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기독교 변증가이자 작가인 로빈 슈마허의 기고글인 '마귀와 화해하기'(Making peace with the devil)를 14일 게재했다.
기독교 변증가로 활동하고 있는 슈마허는 작가로도 활동하면서 많은 책을 냈고 미국 내의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이 소식이 그리 놀랍지는 않겠지만, 세계 평화에 관해서는 또다시 나쁜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2025년판 '글로벌 평화 지수(Global Peace Index, GPI)'에 따르면 "전 세계 평화 수준은 계속해서 하락하고 있으며 주요 분쟁의 전조가 되는 지표들 대부분이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고 한다. 점점 더 많은 국가들이 군비를 증강하고 있으며, 이는 지리정치적 긴장의 고조, 분쟁 증가, 전통적인 동맹의 해체, 경제 불안의 증가와 맞물려 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59건의 국가 간 무력 분쟁이 벌어지고 있으며, 이는 2차 대전 이후 가장 많은 숫자이고, 전년보다 세 건이나 늘어난 수치다.
예상대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전쟁의 영향으로 전년 대비 평화 수준이 가장 급격히 하락했고, 하마스와 이란과의 분쟁으로 인해 이스라엘 역시 크게 악화되었다. 미국과 여러 국가들이 이 분쟁들을 중재하려 애쓰고 있지만, 터널 끝에 빛은 보이지 않는다.
예수님이 마지막 때가 되면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게 될 것이라"(마태복음 24:6)고 하신 말씀이 다시 떠오른다.
사람들은 평화를 이루기 위해 때로는 비합리적인 방법까지 동원하려 한다. 예컨대, 공격적인 세력을 달래기 위해 그들에게 권력을 넘겨주는 식의 '유화 정책'이 있다. 1930년대 영국이 히틀러를 상대로 했던 방식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결과가 결코 좋지 않았다는 걸 역사로부터 배웠다.
또 다른 접근은 독재적인 방식이다. 몇몇 정권들은 억압적인 통제와 자유 제한을 통해 평화를 강제하려 한다. 중국의 신장 지역 통치 방식이나 러시아의 체첸 통제처럼 말이다. 이는 '평화'와 '통합'을 유지한다는 명분으로 반대 의견을 억누르는 현대판 '캔슬 컬처(cancel culture)'까지 포함된다.
이러한 전 세계적 혼란과 더불어, 우리의 개인적 갈등들까지 포함해 그 근본 원인을 성경은 아주 간단히 설명한다. 야고보서 4장 1절은 말한다.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인류는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의 경고를 무시하고 하나님의 처방을 외면한 채, 평화를 얻기 위해 온갖 수단을 찾는다. 때로는 가장 극단적인 선택까지도 감수한다.
성경은 언젠가 인류가 평화를 얻기 위해 '지옥과 계약'을 맺는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될 것이라 말한다. 데이브 헌트(Dave Hunt)는 자신의 책 <평화, 번영, 그리고 다가올 홀로코스트>에서 이 '거짓 평화 협정'에 대해 말한다. 이 협정은 이사야가 "스올(지옥)과 맺은 언약"(이사야 28:15)이라 부른 것이며, 헌트는 이렇게 말한다. "성경이 사실이라면, 곧 도래할 이 평화와 번영의 시대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험한 시기일 수 있으며, 믿기 어려운 속임수와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의 시기가 될 것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보면, 인류는 점점 더 '인간적으로 저항할 수 없는' 평화 제안에 굴복할 시점으로 달려가고 있다. 그 제안이 적(마귀)에게서 나온 것일지라도 말이다. 찰스 스펄전(Charles Spurgeon)은 자신의 설교 「마귀의 평화와 하나님의 평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마귀가 주는 평화는 종종 가장 무서운 폭풍의 전주곡이다."
완벽한 폭풍의 서막
요한계시록은 이런 '마지막 대폭풍'의 시작을 이렇게 기록한다. 5장에서 요한은 "일곱 인으로 봉해진 책"이 열리는 장면을 본다(요한계시록 5:1). 많은 성경 주석가들은 이 책이 '땅의 소유권 문서'를 상징한다고 본다. 그리고 6장에서 예수님께서 그 인을 하나씩 여시기 시작한다.
첫째 인이 열릴 때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내가 보매 어린 양이 일곱 인 중 하나를 떼시는데... 흰 말이 나오고, 그 탄 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았으며, 이기고 또 이기려고 나아가더라"(요한계시록 6:1-2).
이 첫 번째 '말탄 자'에 대해 많은 추측이 있었지만, 뒤이어 등장하는 다른 세 명의 기수들이 인물이라기보다 사건이나 시대적 흐름을 상징하는 것을 보면, 이들도 특정 인물이 아닌 '힘'이나 '세력'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인다.
존 맥아더(John MacArthur)는 이 구절을 해석하며 이렇게 말한다. "이 네 기수들은 특정 인물이 아닌 세력을 상징한다. 어떤 이들은 이 첫 번째 기수를 적그리스도라 보기도 하지만, 요한의 요점은 온 세상이 이 거짓 평화에 매혹되어 따르게 된다는 것이다. 활은 전쟁의 상징이지만, 화살이 없다는 점은 이 승리가 전쟁이 아니라 협정과 언약을 통한 '피 흘리지 않은 평화'임을 의미한다."
요한계시록이 묘사하는 이 첫 번째 인은, 인류의 절박한 평화 욕망과 악한 자가 제시하는 거짓 평화가 맞물리며 폭풍의 서막을 여는 장면일 것이다. 그러나 이 거짓 평화는 오래가지 못한다. 왜냐하면 두 번째 인이 열릴 때, 평화는 곧 사라지기 때문이다.
"둘째 인을 떼실 때 붉은 말이 나오고 그 탄 자에게 땅에서 화평을 제하여 버리며 사람들이 서로 죽이게 하며, 또 큰 칼을 받았더라"(요한계시록 6:3-4).
사도 바울은 이와 같은 거짓 평화의 갑작스러운 붕괴를 이렇게 설명한다.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르듯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데살로니가전서 5:3).
이처럼 마귀의 평화에 속은 자들은, 결국 이사야의 말씀대로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이사야 57:21)는 진실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시편 기자도 "그들이 순식간에 황폐되며, 놀람으로 그들은 끝에 이르리로다"(시편 73:19)라고 탄식했다.
이 모든 일들이 도래할 것을 생각할 때, 오늘날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베드로 사도가 던진 바로 그 질문이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베드로후서 3:11)
그에 대한 대답은 분명하다. 마귀와 평화를 맺지 말고, 하나님과 평화를 이루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화해하면, 자동으로 마귀와의 전쟁에 들어서게 되기 때문이다.
복음의 부르심에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전쟁을 끝내고, 영원한 평화로 들어가는 길이다. 바울은 이렇게 썼다.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로마서 5:10, 1절).
시편 기자는 이 화해의 순간을 이렇게 아름답게 표현한다. "인애와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었으며"(시편 85:10).
스펄전의 말대로, 마귀와의 평화는 반드시 패배로 끝난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하나님과의 평화를 이루어야 하며, 그때 비로소 "소망의 하나님이 믿음 안에서 모든 기쁨과 평강으로 너희를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로마서 15:13)라는 약속을 누릴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평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