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파트 같은 층에 마주보는 위치에 거주하시는 어느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살고 계셨답니다. 일이년을 이웃에서 살면서 엉겁결에 몇 번을 지나치다보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 할아버지의 마음에 앞집 할머니가 들어오더라는 겁니다. 그러던 어느날, 이 할아버지께서 그 할머니를 찾아가 청혼을 했답니다. 그리고 돌아와 며칠 동안 대답을 기다리는데, ‘가만... 그 할머니가 “Yes” 라고 했는지, “No”라고 했는지 도무지 생각이 나질 않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벙어리 냉가슴 앓듯 며칠을 끙끙거리다 어느 날 용기를 내어 다시 그 집 벨을 눌렀습니다. 너무나 조심스럽게 “내가 그 날... 당신한테 구혼을 했는데.... 뭐라 하셨는지...” 그랬더니 그 할머니 말씀 “안 그래도 누군가 나한테 청혼을 했는데 그게 누군가..? 하고 고민 중이었다” 했더랍니다.

교인이라는 명찰을 달고 다니면서도 수시로 잊고 지내는 교인들의 신앙생활에 대한 ‘건망증’을 향해 일침을 가한 비유일 것입니다. 지난 주일 설교 제목을 아십니까? 한번 손들어 보세요. 교인들은 자기를 지적하여 목사님이 물어 보실까? 고개를 숙입니다. 지난주에 어떤 설교를 했을까? 아무리 생각을 쥐어짜도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한 가지 아는 것은 지난 주일에 예배에 참석했다는 것입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한 주간이 아니라 사실 주일 예배를 마치고 교회당 밖으로 나가는 순간부터 잊어버린 것입니다. 왜냐구요? 우리가 할 일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내 수중에서 해야 할 일이 자꾸 보이는 것입니다. 그것을 좇아가는 것입니다. 전화 온 것을 체크하고 전화해야 지요. 가정에서 오늘 할 일이 있고 직장에서 바쁘게 일을 하고 집에 오면 신문 읽지요. 식사하고 뉴스 봐야지요. 바쁘게 삽니다. 그 중에 무슨 하나님의 임재라던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내가 살아야지 하는 생각이 떠올릴 시간조차 없는 것입니다. 당신만 그러세요? 아닙니다. 우리가 거의 다 그렇지요.

설교 제목은 잊어도 됩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을 깜빡하고 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한 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입니다. 죄 때문에 죽는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세 가지 죽음이 있다고 말합니다. 육체적 죽음, 영적 죽음, 영원한 죽음입니다. 죽음은 ‘분리’를 가리킵니다. 육체적인 죽음은 우리의 육체와 영혼의 분리입니다. 영적인 죽음은 하나님과 인간의 분리입니다. 영원한 죽음은 하나님과의 영원한 분리, 천국으로부터의 영원한 분리인 지옥행입니다.

인간이 하나님께 죄를 지음으로 이 세 가지 죽음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그 누구도 예외 없는 모든 인간의 비참한 형편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고 세 가지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육체적으로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십자가상에서 완전히 죽으시고 삼일 동안 무덤에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상에서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습니다. 영적 죽음입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그러나 하나님이 삼일 만에 예수님을 살리셨습니다.

예수님을 믿으세요. 구원받습니다. 예수님을 붙잡으세요. 천국으로 옮겨집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이 세가지 죽음으로 부터 구원함을 받았습니다. 그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이 세 가지 죽음에서 세 가지 생명으로 바뀌어졌습니다. 영적인 죽음에서 다시 살아났습니다. 이것을 중생 혹은 거듭남이라고 말합니다. 육체적인 죽음에서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이것을 부활이라고 합니다. 영적인 죽음에서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이것을 영생이라고 합니다. 당신을 생명으로 초대합니다. 꼭 잊지 마세요. 예수는 당신의 구원자이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