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사실상 사형제폐지국가에 들어섰다. 김영삼 정부 말기인 1997년 12월 30일에 23명 범죄자를 사형 집행한 이후 10년 동안 단 한명도 집행하지 않아 국제 엠네스티가 부여하는 명예를 부여받았다.

30일 2시 국회의사당 본청 앞에서 열린 사형폐지국가 기념식에서는 64마리 비둘기를 날려 보냈다. 이는 현재 사형을 선고받고 집행을 기다리고 있는 64명 사형수를 상징한다.

이날 행사에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권오성 총무, 천주교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인 최기산 주교,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장 고은태 교수, 국회 행정자치위원회 유인태 의원 등 종교, 인권, 시민단체 관계자가 참석했다.

10년간 사형집행이 이뤄지지 않은 것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 공헌이 크다. 1980년 신군부에 의해 사형을 언도 받았다가 간신히 석방된 김 전 대통령은 당선 때부터 사형을 집행하지 않겠다고 공언했었다. 결국 본인도 2004년이 되서야 무죄 판결을 받았다.

김 전 대통령은 퇴임 이후에도 강연과 기고 등으로 사형제 폐지에 노력해 온 것에 대해 국제엠네스티로부터 지난달 감사패를 받기도 했다. 사형제 폐지 당위성을 스스로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노무현 정부도 그 같은 정신을 승계해 지금에까지 이르렀다.

세계적인 추세도 이미 사형제 폐지로 흐르고 있다. 법률상 사형을 폐기한 사형폐지국가는 88개국에 이르며 사실상 사형 폐지 국가와 전범 등 일부에 한해 사형을 유지하는 ‘일반범죄 사형폐지국가’ 등을 합하면 128개국이 이에 동참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아예 가입 조건에 사형제 폐지를 내걸고 있다.

하지만 소위 선진국이라고 공언하는 미국, 일본, 싱가포르와 중국 등이 사형제를 유지하고 있어 국제사회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일본은 올해만 10명 사형수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실질적 사형제폐지는 해당 국가에 도덕적 자격을 부여할 뿐 법적인 구속력은 갖고 있지 않다. 하지만 사형집행을 하게 될 경우 정부에 가중되는 부담감은 굉장히 크다. 얼마 전 통과한 유엔 사형제폐지 모라토리엄 결의안도 이 같은 역할이다. 유엔 수장인 반기문 사무총장이 매년 각 국가 사형 집행 현황을 총회에 보고해야 하기 때문에 거론 될 때마다 해당 국가는 국제사회 지탄을 면치 못할 예정이다.

한국은 이미 15대. 16대에 이어 17대 국회에도 국회의원 절반이 넘는 175명이 ‘사형제 폐지법안’을 공동 발의해 어느 때보다 사형제를 폐지시키겠다는 의지가 강하지만 실질적으로 여전히 구체적인 ‘액션’ 취하지 못한 채 국회서 잠자고 있다.

국민적 여론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아직은 사형제를 없애자는 의견에 저항이 크기 때문에 국회의원이 쉽사리 강하게 밀어붙이지 못하는 면이 없지 않다. 내년 총선 이후 국회가 대폭 재정비 되면 발의안 효력도 자동 폐기되기 때문에 폐지를 촉구하는 이들 심정은 다급하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사형제 존치를 주장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혹시나 하는 우려를 떨치지 못하고 있다.

한편 한국기독교사형폐지운동연합회(대표 문장식 목사)는 24일 코리아나호텔에서 ‘실질적 사형제폐지 범 기독교 감사예배’를 드리기로 결정했다. 김삼환 목사(명성교회)가 설교를 맡았으며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도 참석을 요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