했다. 그러나 그 다음날이면 건물 관리인에게 야단을 맞았다. 누가 이렇게 묶어 놓았느냐며 어김없이 다시 풀어놓고 문이 저절로 닫히도록 만들었다. 미국의 법은 안전을 첫째로 하기 때문에 사람의 불편보다는 안전을 원칙으로 한다고 한다.

법적으로 1층과 2층 사이에 자동문을 달아 놓아야 하며 이 문은 항상 닫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인 즉 1층에서 불이 나면 2층으로 번지는 불이 이 문에 막혀서 바로 2층으로 올라오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글쎄 불이 난다는 것이 내 평생 한번 있을까 말까 할 텐데 그 불 날 것을 대비하여 매일 내 손에 든 것을 내려 놓아야 하는 훈련이라니.

그러나 이것은 내 삶에 얼마나 큰 교훈을 주었는지 모른다. 만 8년 동안 대학교 과정, 대학원 과정을 거치면서 1층에서 2층으로 오르내릴 때마다 2층으로 오르는 관문에서 나는 항상 무거운 짐을 내려 놓는 연습을 했다.

이 훈련 때문이었을까? 이제는 내 인생의 문이 내 앞에 가로막고 있을 때에도 답답해 하지 않고 그 문 앞에 서서 내 손에 들고 있는 것을 내려놓을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마켓에서 이것 저것 찬거리를 사서 오늘은 엘리비이터를 타지 않고 일부러 비상 계단쪽으로 올라와 집 문 앞에서 짐을 내려놓으며 미소를 지어본다. 8년이란 긴 시간을 훈련시켜 준 ‘문’이 이제는 감사하다. 이 문은 내 삶 속에 불이 날 때를 대비해서 날 훈련시켜 주었던 고마운 문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