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세상은 불신이 팽배하여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는 사회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안타까운 현상이 교회와 기독교계내에서도 일어나고 있슴이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입니다.

예수님은 현장에서 간음하다가 잡혀온 여인에게 돌을 던지고자 하는 이들에게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하셨습니다(요8:7). 예수님의 이 말씀 한 마디에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 한 마디가 그토록 살기등등하던 사람들의 마음을 녹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손에 쥐고 있던 돌멩이를 땅바닥에 버리고 하나 둘 다 사라지게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능력과 권위가 교회 지도자들에게 없습니다. 참으로 부끄럽고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 모든 것은 교회 지도자인 우리들이 자초한 일입니다.

그러다 보니 어른이 없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언제부터인지 그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노인은 많지만 어른은 없는 세상, 스승은 많지만 아비는 없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가르치는 사람은 많지만 보여주는 사람은 없는 세상입니다.

지식은 많지만 인격은 보이지 않는 그런 세상이 되어서, 권위가 없습니다. 마땅히 권위가 있어야 할 사람들에게서 권위를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순종을 안합니다. 뭐라 한마디라도 하면 이러쿵 저러쿵 불평하는 소리가 많습니다.

그러나 사도행전 5장에 나오는 바리새인 교법사 가말리엘은 어른이었습니다. 바리새인 중의 최고 어른으로, 바리새인들을 가르치고 존경받는 위인이었습니다. 일찌기 사도바울도 가말리엘에게서 교육을 받았습니다. 가말리엘은 말에 권위가 있는 어른이었습니다.

대제사장과 율법사들이 사도들을 잡아죽이려 했을 때, 그가 등장합니다. 사도들을 잠깐 밖으로 나가게 했습니다. 그리곤 조용히 말하기를 ‘이 사람들을 건드리지 말라.. 만약 하나님에게서 온 사람이라면 너희들이 어쩌겠느냐?’ 고 한 마디 하였습니다.

그때까지 크게 노하여 잔뜩 흥분해있던 바리새인들이 그 한마디에 입을 닫았습니다. 아무도 토를 다는 사람이 없이 모두가 말 한마디 없이 그의 말에 순종했습니다. 그의 말은 곧 법이었습니다. 요란스레 들끓던 이들을 한마디로 잠재울 수 있는 카리스마가 있었습니다. 그는 교계의 어른으로, 보기 드문 어른입니다. 어른다운 권위가 있는 어른입니다.

어른다운 어른을 보기 드문 지금 모델링이 되는 어른으로 그에게는 정확한 판단력과 분별력, 그리고 사태를 정확히 꿰뚫어볼 줄 아는 직관력이 있었습니다.

그는 사도들을 잠깐 나가게 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해야 할 말과 다른 자리에서 해야 할 말을 구분할 줄 알았습니다. 그 또한 정확한 분별을 할 수 있게 하는 지혜입니다. 젊은 사람들은 흥분하기 쉽고, 감정에 따라 격한 반응을 보이기 쉽습니다. 하지만 어른은 흥분하기 쉬운 상황에서 흥분하지 않았습니다. 감정에 따라 휩쓸리지 않고, 냉정히 이성적으로 분별할 줄 알았습니다.
가말리엘은 상황을 설명하고, 권면할 줄 아는 어른이었습니다.

우리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때론 어른의 자리에 있을 때가 있습니다. 스스로는 언제까지나 젊다고 생각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는 건 어쩔 수가 없습니다. 본의 아니게 어른의 자리에 설 때가 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어른이 되어야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땐 정말 어른다운 어른이 되어야 합니다.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감정을 절제할 줄 알아야 합니다. 냉철한 이성으로 분별력 있게 말할 줄 알아야 합니다.

실리보다는 원칙을 말할 줄 알고, 편법보다는 법대로 하도록 강권하기도 해야 합니다. 그런데 끝까지 편법을 써서라도 힘있는 자리에 있길 원하고, 돈을 들여서라도 내가 원하는 것을 얻고 있습니다.

편 가르는 일을 엄히 꾸짖어야 할 어른이 오히려 편 가르는 일에 앞장서느라 바쁩니다. 그러다 보니 존경할 만한 어른이 없다는 소리가 나오는 것입니다. 이러니 교회에서 범죄자를 치리하려고 하면 다른 교회로 옮겨가 버립니다. 그리고 그 교회에서 어떤 징계를 내렸던 ‘나와 상관없다’는 식입니다.

나는 이미 그 교회 교인이 아니라고 오히려 큰 소리 칩니다. 그리고 옮긴 교회에서 자중하는 것이 아니라 더 활개짓 하고 나댑니다. 이러니 존경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문제가 발생할 때 조용히 기도하며 ‘내가 못나서 이런 일이 생기게 되었노라’ 회개하고,‘내 욕심이 일을 이 지경까지 이르게 했노라’ 자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어른다운 어른이고, 그래야 권위가 있는 어른이 됩니다. 권위적이어선 안되지만 권위는 잃어선 안됩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앞에선 마냥 어린아이입니다. 그러나 어른의 입장에 서야 할 때 바르게 설 수 있도록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어른의 자리에 서야 할 때 어른다운 어른, 권위가 있는 어른이 되어야 합니다.

선한 일 하려고 하다가 선하지 않는 사람이 되는 우를 범하지 마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