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당하시는 예수님을 묵상하다가 침묵의 영성을 배웠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헤롯이 예수님에게 여러 말로 물었을 때 주님은 아무 말도 대답지 아니하셨습니다. 고난주간을 맞이해서 한 주간 동안 다른 때보다 말을 조금 아꼈으면 합니다.

우리는 마을 하지 않고 살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침묵의 중요성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헨리 나우웬은 “침묵은 내면의 불꽃을 지켜준다”고 말했습니다. 침묵은 영성 훈련에 있어 아주 중요한 훈련입니다. 침묵할 때 우리는 내면의 성령님을 잘 모실 수 있습니다. 바울은 “성령을 소멸치 말라”고 권면합니다. 우리 삶 속에 성령님의 불꽃이 점점 약해지는 때는 말을 너무 많이 할 때 입니다. 말을 많이 하면 우리 내면의 불꽃이 약해집니다. 내면의 불꽃이 약해질 때 우리는 차가워집니다. 냉랭해집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최우선 과제는 내면의 불꽃을 충실하게 돌보는 것 입니다. 그때 우리는 길 잃은 사람들에게 빛을 제공 할 수 있습니다. 마치 등대와 같이 빛을 비추어 줄 수 있습니다. 또한 추운 여행객들에게 따뜻함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포티키의 디아도쿠스는 침묵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중기탕의 문이 계속 열려 있으면 안에 있는 열은 급속히 그 문을 통하여 나가 버립니다. 마찬가지로 영혼도 많은 것을 말하고 싶은 욕망 때문에 말문을 통하여 하나님에 대한 기억을 상실하게 됩니다. 그 모든 것이 아무리 좋은 말일지라도”

우리 내면의 따뜻함을 지키는 길은 침묵입니다. 입은 증기탕의 문과 같습니다. 입이라는 문을 통해 우리 내면의 따뜻함이 새어 나갈 수 있습니다. 우리 내면의 불꽃을 꺼트리는 것은 외부의 고난이 아닙니다. 바로 말 많은 불신앙입니다. 고난 중에도 하나님을 궁극적인 승리를 믿는 사람은 침묵할 줄 압니다. 상황에 휘둘리거나 사람들의 조롱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비방을 받으셨습니다. 업신여김을 받으셨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희롱했습니다. 조소를 퍼부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침묵하셨습니다. 그들을 용서하셨습니다. 아주 중요한 몇 마디만을 남기신채 십자가에서 목숨을 거두셨습니다. 그 몇 마디가 우리가 사순절 때 마다 묵상하는 가상칠언(架上七言)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의 고통 중에 침묵하실 수 있었던 까닭은 하나님의 궁극적인 승리를 믿으셨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살리는 말은 침묵으로 부터 나온 말입니다. 풍성한 열매를 맺는 말은 침묵으로 부터 나옵니다. 그리고 다시 침묵으로 돌아가도록 도와줍니다. 침묵의 세계로 들어가도록 도와주는 말은 보배로운 말입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침묵 중에 나온 말씀을 만날 때, 우리는 그 말씀을 붙잡고 침묵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우리가 침묵하는 이유는 영원히 말을 하지 않기 위함이 아닙니다. 침묵하는 이유는 소중한 말을 하기 위함입니다.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말, 침체된 영혼을 소생시키는 말, 상처 받은 마음을 치유하기 위한 말을 하기 위해 침묵하는 것 입니다. 특별히 고난주간 동안에는 침묵 중에 예수님을 묵상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