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의 여성들이 평생을 남성의 그늘 아래서 기본적 권리를 박탈당한 채 ‘법적 미성년자’로 살아가고 있다고 국제 인권감시단체가 지적했다.

미국 뉴욕에 본부를 둔 휴먼라이츠워치(HRW)는 사우디 여성 1백여명과의 최근 인터뷰를 토대로 한 ‘영원한 미성년자’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21일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사우디는 여성에 대한 ‘남성 보호자’의 역할을 법적으로 규정해 놓고 있어서 여성들은 아버지, 남편, 아들 등 남성 보호자의 허락 없이는 결혼하거나 취직할 수 없으며, 심지어 학업, 여행, 병원 치료와 관련해서도 이들 남성들의 결정을 따라야 한다.

자녀를 입학시키거나, 자신 또는 자녀의 명의로 은행 계좌를 개설하는 것, 소송을 걸거나 법정에서 증언하는 것도 남성 보호자의 동의 없이는 불가능하고, 운전을 하는 것은 꿈과 같은 이야기다.

뿐만 아니라 남성 보호자가 동행하지 않으면 여성 전용구역이 없는 공공기관에 발조차 들일 수 없어 자연스럽게 교육과 근로의 기회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

남성 보호자의 허락이 불필요한 상황에서도 권리를 제한 당하는 경우도 있다. 최근 사우디 정부는 45세 이상의 여성이 남성 보호자의 서면 동의서 없이도 여행할 수 있도록 허가했지만, 공항 관계자들은 여전히 이를 요구하고 있다.

보고서는 “사우디의 성인 여성들은 서양의 유아들이 누리는 것보다도 못한 법적 권리를 누리고 있다”며 “이곳 여성들에게 성인이 된다는 것은 권리는 없이 책임만 생기는 것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한편 이는 사우디뿐 아니라 대부분의 이슬람 국가들에서 여성들이 겪고 있는 현실이라는 것이 보고서의 지적이다.

지난해 말 사우디 법원은 윤간을 당한 19세 소녀에게 남성 보호자 없이 낯선 남성을 만났다는 이유로 태형과 징역형을 선고했다가 국제적 비난에 직면하자 사면 조치를 내렸다. 이 사건은 사우디를 비롯해 이슬람권의 여성 인권 문제에 국제사회가 눈을 돌리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지난 2006년 중동 8개국 8천명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갤럽 조사 결과 정작 이들 대다수는 인권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거나, 남녀평등은 이슬람권 발전에 도움이 안되며, 서양적인 가치라고 믿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