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함의 미학’
한국복음주의협의회 회장인 김명혁 목사의 목회 철학을 이보다 더 잘 대변하는 말을 찾을 수 있을까. 그는 언제 어떤 자리에 있더라도 약하고 작은 이를 잊지 않았고, 한국교회를 향해서도 늘상 “예수님처럼 약하고 착한 영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가슴을 치며 호소해 왔다. 그리고 그같은 그의 목회 철학은, 이제 일선 목회에서 물러난 지금 오히려 더 굳건해지고 있다.

지난 1월 13일 강변교회 담임직을 은퇴했던 김명혁 목사의 행보가 화제다. 큰 집회에 나서거나 파격 발언을 한 것도 아닌데 본인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전국을 넘어 세계 각지까지 입소문이 퍼지며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다름아닌 그가 은퇴 직후 시작한 ‘작은 교회 순회’ 때문이다.

손수 운전하고 선물 준비해 용기 북돋워
김명혁 목사는 전부터 마음에 두고 있던 교파를 초월한 ‘작은 교회와 소외된 교회 돌보기 운동’을 은퇴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34년이라는 긴 목회 여정 끝에 한 은퇴였지만, 작은 교회를 향한 그의 열정과 애정은 꺾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시작으로 그는 국내외 각지 작은 교회를 찾아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사례비 없이, 손수 운전을 하고 선물까지 싸들고 다니며 격려하고 용기를 북돋는다.

김명혁 목사 정도 되는 유명 목회자가 작은 교회 순회에 나섰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전화통에 불이 났다. 거의 매일같이 설교 부탁이 들어와 이미 상반기 일정의 거의 다 차는 등, ‘은퇴 목사’라는 말이 무색할 지경이 돼 버렸다. 그에게 연락을 하는 이들은 모두 각양각색 이유로 김 목사를 초청하지만, 하나같이 하는 이야기가 있다. “정말 저희같이 작은 교회에 오셔서 설교해 주실 수 있습니까?”. 물론 그의 대답은 언제나 “Yes”다.

▲김명혁 목사가 어린이에게 손수 준비해 온 선물을 나눠주고 있다. ⓒ고준호 기자

하지만 걱정이 되는 점도 있다. 바로 작은 교회 목회자 하나하나를 만나며 피부로 체감하는 좌절감 때문이다. 그는 “작은 교회가 대형교회를 보는 시선이, 마치 대형 마트와 동네 구멍가게를 보는 것 같다”며 “(작은 교회는 대형교회를 향해) 좌절과 절망의 마음을 넘어 분노까지 가지고 있다”고 탄식했다.

작은 교회 가진 애환, 가슴으로 함께 울어
그가 작은 교회를 찾아다니며 하는 일은 사실 많지 않다. 그저 조용히 설교를 전하고, 손수 마련해 온 선물을 나눈다. 또 각 교회가 가진 슬픔과 애환, 분노를 묵묵히 들어주고, 가슴으로 함께 울어준다. 그러나 단지 그것만으로, 좌절과 절망에 빠져 있던 많은 교회이 큰 위로를 얻고 있다.

충북 단양 사지원교회 송경화 목사는 “강변교회는 김명혁 목사님을 잃었지만 우리는 김명혁 목사님을 얻었다”반겼다. 1월 말 방문한 필리핀 선교지는 모처럼 수많은 성도가 몰려 활기를 되찾았다. 이밖에도 무기력에 빠져 있던 많은 교회가 그의 방문 소식에 흥분과 소망을 되찾고 있다.

김명혁 목사는 자신도 예상치 못했던 뜨거운 환대에 날마다 감사함으로 교회를 찾아다니고 있다. 지금껏 그가 다닌 곳이 벌써 강원도, 충북, 필리핀, 중국 등에 이른다. 그는 “나를 필요로 하는 작은 교회와 선교사를 찾아 다니면서 저를 위로하고 격려와 사랑의 손길을 펼 생각을 하니 신이 나기도 한다”며 피로조차 느끼지 못하고 있다.

김 목사는 이 작은 교회 순회에 대해 “부족한 자에게 주님과 주님의 교회를 섬기며 달려갈 수 있는 마음과 건강과 여건을 마련해주시는 하나님 은혜와 사랑이 크로 놀라울 뿐”이라며 앞으로도 묵묵히 이 사역을 감당하고 싶다는 희망을 피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