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에서 발을 붙이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명제 때문에 한 두번씩 숙연해질 때가 있다. 내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 이 명제는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명제이기 때문에 자신의 선택에 따라 그 결과는 판이하게 달라지게 된다.

일반적으로 기독교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야뉴스의 두 얼굴같은 이중적인 상황속에서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내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느냐는 명제 앞에서 혼돈을 느낄 때가 자주 있을 것이다.

우선 이 땅의 시민으로서 감당해야할 책임과 의무를 외면할 수가 없다, 주어진 책임과 의무를 감당하지 못한다면 시민으로서의 자격을 상실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기독교인들의 시민권은 하늘나라에도 있다(빌3:20)그러기 때문에 하늘나라 시민으로 지켜야할 책임감과 의무감도 성실하게 감당해야 된다. 두 종류의 시민으로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그 균형은 잘 유지해 나가야 할 지혜가 필요할 것이다.

또 우리가 사람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사람의 냄새가 날수밖에 없다. 사람의 연약성 때문에 실망하기도 하고 좌절하기도 한다. 또 자주 넘어지기도 하고 실수를 저지른다. 동시에 사람이기 때문에 남에게 상처를 주고 아픔을 안겨주기도 한다. 사람의 연약한 냄새를 들어내면서 살아가야 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기독교인들은 사람냄새를 풍기면서 살지만 그리스도의 냄새를 같이 풍기면서 살아가게 되어 있다. 그리스도의 냄새는 남에게 위로를 주고 격려하고 마음을 평안하게 해주는 남을 배려하는 삶이요 보여지는 삶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감동적인 영향을 끼치는 생활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상반되는 두 가지의 삶의 현장속에서 어느 쪽에 좀 더 무게를 둘 것인가를 선택해야 될 것이다.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인 눈으로 볼 때 좀 더 가치 있고 영원한 쪽이 더 중하지 않을까?

성경은 보이는 이세상은 풀과 같고 안개와 같다고 가르쳐주고 있다. 풀은 얼마못가서 시들어지고 말라지게 된다. 안개도 마찬가지다. 햇빛이 비치면 사라지고 만다. 이 땅의 시민으로 살고 사람의 냄새를 풍기며 살아가지만 하늘나라의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고 그리스도의 냄새를 풍기면서 살아갈 수 있는 길도 있다. 그렇다면 어느 길을 선택할 것인가 하는 것은 내가 선택해야 할 과제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