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5월 26일. 승욱이는 빛도 보지 못하는 1급 시각장애아로 태어났습니다. 한국에서 서울 대학병원을 다니며 의사 선생님이 한 살 전에 볼 수 있다는 말을 하나님이 주시는 말로 듣고 열심히 병원을 다녔지만, 한 살이 될 때까지 전혀 앞을 보지 못했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세계 어디를 가도 승욱이의 눈을 못 고친다고 했고 저는 부모님과 첫아들을 데리고 미국을 오게 됐습니다. 미국에는 친정 언니가 살고 있었습니다. 승욱이가 UCLA 안과에서 진료를 받는 과정에서 의사의 오진(녹내장)으로 눈이 많이 망가져 왔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미국 의사선생님의 권유로 각막이식수술을 18개월 때 받게 되었지만 시기가 너무 늦어 수술은 실패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한국으로 돌아가려고 준비 하는 중에 승욱이가 전혀 듣지 못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귀도 듣지 못하고 앞도 보지 못하고 말도 못하는 아이를 데리고 도저히 한국으로 돌아갈 수 없어서 미국에 남게 되었습니다. 저희 집안은 5대를 이은 믿음의 가정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그러실까....’묻고 또 물었습니다. 무엇을 그리 잘못하고 살았는지, 뭐가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건지.... 한 번도 하나님께 원망하지 않고 여기까지 왔는데 승욱이만 잘 키우면 그 일이 하나님께서 제일 기뻐하시는 일인 줄 알았습니다.

승욱이가 못듣는다고 했을 때 식구들 모두가 깊은 슬픔에 빠졌고 사람들 앞에선 가식처럼 믿음이 있는 양 아무렇지 않게 행동했지만 너무 아팠습니다. 이러한 깊은 절망감에 빠져있을 때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하나님은 인격적으로 날 만나 주셨습니다. “너는 나의 것이다. 그럼 승욱이는 누구의 것이냐”라고 주님이 물으셨습니다. 그리고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라는 위로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때의 감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언제나 승욱이는 내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 나를 발견했었습니다. 그렇게 주안에서의 자유함을 얻은 후 언니가 살고 있는 이웃의 미국 할머니의 도움으로 승욱이가 학교를 가게 되었습니다. 의료 혜택도 받게 되어 안정적으로 미국에 정착할 수 있었습니다. 승욱이는 곧바로 보청기를 끼우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3년 동안이나 보청기를 의지해서 소리를 들어보려 했지만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빛조차도 보지 못하기 때문에 밤낮을 모르는 엉망인 생활을 했습니다.

(다음에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