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발 835m의 느보산은 출애굽 여정의 마지막 도착지이다. 40년 동안 광야에서 방랑 생활을 청산하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던 가나안으로 들어가기 직전에 모세는 이곳에서 가나안 땅을 조망하고 숨을 거두게 된다. (민 21:20, 23장, 신 4:49) 느보산은 성경의 ‘여리고 맞은편 비스가산’ 과 동일한 장소로 히브리어로 ‘비스가’ 란 ‘꼭대기’ 라는 의미이다.

출애굽 이후 가나안으로 진군해 들어오던 이스라엘 백성은 아모리 족속의 온 지경을 점령하고 이 지역에 머물러 살기를 원했던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에게 요단 동편 지역을 분배해 주게 되는데 느보는 르우벤 지파에게 분배됐다. (민 32:3,38 대상5:8) 기원전 9세기 모압 왕 메사의 비문에 의하면 느보읍은 그때까지도 이스라엘 도시였다. 그런가하면 성경은 느보가 모압 도시였다는 보도를 남기고 있다. (사15:2 렘48:1,22)

1933년 시야가 산이 바가티 지휘하에 발굴이 시작된 이래 1935년, 1937년에 수도원 모자이크를 발견했다. 고고학적 발굴에 따르면 기원 후 4세기 말엽 비잔틴 시대에 모세 기념 교회가 시야가 산 정상에 세워졌으며 교회는 각종 새와 동물이 새겨진 모자이크로 장식됐다. 6세기 후반에 첨가된 새 예배당에는 무덤 터가 파괴된 후 그곳에 새로운 침례소가 설치됐는데 대략 597~8년경에 건설됐다. 현재 느보산 정상에는 모세의 무덤 위에 처음 세웠다는 교회 터가 다시 복원돼 있으며, 1932년에 세워진 프란체스칸 수도원이 자리하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모세 무덤이 이곳에 있었다고도 한다. 초대 기독교인은 이곳을 순례하거나 수도원을 짓기도 했다. 물론 느보산 또는 비스가 산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으며, 이 산맥 한 지점인 것만은 분명하다. 느보산 모세 기념교회 앞 공터 전망대에서 살펴보면 멀리 사해와 여리고 지역이 눈에 들어온다. 날이 맑은 날은 그 시야가 더 넓게 펼쳐져 예루살렘 감람산 지역까지도 식별이 가능하다. 이곳 정원에는 이탈리아 피렌체 조각가 지오바니 판토니 작품이 세워져 있다.

이것은 모세가 시내광야에서 뱀에 물린 사람을 살려내기 위해 만들었다는 놋뱀과, 인류 구원을 상징하는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를 복합시킨 의미 깊은 작품으로 모세를 거역했던 이스라엘 민족의 범죄를 인해 불 뱀에 물려 죽은 사건의 상징물이다.(민1:6-10) 시야가 교회 왼쪽으로 있는 둥근 언덕은 브올의 아들 발락이 발람에서 모압 평지에 있던 이스라엘 자손을 향해 저주를 퍼부어 달라고 요청 했던 곳으로 알려져있다.

신3:25절에 보면, 모세가 이곳에 도착해 가나안 땅을 조망하면서 하나님께 조용히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를 드리는 모습을 연상하게 된다. “구 하옵나니 나로 건너가게 하사 요단 저편에 있는 아름다운 땅 아름다운 산과 레바논을 보게 하옵소서.” 그러나 하나님은 모세에게 “그만해도 족하니 이 일로 다시 내게 구하지 말라 너는 비스가(꼭대기)산에 올라가서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그러나 너는 요단을 건너지 못하리라.”고 하셨다. 하나님과 함께 걸어왔던 지난 40의 생활이 여기서 막을 내리게 되는 것이다.

이 장면에서 우리는 가슴이 시리도록 서러움과 고통이 바닷 물결 같이 밀려온다. 얼마나 가고 싶어 했던 땅인가! 40년 동안을 광야에서 그렇게 고난의 세월을 보냈는데 말이다. 그러나 므리바 사건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죄는 돌이킬 수가 없었던 것이다.

우리도 때로 하나님 말씀보다는 나의 의지와 고집대로 교회를 치리하거나 성도를 다스릴 때가 얼마나 많은가. 느보산 정상 비스가에 오를 때마다 모세를 생각하며 다시 한 번 가슴을 여미어본다. 내가 조금 무엇이 됐다고 해서 하나님 앞에 오만방자하고 경거망동하지 않았는가? 만일 내가 지금 무엇이 돼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것이고 하나님께서 받으실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드리는 기도는 부메랑처럼 응답 없이 되돌아 올 것이 분명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