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거는 민주주의의 성찬식이다. 주권자인 시민이 투표용지라는 작은 종이 위에 자신의 의지를 새기고, 그 집합적 목소리가 권력의 향방을 결정한다. 한 장의 표는 작아 보이지만, 그 표들이 모일 때 권력은 정당성을 얻고 공동체는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정한다. 그런데 지금 그 성찬식의 식탁이 한국에서, 그리고 미국에서 흔들리고 있다. ‘표가 바뀌었다’, ‘시스템이 조작되었다’, ‘개표 과정에 불법이 있었다’는 주장들이 광장을 가득 메우고 있다.
크리스천은 이 물음 앞에서 어떻게 서야 하는가. 의혹을 향해 함께 분노하는 것만이 신앙의 책임인가. 아니면 논쟁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골방으로만 물러나는 것이 믿음의 길인가. 그 어느 쪽도 아닐 것이다. 진실을 원하되 진영을 따르지 않고, 제도를 신뢰하되 권력을 면죄하지 않는 자리—그 좁고 불편한 자리가 오늘 크리스천에게 요청되는 곳이다.
광장의 실태
먼저 광장이 얼마나 뜨겁게 끓고 있는지 직시해야 한다. 이것은 단지 일부 사람들의 과장된 불만으로만 치부할 수 없는 현상이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2020년 대선 이후 트럼프 진영과 관련된 선거 소송이 60건 이상 제기되었으나, 대부분 기각되거나 취하되었고, 법원은 실질적인 선거 사기를 입증할 증거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법원의 판단과는 별개로 여론의 불신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퓨 리서치 센터(Pew Research Center)를 비롯한 여러 여론조사에 따르면, 공화당 지지층의 약 70%가 2020년 대선이 공정하게 치러지지 않았다고 믿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불신은 결국 2021년 1월 6일 의사당 난입 사태처럼 물리적 폭력으로까지 번졌다.
한국의 상황도 가볍지 않다. 2023년에는 선거관리위원회의 선거인 명부·개표 시스템이 해킹 공격에 취약하다는 국가정보원의 지적과, 보안 관리 부실을 둘러싼 논란이 이어졌다. 선관위가 한동안 국가정보원과 한국인터넷진흥원의 보안 점검을 소극적으로 대하다가, 논란 이후에야 일부 점검을 수용한 사실도 국회 국정감사와 언론 보도를 통해 드러났다. 2024년 총선 전후에도 선거 공정성을 의문시하는 소송이 한 달 사이 전국에서 25건 이상 제기되면서, 선거에 대한 신뢰가 우리 사회의 중요한 과제로 남아 있음을 다시 한번 보여 주었다.
이 현상은 한국과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스웨덴 예테보리 대학교에 본부를 두고 전 세계 민주주의 지표를 체계적으로 측정해 온 V-Dem(Varieties of Democracy) 연구소의 2024년 보고서에 따르면, 민주주의 지표가 후퇴한 나라 수가 개선된 나라 수를 크게 앞선다는 진단을 반복해 왔다. 미국 워싱턴 D.C.에 본부를 둔 민주주의 연구 기관 프리덤 하우스(Freedom House) 역시 전 세계 민주주의가 18년 연속 후퇴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다시 말해, 선거 불신은 어느 한 나라의 특수한 병리만이 아니라 오늘 시대가 공유하는 전 지구적 증상이다.
선거와 민주주의
왜 선거 시스템의 신뢰가 이토록 중요한가. 민주주의는 수많은 시민이 직접 권력을 행사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선거를 통해 자신의 뜻을 위임하고 통치의 정당성을 확인하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언어이자 제도적 심장이다.
예일 대학교 정치학과 교수 로버트 달(Robert A. Dahl)은 자유롭고 경쟁적인 선거를 민주주의의 핵심 조건으로 보았고, 전 뉴욕대학교 정치학과 석좌명예교수 아담 프셰보르스키(Adam Przeworski)는 민주주의를 선거의 패자가 평화롭게 결과를 수용하는 체제로 설명해 왔다. 이 통찰은 매우 중요하다. 선거의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절차를 신뢰할 수 있어야 민주주의가 작동한다. 결과는 불확실할 수 있지만, 과정만큼은 믿을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 점에서 선거에 대한 불신은 단순한 정치적 불평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공동체 자체를 흔든다. 같은 사회 안에서 서로 다른 현실을 믿는 집단이 굳어지면, 대화와 타협의 공간이 빠르게 사라진다. 한국 사회의 진영 분열과 미국의 정치적 양극화 역시 이런 불신의 구조와 무관하지 않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이런 불신이 제도 전체를 약화시킨다는 사실이다. 학자들이 ‘선거 권위주의’라고 부르는 현상이 이미 일부 중앙아시아와 아프리카 국가들에서 나타나고 있다. 선거라는 형식은 유지하되, 집권 세력이 규칙 자체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바꾸어 공정한 경쟁을 내부에서 허무는 방식이다. 민주주의의 껍데기는 남지만 그 실질은 사라진다. 오늘 우리가 선거 불신을 방치할 때, 그 끝이 어디일지를 이 사례들은 조용히 경고한다.
