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지나치면 해로운 것이 인생입니다. 단맛을 내는 설탕이나 간을 내는 요긴한 소금이라도 지나치면 여러 성인병의 원인이 됩니다.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한다지만, 지나치면 오히려 몸을 해칩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나친 신앙을 광신이라고 합니다. 교육에 있어 부모의 관심과 보살핌은 절대적인 요소입니다.

그러나 지나친 보호는 해치는 교육이 될 수 있습니다. 독립심과 자립정신을 약하게 합니다. 책임감과 결단력이 결여됩니다. 이기적이고 반항적인 자녀로 만들 수 있습니다. 원만한 인간관계나 사회생활에 장애가 됩니다. 사람구실을 평생 못하고 부모 그늘아래 사는 불행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과잉보호는 절제되지 못한 사랑에서 나옵니다. 자식을 위한다는 명분아래 자식의 인생을 망칠 수 있는 무지입니다. 과잉보호 보다는 방목하는 교육이 진정한 자녀 사랑임을 아시는지요?

방목하는 교육철학은 자유와 한계를 가르치는 교육입니다. 소를 방목한다고 주인이 무제한 자유를 허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울타리를 세워 그 안에서 자유롭게 합니다. 한계가 없는 자유는 방종이 되며, 자유가 없는 한계는 독재가 됩니다. 방목하는 교육에 있어 울타리는 책임감입니다. 도덕과 바른 정신입니다. 정직을 바탕으로 하는 깨끗한 인격입니다. 바른 신앙심입니다. 인생의 지혜와 행복은 자신의 한계를 알며 자유를 누리는 것입니다.

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자유는 훈련을 통해 이뤄집니다. 진정한 자유는 원하는 것을 택하는 것이 아닙니다. 택해야 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의지입니다. 진정한 자유는 순진이 아닌, 순결한 인격을 만듭니다. 부모의 보호 아래 순진하게 자란 아이가 사회에 나가서 유혹에 쉽게 빠지는 이유를 아시나요? 과잉보호로 순진하고 착한 아이를 키울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선악을 구분하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유혹에 쉽게 빠지게 됩니다. 순진은 악에 대해 무지한 것입니다. 반면, 내면이 순결한 아이는 선악을 분별할 뿐 아니라, 선을 선택해 악에서 자신을 지킵니다. 울타리 안에서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하고, 책임지는 훈련을 받은 자녀만이 성숙한 자유인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이를 위해 방목하는 교육은 ‘실패를 허용’ 합니다. 과잉보호는 부모의 욕심을 아이에게 요구하는 것입니다. 무엇이든 더 잘 해야 하고, 이겨야 하고, 앞서야 하고. 낙제하면 안 되고, 늦으면 안 되고, 물들면 안 되고.... [누구의 기준이죠?] 아이로 아이처럼 스스로 생각하며 선택하며 실수를 통해 깨닫고 배우면서 자라도록 '방목' 하는 기회가 아쉽습니다. 그러다가 성적이 떨어지면, 유혹에 빠지면, 다치면.... 어떡하냐고요? 그 마음 잘 이해합니다. 그래서 부모가 자녀 대신 나서서 결정해주고, 선택해주고, 물어주고, 갚아주고.... 그래야 맘이 편하죠?

갓난아이나 유아를 위해서는 부모가 당연히 해줘야겠지만, 부모마음이 편하기 위해 언제까지 자녀 대신 다 하시렵니까? 자녀 행동과 선택보다, 정신세계[울타리]를 바르게 세우는 일에 중점을 두는 방목교육을 하시기 바랍니다.

아이가 나이를 먹는 것만큼 울타리를 넓혀주시기 바랍니다. 잘못 선택하고 종종 넘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실수와 잘못임을 스스로 곧 깨닫게 됩니다. 홀로 설 줄 아는 성숙한 성인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씩씩한 아들, 남자다운 남자, 강한 사람으로 자랄 것입니다. 인생에 있어 실패는 끝이 아니라, 성숙을 향한 시작과 과정에 불과합니다. 훌륭한 인물은 박식한 자가 아닙니다. 확신과 바른 정신의 소유자입니다. 큰 인물은 보호라는 온실에서 자라지 못합니다. 실패하고 넘어져도 스스로 일어서야 되는 넓은 광야에서 자라게 됩니다. 방목 교육은 정신교육입니다. 인물을 키우는 교육입니다. 우리 민족과 교회와 세계의 역사를 써가는 미래 지도자를 키우는 교육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