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오는 7일(목)은 우리 민족 명절중 가장 큰 명절인 설날입니다. 지난 주간 신문을 보니 중국에서는 100년 만의 폭설로 교통이 두절돼 열차가 운행을 못하는데도 설을 고향에서 지내려는 수많은 사람이 며칠씩을 기차역에서 노숙을 하면서 기차가 다시 개통되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기사를 읽었는데 설날이 우리만이 아니라 중국에서도 일년중 가장 큰 명절임을 다시 알 수 있었습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오늘을 설날 주일이라고 이름하고 한복을 입고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린 후에 모두 함께 떡국을 나누어 먹고, 교회 어르신께 세배를 드리는 시간을 갖습니다. 작년에 보니 아이들이 아주 열심히 어른께 세배를 드리는 것을 보고 마음이 흐뭇했습니다. 어떤 분은 아이들이 돈을 주니까 돈 때문에 그런다고 하지만 저는 꼭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사실 아이들에게 얼마나 많은 돈을 주고, 또 아이들이 받으면 얼마나 큰 액수의 돈을 받겠습니까? 아이들이 신이 나서 세배를 드리는 것은 물론 세배돈때문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지만 왠지 그러한 우리 문화와 전통을 우리 아이들도 좋아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금년에도 아이들이 세배를 하면 세배 돈이나 과자도 주시고 곁들여 좋은 새해 덕담도 해 주시기 바랍니다. 세배를 마치고 나면 제 4남선교회에서 준비한 윷놀이와 다른 몇 가지 설날 놀이가 친교실에서 이어지는데 모두 참석해서 설날의 흥겨움을 함께 나누시기 바랍니다.

설날이 되면 아침에 일어나서 설빔으로 준비된 새 옷을 입고 집안 어르신들께 새해 인사로 세배를 드리면, 세배 돈과 함께 한해를 살아가는데 교훈이 될 만한 덕담을 받고난 후, 평소에 먹어보지 못한 맛난 음식으로 가득한 아침상에 둘러앉아 온 가족이 떡국을 먹던 풍성한 아침이 기억됩니다. 아침을 마친 후에는 동네 집을 차례로 돌면서 동네 어르신께 세배를 하면 집집마다 준비한 과자며 사탕을 세배 돈과 함께 받는 즐거움으로 한나절이 가득하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동네 세배를 돌다가 길에서 다른 아이를 만나면 서로 자기가 받은 것을 자랑하면서, 어느 집에 갔더니 뭘 주더라는 중요한 정보(?)를 얻게 되면 그 집을 향해 걸음을 재촉하던 생각이 납니다.

한나절이 지나 마을을 한 바퀴 돌고나면 남자 아이들은 연을 가지고 동네 뒤 언덕으로 모여 연날리기 시합을 하고, 여자 아이들은 마당 넓은 집에 모여서 널뛰기를 하며 아침나절 집집마다 돌면서 받아 주머니 속에 가득한 과자며 사탕 부스러기들을 연신 먹는 통에 그날 저녁은 아무리 맛있는 반찬이 가득해도 입맛이 영 없었던 기억이 납니다. 아마도 이런 설날에 담긴 아름다운 추억들이 오늘을 설날 주일이라 정하고 한복을 입고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린 후 떡국 먹고 세배하고 윷놀이를 하게 하는가 봅니다.

그런데 올해는 이런 설날에 담긴 여러 가지 그리움들 가운데 우정 섣달 그믐날이 생각이 났습니다. 섣달 그믐날, 그러니까 설날 바로 전날에 대한 추억도 우리가 어디에서 누구와 살았는지, 또 사는 형편이 어떠했는지에 따라 사뭇 다르겠지만 그래도 모든 사람들이 다 함께 기억하는 추억은 바로 섣달 그믐날에 목욕을 한 기억이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도시에서 살던 분들은 동네의 큼직한 공중목욕탕엘 가서 정식(?)으로 때를 밀며 목욕을 했을 테고, 저처럼 시골 에서 살던 사람들이야 사실 공중목욕탕이란게 이 세상에 있는 줄조차 몰랐으니까 그렇게 정식으로 목욕하는 것은 상상도 못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섣달 그믐날이 되면 목욕(우리 동네에서는 목간이라고 했습니다)을 했습니다. 부엌에 걸린 솥 중에 가장 큰 가마솥에 물을 끓인 후 부엌 바로옆 광(창고같은 공간)안에다가 집에서 제일 큰 다라(크고 넓은 그릇)를 놓고 그 속에 뜨거운 물을 분 다음 찬물을 섞어 목욕하기에 적당한 온도를 만든 후 다라 속에 허리를 구부리고 다리를 움츠린 채 들어가서 얼마동안 있으면 어르신이 등에다가 따뜻한 물을 부으면서 몸 여기저기 묵은 때를 벗겨내는 것이 시골의 목욕이었습니다.

도시의 커다란 공중목욕탕에서 목욕을 하던 것과 시골의 작은 광속에서 다라에 물을 담아 쭈그리고 앉아 몸을 닦아 목욕을 하던 것과는 목욕을 하는 방법에 있어서는 비교할 수조차 없을 만큼 아주 크게 달랐지만 섣달 그믐날 몸을 닦는다는 의미는 아마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몸 구석구석에 붙어있는 때를 벗기고 가쁜하고 상쾌한 몸과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하듯 지난해의 여러 가지 아픔과 상처, 염려와 걱정들을 벗겨 버리고 깨끗한 몸과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하자는 의도는 목욕의 방법에 상관없이 같았을 것입니다.

올해 설날을 맞이하면서 시대와 시절에 따라 설날을 맞이하고 지내는 풍습은 변할지 모르지만 설날에 담긴 의미는 그래도 이어졌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 봅니다. 나흘 후로 다가온 설날을 기다리며 어린 시절 어느 해였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시골 집 부엌 옆 작은 광안에서 다라에 따뜻한 물을 채우고 그 속에 허리를 구부리고 다리를 움츠리고 들어가 목욕하던 때가 많이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