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부모님을 뒤로하고...
2003년 8월 약 한 달간의 동유럽 집시선교 사역의 현장을 답사하고 잠시 귀국을 해서 본격적인 집시선교 사역을 위해 준비하는 동안 종종 사보 다니엘 목사님께서 한국으로 전화를 주셨다. 언제 헝가리로 올 것인지 그리고 헝가리에서 월세집을 비롯해서 무엇을 준비해야 할 것인지 등 한국에서는 파송을 준비하고, 헝가리에서는 사역을 위한 베이스가 준비 중에 있었다. 두 달간의 준비를 마치고 10월 초에 주파송교회인 김제신광교회에서 파송 예배를 드리고 그달 22일 다시금 집시선교 사역을 위해서 가족과 함께 헝가리에 발을 딛게 되었다.

헝가리로 오기 전날 밤 늦게까지 짐을 싸고 잠깐 잠이 들었는데 어느새 새벽이 되었다. 일찍 새벽 기도회를 마치고 다시금 가정예배를 드리고 난 후에 출국을 위해 부모님께 큰 절을 드리고 나니 아버지께서 “겸손함으로 선교에 최선을 다하라”고 당부의 말씀을 해 주셨다. 이어 총신대 신대원 선배 목사님이 교회 차량으로 인천 공항까지 실어다 주시기 위해서 부모님 댁으로 차가 왔고 부모님과 함께 인천공항으로 향하였다. 아직도 잠이 덜 깬 만 세 살이 되지 않은 예원이가 인천공항까지 가는 동안 내내 차량 안에서 할머니의 품에 안겨 잠을 자고 있었고 부모님은 큰 자식 가족을 선교현장으로 보내시면서 많은 생각으로 차창 밖을 바라보고만 계실 뿐 아무런 말씀이 없으셨다. 우리 부부 역시 죄송한 마음으로 많은 이야기들을 할 수 없었다.

동유럽 집시선교 사역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분명 소명을 주셨고 그 소명에 순종하기 위해서 동유럽 집시선교의 현장으로 떠나는 발이 그리 가볍지만은 않았다. 나에게는 밑으로 남동생 둘과 여동생 하나, 모두 결혼을 하여 분가를 했는데 두 남동생은 일찍이 캐나다로 이민을 가서 살고 있었고 여동생 역시 매제의 근무지가 북경이다보니 실은 형제들 모두가 부모님을 떠나 해외에 살고 있는 형편이었다.

과거에 선교사의 꿈을 갖고 함께 선교훈련을 받았던 동료들이 선교현장으로 떠날 때면 나에게도 그런 바램이 있었는데 그때에 부모님께 해외 선교현장으로 나가고 싶다는 뜻을 말씀드리면 아버지는 “너는 목회자이기에 국내에서 목회를 할 수 있고 아니면 선교를 하더라도 국내에서 하면서 너 하나라도 내 곁에 있어라”라고 늘 말씀을 하셨던 터라 부모님을 남겨두고 떠난다는 것이 그리 마음이 가볍지만은 않았다. 로마서 10장15절 말씀에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선교현장으로 떠나는 우리의 발은 참으로 무겁기만 하였다.

인천공항에서 친인척 되시는 분들이 환송을 나와 주셔서 인사를 나누는 동안에 출국 수속을 하고 난 후에 입국장으로 들어서게 되었다. 입국장으로 들어설 때에 뒤를 돌아보니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시면서 선교를 위해 떠나는 우리 가족을 배웅하고 계셨다.

내가 초등학교 5학 년 때에 시골 마을에서 전주로 학업을 위해서 전학을 하였던 적이 있었다. 그 당시에 고입부터 시험이 있었고 또한 좋은 대학으로 진학을 위해서 부모님께서는 어린 나를 혼자서 전주로 보내셨던 것이다. 전주에서 학교를 다니면서 두어 달에 한 번씩 시골집에 가서 하숙비를 위한 쌀을 가지고 다시금 전주로 돌아오곤 했는데 내가 탄 버스를 보내놓고는 버스 뒤에서 늘 손을 흔드시던 그 어머니의 모습을 생각해 보았다. 그때에도 늘 안타까운 모습으로 두 달 후면 다시 볼 아들을 생각하시면서 버스를 보내시곤 하셨는데 이제는 국내도 아닌 해외로 선교라는 큰 뜻을 위해서 어머니는 다시금 우리를 보내셔야 하셨던 것이다.

