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막에 검은 색소의 반점이 생겨 주변시력을 점차 잃게 되고 점점 중앙으로 진행되어 작은 중심시력만 남다가 결국 전체 시력을 잃게 되는 망막색소변성(Retinitis Pigmentosa)이라는 불치병에 걸린 정 씨는 치료에 한 가닥 희망을 걸고 온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왔다. 이민 올 당시 정 목사는 30도 범위 정도의 물체들만 인지할 정도의 시야를 가지고 있었다.

그 이후 물 설고 낯선 이국 땅에서 아내 정효숙 사모는 바느질과 세탁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자녀들은 학업을 계속하는 가운데 정 씨의 시야는 한해 한해 점점 좁아져만 갔다.

시력을 완전히 잃기 2, 3년 전부터 정 목사는 사회생활을 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어 집에서 혼자 성경을 깊이 있게 읽기 시작했다.

무미건조한 신앙인에서 하나님과의 뜨거운 교제를 갈망하는 흥취나는 신앙인으로 탈바꿈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후 4:7-10)”

그 당시 정 목사 부부에게는 아픔을 함께 하는 친구들이 있었고, 그들과 더불어 기도모임 및 중보기도 사역이 시작됐다. 정 목사가 목회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은 이런 신앙의 여정 가운데 자연스럽게 일어났다. 주위 많은 분들의 권면과 도움이 있었다.

드디어 최고령의 늦깎이 신학생이 되어 개혁장로회신학교(박의훈 학장)에 입학했다. 눈이 되고 다리가 되는 정 사모도 물론 함께였다. 밤낮없이 동행해서 목사를 내조하는 사모를 본 대학 학장은 한 사람의 학비로 부부가 함께 공부하는 것을 허락했다.

시력을 온전히 잃을 수도 있다는 절망감에 빠지지 않기 위해 정 목사는 시력이 남아있을 시 점자를 배우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던 터였다. 그러다 시력을 완전히 상실해 점자를 알지 못하므로 읽고 쓰는 능력이 결여된 정 목사는 신학생 시절 3년 내내 모든 수업을 녹음하고 그 녹음된 강의를 수없이 듣고 또 들었다.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남다른 기억력으로 인해 다행히 수업을 따라갈 수 있었다. 또한 수많은 성경구절들이 정 목사의 머리 속에 입력됐다.

그러나 이렇게 신학을 공부하면서도 정 목사 내외는 처음부터 교회 개척을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공부하는 3년간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환경은 정 목사가 목사고시를 보도록 흘러갔다. 2006년 5월 보스턴에서 총회고시를 본 후 지난해 3월 노회고시 및 6개월의 인턴십을 통과하고 드디어 목사가 됐다.

작년 9월 자택에서 “예수 선교”를 뜻하는 “예선장로교회”의 창립예배를 하나님 앞에 감격스럽게 드렸다. 산호세 임마누엘 장로교회 손원배 목사가 설교를 드렸으며 70-80명이 거실과 부엌을 발 디딜 틈 없이 매웠다.

정 목사 부부는 “많은 교회들이 있지만 연약한 자들의 어려움을 위해 목회하고자 하는 마음이 굳혀졌다”고 밝혔다. 정 목사가 늘 마음에 품고 있는 것은 “노인 선교”다. 여기에는 정 사모의 경험에도 빚진 바 크다. 정 목사 내외가 신학공부를 하던 마지막 해 엘에이에 살던 정 사모의 친정 어머니가 매우 병약해 지셨다. 다른 자녀들이 없는 것은 아니나 유달리 아끼던 딸인 정 사모와 마지막 날까지 함께 있고 싶으셨던 어머니 앞에서 정 사모는 마음의 큰 아픔을 겪을 수 밖에 없었다.

정 목사의 수발을 들고 함께 신학공부를 하던 정 사모는 어머니의 시중을 들기 위해서는 이 모든 것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기도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일을 택하도록 정 사모의 마음을 이끄셨다. 정 사모는 꿋꿋이 정 목사와 동행했으며, 친정 어머님은 돌아가시기 전 2달간 양로병원에 계시다가 조용히 운명하셨다.