크리스천의 분별
그렇다면 선거 불신의 시대에 크리스천은 어떻게 서야 하는가.
첫째, 진실을 향한 갈망이 있어야 한다. 예수님은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32)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개인의 영혼에만 머물지 않는다. 공동체가 거짓 위에 세워질 때 그 공동체는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므로 크리스천은 ‘내 편이 옳다는 결론’을 원하는 사람이 아니라, ‘진실이 드러나기를’ 원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둘째, 법 앞의 겸손이 필요하다. 로마서 13장은 권세에 대한 존중을 가르치지만, 그것이 권력의 무조건적 면죄부를 뜻하지는 않는다. 성경의 예언자들은 권력이 공의를 해칠 때 침묵하지 않았다. 나단은 다윗 앞에서 “당신이 그 사람이라”(삼하 12:7)고 외쳤고, 하나님의 백성은 언제나 법과 공의 앞에서 자신과 권력을 함께 세워 놓아야 했다.
셋째, 진영 논리의 유혹을 경계해야 한다. 오늘날 선거 부정 주장은 대개 진영화되어 있다. 내가 지지하는 쪽이 지면 부정선거이고, 이기면 공정선거라는 식의 태도는 기독교적 양심과 거리가 멀다. 성경은 “모든 것을 시험하여 좋은 것을 붙잡으라”(살전 5:21)고 말한다. 증거를 따라 판단하되, 증거 없이 확신하는 오만을 멀리해야 한다.
넷째, 제도를 향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기도는 필요하지만 기도만으로 충분하지는 않다. 민주주의는 책임 있는 시민의 참여로 유지된다. 선거의 투명성을 높이는 제도 개선을 지지하고, 의혹이 있다면 합법적 절차를 통해 검증을 요구하며, 사실 확인과 공적 감시에 참여하는 일은 신앙인의 사회적 책무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선거를 관리하는 기관 스스로가 독립성과 투명성의 모범을 보여야 한다. 의혹이 제기될 때 검증을 회피하거나 외부 점검을 거부하는 태도는 불신을 잠재우는 것이 아니라 키울 뿐이다. 선거 당국과 입법 기관은 지금이라도 선거 시스템의 신뢰 회복을 위한 실질적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한다. 그것은 어느 한 진영의 요구가 아니라, 민주주의 자체의 요청이다.
다섯째, 공동체의 언어를 지켜야 한다. 선거는 사람을 갈라놓기 쉽고, 정치적 신념은 교회 안에서도 쉽게 적개심으로 변한다. 바울은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라”(빌 2:4)고 권면했다. 나의 정치적 확신만이 아니라 다른 이의 양심도 하나님 앞에 선 것임을 기억할 때, 교회는 심판의 공간이 아니라 분별의 공동체가 된다. 미주 한인교회는 특히 한국과 미국의 정치 현실을 동시에 접하는 자리에서 더 깊은 분별과 더 절제된 언어를 요청받고 있다.
투표함 앞에서, 하나님 앞에서
투표함은 거짓말을 하는가. 어떤 경우에는 그 질문이 아직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의혹일 수 있고, 또 어떤 경우에는 제도의 허술함을 향한 정당한 경고일 수 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크리스천은 자기가 원하는 결론보다 먼저 진실을 원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완전한 체제가 아니다. 처칠이 1947년 하원 연설에서 말했듯, 민주주의는 많은 결함을 지닌 체제이지만 지금까지 인류가 시도해 온 다른 체제들보다 여전히 더 나은 길로 여겨져 왔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주의를 지키는 길은 민주주의를 우상화하는 데 있지 않고, 그 불완전성을 정직하게 직시하며 끊임없이 바로잡는 데 있다.
미국에서 살아가는 미주 한인 크리스천에게 선거는 멀리 있는 뉴스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발 딛고 선 이 땅의 문제이며, 동시에 조국 대한민국을 바라보며 함께 아파하고 기도하게 만드는 문제다. 이민자이자 소수자인 우리는, 이 나라의 시민으로서 책임 있게 정치에 참여해야 하면서도, 조국의 선거를 향해서는 더 예민하고 때로는 과장된 분노로 반응하기 쉽다. 바로 이 지점에서 디아스포라 교회는 두 나라를 향해 같은 기준의 공의와 절제를 적용하려는 영적 훈련을 요청받는다.
그러므로 광장에서는 원칙을 말하고, 골방에서는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한다. 성찬상에서 우리는 나와 다른 사람을 그리스도의 몸으로 받는다. 투표함 앞에서도 그 자세가 요청된다. 그 두 자리를 함께 지키는 것, 바로 그것이 부정선거 의혹의 시대를 살아가는 신앙인의 자리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