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합2:3)
"통일이 정말 가능할까요?"

태평양 건너 미주의 이민 교회와 북한 선교의 척박한 현장에서 지난 19년 동안 눈물로 씨를 뿌리며 수없이 마주했던 질문입니다. 특히 최근 들어 이 질문은 더욱 무겁고 시리게 다가옵니다. 고도화되는 북한의 핵 개발, 차갑게 얼어붙다 못해 끊어져 버린 남북 관계, 그리고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국제 정세의 소용돌이 속에서 통일은 점점 더 아득한 신기루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분단 이후를 살아가는 젊은 세대에게 통일은 거추장스러운 외침이 되었고, 급기야 "통일이 우리에게 꼭 필요한가요?"라는 냉소적인 질문이 자연스러운 상식이 되어버린 시대를 우리는 지나고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 깊은 '통일 피로 시대'의 겉잠에 빠져 있는지도 모릅니다.
돌이켜보면, 한때 우리 민족의 가슴을 뛰게 했던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눈물의 노래가 있었습니다. 학교 교정마다 통일을 염원하는 글짓기 소리가 울려 퍼졌고, 제단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한 눈물의 기도가 성도들의 호흡과도 같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세월의 두께만큼 통일은 현실의 지평에서 멀어졌고, 어느새 분단은 공기처럼 익숙한 일상이 되었으며, 통일은 빛바랜 교과서 속에 갇힌 박제된 단어가 되어버렸습니다.
특히 다음 세대에게 통일은 '경험의 영역'이 아닙니다. 그들에게는 포성이 울리던 전쟁의 공포도, 피붙이를 목놓아 부르던 이산가족의 피눈물도, 삼팔선이 가로막은 분단의 생생한 고통도 직접 겪지 못한 타인의 서사일 뿐입니다. 그들에게 통일은 가슴으로 느끼는 '기억'이 아니라 머리로 습득하는 '정보'이며, 살아가야 할 '현실'이 아니라 역사책 속 먼지 가득한 '옛이야기'에 불과합니다.
그렇다면 이 메마른 가을 같은 시대에, 우리는 왜 다시 통일을 말해야 합니까?
세상은 여전히 통일을 '정치의 영역'으로만 제한하려 합니다. 화려한 정상회담의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고, 복잡한 국제 외교 협상 테이블 위에서 거물급 정치인들의 결단이 내려지면 어느 날 아침 도둑처럼 통일이 찾아올 것이라 믿습니다. 물론 정치와 외교의 문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인류 역사의 거울을 비추어볼 때, 진정한 민족의 통합은 차가운 제도와 법조문만으로 이루어진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독일의 통일 역시 결코 하루아침에 일어난 기적이 아니었습니다. 장벽이 무너지기 훨씬 전부터 차가운 장벽 너머로 수많은 이들의 기도가 흐르고 있었고, 오랜 시간 서로의 마음을 보듬는 인내의 세월 속에서 신뢰의 핏줄이 먼저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정치는 그저 이미 열려 있던 마음에 제도의 옷을 입혔을 뿐입니다.
한반도의 운명 역시 이 영적 법칙에서 결코 예외일 수 없습니다.
통일은 어느 날 예고 없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정치적 사건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랜 시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눈물로 무릎을 꿇고 준비된 '사람들'과, 그 사랑을 받아낸 '공동체'의 토양 위에서만 피어나는 거룩한 생명의 과정입니다.
지나온 19년, 발길이 닿는 북한 선교의 현장마다 뼈저리게 깨달은 한 가지 절대적인 진리가 있습니다. 통일은 화려한 국회의사당의 정치인들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통일은 거친 골방에서 이름도, 빛도 없이 북녘 땅을 가슴에 품고 밤이 새도록 눈물로 기도하는 평범한 성도들의 무릎 위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저 차가운 동토의 주민들을 향해 끊임없이 사랑의 손길을 펴는 교회, 낯선 남한 땅에 들어온 탈북민들을 가족으로 섬기는 성도들, 거실에서 자녀들에게 눈물 어린 민족의 역사와 하나님의 눈물을 가르치는 부모들, 그리고 쇠창살 없는 감옥에 갇힌 북녘 동포들의 영혼을 단 한 순간도 잊지 않고 기도의 향연을 올려드리는 숨은 헌신자들. 그 거룩한 눈물방울들이 모여 얼어붙은 한반도의 가시밭길을 생명의 옥토로 바꾸어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통일은 아직 오지 않은 막연한 미래형(Future)이 아닙니다. 통일은 지금 이 순간 우리 가운데 살아서 역사하는 엄연한 현재진행형(Present Progressive)입니다. 이미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택하신 신실한 종들의 삶의 자리마다 통일의 주춧돌을 놓고 계십니다.
우리는 흔히 통일을 거대한 체제와 이념의 승패로만 바라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선이 머무는 성경은 언제나 거대한 구조보다 '한 사람'을 먼저 주목합니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서 관심을 가지시는 것은 세상이 그어놓은 서슬 퍼런 군사분계선이 아니라 그 땅에 숨 쉬는 아파하는 '사람'이며, 차가운 제도가 아니라 피로 값 주고 사신 천하보다 귀한 '영혼'입니다.
통일의 본질도 다르지 않습니다. 통일은 허물어진 국경을 합치는 일이기에 앞서, 파괴된 '사람의 회복'입니다. 수십 년간 겹겹이 쌓인 상처 입은 관계의 치유이며, 불신으로 점철된 무너진 신뢰의 복원입니다. 인간의 존엄을 무참히 짓밟힌 채 살아가는 북녘 동포들의 하나님의 형상을 되찾아주는 일이며, 우리 안의 적대감과 차가운 무관심을 십자가 앞에 내려놓는 거룩한 성화의 과정입니다.
이 거룩한 영적 파동 속에서 통일은 정치적 사건이기 전에, 교회가 마땅히 짊어져야 할 '영적 과제'입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가, 그리고 이 땅의 성도들이 다시 통일을 목놓아 외쳐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교회는 단순히 혈통적 민족주의를 선동하기 위해 부름받은 이익집단이 아닙니다. 교회는 이 깨어지고 상처 입은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찢어진 마음을 대언하고 실천하는 사랑의 보루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저 차가운 북녘 땅에는 이슬 젖은 골방에서 성경책 한 장을 숨겨두고 숨죽여 예배하는 숨은 성도들이 있습니다. 굶주림과 공포의 그늘 속에서 젖은 눈으로 하늘을 바라보는 어린 생명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기억하고 고통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선택할 수 있는 정치적 옵션이 아닙니다. 그것은 십자가의 은혜를 입은 자들이 마땅히 감당해야 할 엄중한 '신앙적 책임'입니다. 우리가 통일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단순히 그들이 우리와 피를 나눈 같은 민족이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눈물 흘리며 사랑하시는 천하보다 귀한 영혼들이 바로 그곳에 갇혀 있기 때문입니다.
통일은 아직 당도하지 않은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통일은 오늘 우리가 누구의 아픔을 기억하고, 무엇을 향해 눈물로 기도하며, 이 어두운 시대 속에서 어떤 사랑의 사람으로 살아가느냐 하는 우리의 '오늘' 속에서 이미 힘차게 고동치며 시작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모진 바람이 부는 오늘도 변함없이 믿음의 눈을 들어 선언합니다. 통일은 단회적인 정치적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끌어가시는 거룩한 구원의 과정입니다. 그리고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서는 지금 바로 이 순간, 당신의 신실한 종들을 통해 그 영광스러운 과정을 신실하게 집행하고 계십니다. ...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