30시간의 긴 여정 끝에 도착한 헝가리
우리가 탄 비행기는 러시아 항공이었는데 출발 전에 모스크바에서 환승을 하면서 두 시간이 연착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약 10시간의 비행으로 모스크바에 도착을 하였고 환승시간과 대기 시간 합쳐서 약 5-6시간을 공항 환승구역에서 기다리는데 지금도 생각해 보면 10월 중순의 모스크바 공항이 얼마나 추웠는지 그리고 앉을 만한 자리조차 없어서 그저 비행기에서 가지고 내렸던 신문지를 바닥에 깔고 앉아 기다려야만 했다. 그 뒤로 헝가리행 비행기에 올라 다시금 두 시간 정도 흐른 뒤에 부다페스트 공항에 내렸는데 새벽 1시 쯤 되었다. 김제 부모님의 집에서 출발해서 부다페스트까지 무려 약 30시간 정도 걸린 긴 여정이어서 모두가 파김치가 다되었다. 짐을 찾아 밖으로 나와 보니 사보 다니엘 목사님과 헝가리 개혁교회 목회자인 락촉 안드랴스 목사가 기다리고 계셨다.

검정 중절모에 반코트를 입으신 다니엘 목사님은 미리 꽃다발을 준비하셔서 도착한 우리에게 주시면서 아내의 손등에 입맞춤으로 환영을 해 주셨다.

부다페스트에서 다시금 선교사역지인 샤로스파탁까지 차량으로 이동을 하는데 마침 우리가 헝가리에 도착한 줄을 아시고 미국에 계시는 작은 아버지이신 최 정진 목사님이 전화를 다니엘 목사님의 핸드폰으로 주셨는데 “긴 여정으로 고생이 많았다”는 이야기와 다니엘 목사님께는 “최 목사를 헝가리에서 잘 부탁을 드린다”는 라는 대화를 나누시고는 우리 아이인 예원이와 통화를 하게 되었는데 “엄마, 아빠와 헝가리에서 선교 열심히 잘해라”라고 하시는데 전화 통화를 하던 예원이가 아주 큰소리로 우는 것이었다. 아마도 예원이가 만 세 살이 되지 않은 어린 나이였지만 어린 마음에 이곳이 자기가 살던 곳이 아닌 낯 설은 곳이라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두어 시간을 더 달려서 샤로스파탁에 도착하니까 어느새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그리고는 다니엘 목사님이 거처하시는 선교연구소에서 우리 모두는 곧장 깊은 잠에 빠졌고 정오가 되어서야 눈을 뜨게 되었는데 창밖을 내다보니까 새벽녘에 볼 수 없었던 눈이 언제부터 내렸는지 흰 눈이 소복하게 내려 있었다. 집시선교의 현장으로 오기 위해서 만 하루가 넘는 여정에 피로와 추위 등 결코 쉽지가 않았다.

선교강국의 이면에는 가족의 눈물이...
한국세계선교 연합회가 낸 지난해의 자료에 의하면 세계 168개국의 나라에서 선교사역을 하고 있는 한인선교사의 수가 17,600명에 달한다고 보고하고 있다. 21세기의 세계선교를 주도하고 있는 한국교회의 모습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세계 곳곳에서 선교사역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한국교회의 파송선교사님들 역시 정든 가족을 두고서 선교현장으로 떠날 때에 내가 경험했던 그러한 심정으로 떠났으리라 생각이 든다.

오늘도 세계 각처에서 한국교회 선교사님들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명하셨던 지상명령(the Great Commission)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지키게 하라...”(마 28:19-20)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음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