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체조선수의 꿈을 가지고 88 올림픽 금메달을 목표로 훈련하던 한 소년은 훈련 도중 공중에서 회전을 하다 사고로 턱을 땅에 부딪쳐 사지마비 장애인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이 소년은 절망에서 벗어나 장애를 가진 이들을 치료하는 의사가 됐다.

장애인의 날을 맞아 세계 최고의 병원으로 꼽히는 존스홉킨스 병원에서 ‘슈퍼맨 닥터 리’로 알려진 이승복 교수의 간증집회가 뉴저지 올네이션스교회(담임 양춘호 목사), 리버사이드교회(담임 브라이언 리 목사), 지구촌교회(담임 김두화 목사)에서 26일과 27일 양일간 열렸다.

‘기적은 당신 안에 있습니다’는 주제로 열린 간증집회는 참석한 이들에게 감동의 눈물을 선사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꿈과 희망을 다시 깨닫는 귀한 시간이 됐다. 특히 미주 밀알 선교단에 참여하는 장애인들과 그들의 가족들이 이번 집회를 통해 새로운 도전을 얻게 됐다.

1973년 미국에 이민 온 이승복 교수에게 가족은 살아가는 힘의 원천이었고 지켜야 할 소중한 보금자리였다. 화목한 가정을 위해, 부모에게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고자, 또한 조국을 위해 체조선수의 꿈을 가지고 펼친 맹렬한 연습은 비극을 낳고 말았다.

이 교수는 “어릴 적부터 체조가 좋았다. 마루에 서면 펄펄 날았다.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강행했던 체조이기에 하루 종일 공중에서 뛰고 구르기를 반복하며 나는 더 열심히 했다. 부모를 위해 사랑하는 조국을 위해 금메달을 목에 걸고 싶었다. 그러나 1983년 7월 4일, 공중회전을 하다가 목을 쭉 늘어뜨린 상태에서 턱을 땅에 박고 말았다. 바닥에 떨어지는 순간 온 몸의 퓨즈가 끊어진 듯 했다. 몸을 움직이라고 신경계로 명령을 내렸지만, 사지마비라는 청천벽력같은 선고를 받고 말았다. 다시는 체조를 할 수 없다는 사실에, 올림픽의 꿈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에 사실에 절망했다”고 회상했다.

사고 후 그는 좌절 속에서 방황하며 오랜 기간 재활 치료를 받으며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됐다. 그러나 이승복 교수는 주저 앉지 않았다. 대학을 다니며 우연히 네비게이토 리더를 만나 복음을 듣고 자신의 꿈을 되찾게 됐다.

이 교수는 “나의 꿈을 잃게 만든 분노의 대상을 내 삶의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1983년에 시작된 꿈이 1993년 10년 만에 다트머스 의대에 합격하며 이뤄졌다. 긴 시간동안 좌절하고 포기하지 않았다. 반드시 이뤄질 것이라 믿었다”며 “내가 사랑하는 가족들과 나를 믿어주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나는 이겨내야 했다”고 밝혔다.

합격 후 이 교수의 삶은 철저히 공부위주로 갔다. 2001년 다트머스 의대 수석 졸업, 2004년 하버드 인턴 과정 최고 인턴으로 선정, 2005년 존스홉킨스 병원 재활의학과 수석 전문의가 된 그는 존스홉킨스 병원에서 ‘슈퍼맨 닥터 리’로 많은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있다.

그는 “의사라는 꿈은 나의 제 2 올림픽 금메달에 대한 도전이었다”며 “나의 등장이 존스홉킨스 재활 병동의 활력소가 됐다. 한때 나를 절망과 슬픔으로 몰아넣었던 장애가 지금은 많은 사람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있다. 나의 장애는 더 이상 단점이 아니다”고 강조한다.

이 교수는 “앞으로 끊임없이 도전하며, 또 다른 꿈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며 “내게 불가능이란 말은 해당되지 않는다. 다만 희망은 꿈꾸는 자의 것이라는 진리만이 있을 뿐이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