“교회, 교파, 종파를 초월해서 홀로된 외로운 노인 분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고 말동무가 되어드리기 원합니다. 이런 분들이 모이면 무엇보다도 고맙습니다” 정 부부는 이런 분들을 위해서 손수 차로 모셔서 함께 예배 드리고 밥상공동체를 경험하기 원한다. 또한 같은 생각을 가진 동역자도 찾고 있다.

정 목사 내외는 이미 많은 중보기도 사역을 진행하고 있다. 화요일, 금요일, 주일 여러 교회 교인들이 모여서 함께 기도모임을 가지고 있다. 홀로 험난한 이민생활을 이어가는 여성도 등 마음이 아픈 분들을 위해서 기도하며, 자녀와 가정문제로 고통을 받는 이들과 기도로 아픔을 나눈다. 또한 선교사역을 위해서도 꾸준히 기도한다.

찬송, 말씀, 기도, 교제로 이어지는 기도모임에서는 성령님의 강한 역사로 말미암아 새 힘을 얻고 심령이 회복되는 하나님의 은혜가 내린다. 정 목사가 기도할 때 많은 이들의 심령이 감동받고 따뜻해진다.

이러한 정 목사의 사역에서 정 사모 또한 없어서는 안될 역할을 담당한다. 비서처럼 정 목사와 24시간 동행하며 정 목사를 알뜰살뜰 보조한다. 또한 상담에의 은사가 있어서 찾아오는 여성분들에게 따뜻한 사랑이 담긴 상담을 제공한다.

정 목사 부부는 소속 교회를 초월해서 많은 이들과 사랑의 교제를 나누기를 원한다. “우리 교회 등록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다만 많은 이들이 크리스천으로서 행복한 삶을 살기를 바랄 뿐입니다. 정말 살아계신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인터뷰 내내 행복한 미소가 끊이지 않던 정 목사 내외는 곧 결혼 35주년을 맞으며, 슬하에 1남 1녀와 3명의 손주를 두고 있다. 넉넉지 못했던 삶에 힘들었던 자녀들도 하나님의 축복으로 인해 아무런 원망 없이 아버지와 어머니를 크게 사랑하고 존경하며, 딸 내외는 재정적으로, 며느리는 기도로 돕고 있다.

가정의 축복 외에 하나님께서는 밝고 밝은 마음을 정 목사 부부에게 선물로 주셨다.

나날이 시력이 사라지는 어두운 현실 가운데 쉽게 절망했을 법도 한데, 정 사모는 “갑자기 시력을 잃었더라면 큰 충격을 받았을 터인데, 서서히 진행되어서 마음의 준비시간이 있을 수 있었습니다. 시력을 잃고도 몇 년간은 시간을 물어보는 등 남편이 못 본다는 사실을 종종 깜빡하곤 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정 목사 또한 맹인으로서의 목회의 어려움에 대해서 묻자, “어렵다고 생각하고 시작한 것이니 당연하게 받아들입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정 사모는 한술 더떠 “정상인은 교인이 적으면 기가 죽는데, 목사님은 ‘사람이 많다’고 생각하면 되니까 편한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정 목사는 시력을 잃은 후 더 긍정적, 적극적이 되어서, 눈이 보일 때는 못질도 못하던 이가 이제는 고장 난 카세트를 직접 분해해서 고치려고 시도할 정도다.

다가오는 4월 13일은 정 목사 부부의 예선장로교회에 있어서 매우 뜻 깊은 날이다. 정 목사가 혼자서도 이동이 용이하도록 자택과 교회가 붙어있는 그런 공간을 원했는데, 집 뒤에 별채가 붙어있는 맞춤형의 공간을 하나님께서 적절한 시기에 허락해주신 것이다. 이에 13일 오후 4시 새롭게 이전한 교회(18549 Cox Ave. Saratoga CA 94070)에서 이전예배를 드리고자 한다. 참석을 희망하는 이는 직접 본 교회를 찾아가거나 아래의 연락처로 연락하면 된다.

연락처: 408-206-6696, 650-961-49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