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훈구 장로
(Photo : ) 이훈구 장로

비가 오거나 날씨가 추울 때는 따뜻한 국물이 있는 음식을 찾게 된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어느 비 오는 날, 하루 종일 흐리고 눅눅한 공기가 감도는 정오 무렵. 뜨끈한 국물의 쌀국수가 유난히 생각났다. 나는 가까운 쌀국수 식당에 전화를 걸어, 식당 안에서 먹겠다고 하며 쌀국수를 주문했다. 하지만 도착해 보니 내 음식은 포장 주문 용기에 담겨 준비되어 있었다. 나는 식당 직원에게 다시 한 번 “식당에서 먹고 가겠습니다”라고 말했고, 그는 포장된 음식을 주방으로 가져가 다시 접시에 담아 나왔다. 그런데 확인해 보니, 그것은 쌀국수가 아니라 내가 평소에 잘 먹지 않는 돼지고기 덮밥이었다. 나는 “이건 제가 주문한 음식이 아닙니다”라고 말했고, 식당 직원은 다시 음식을 주방으로 가져갔다. 잠시 후, 주방 안에서 다소 큰 소리가 들렸다. “왜 주문을 제대로 못 받았냐”며 주인 아주머니가 식당 직원을 꾸짖는 소리였다.

이내 그녀가 직접 홀에 나와 손님들의 주문을 받고 서빙하기 시작했다. 보아하니 그 식당 직원은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듯했다. 나는 그런 상황을 지켜보며 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등 뒤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장로님, 안녕하세요.” 깜짝 놀라 돌아보니, 우리 교회에 몇 차례 출석한 적이 있는 한국에서 출장 중인 성도였다. 우리는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고, 그는 식사를 마친 뒤 먼저 식당을 나섰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는 왠지 모를 찜찜함이 남았다. 우리 교회 목사님은 자주 이렇게 강조하신다.

“교회 안과 밖에서의 삶이 일치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는 성도처럼 보이지만, 세상 속에서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서는 안 됩니다.” 그 말씀이 문득 떠올랐다. 비록 주문을 잘못 받은 것은 내 잘못이 아니었지만, 내가 조금만 더 따뜻하고 부드럽게 반응했더라면, 그 초보 식당 직원은 혼나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혹시 돼지고기 덮밥도 그냥 함께 먹겠다고 했더라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불필요한 꾸중은 피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조금 전 인사를 나누었던 그 성도님의 눈에는 내 모습이 어떻게 비쳤을까? 나는 양보와 배려보다는 ‘내가 잘못한 것이 없으면 굳이 고치지 않는다’는 태도를 가지고 살아온 것은 아닌지,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글쓰기를 진심으로 좋아하고 즐기며 살아가는 사람이다. 삶을 글로 표현하고, 또 그 글대로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다. 그런데 오늘 같은 상황에서, 과연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라.” — 디모데후서 3장 16–17절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쓰인 말씀이다. 그리고 그 말씀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자라가게 하고, 모든 선한 일을 행할 수 있도록 우리를 온전하게 만들어 준다. 그렇다면 나는 과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한 사람’인가? 이 질문 앞에 서면, 부끄러움을 피할 수 없다. 예수님의 삶은 글로 기록되어 우리에게 남겨졌고, 우리는 그 기록을 통해 신앙의 길을 배우며 살아간다. 그 말씀이 바로 성경이다. 예수님의 삶은 하나님의 감동이 되어 수천 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에게 믿음의 영감을 주고 있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까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가? 그리고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가고 싶은가?

비록 부족하지만, 예수님의 삶을 닮아가며 본받는 삶을 살아가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나는 나의 삶이 글로 표현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표현된 글이 다시 나의 삶이 되어,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한 삶으로 이어지기를 소망한다. 교회 안에서의 삶과 세상 속에서의 삶이 일치하는 사람, 즉 어디에 있든지 성도로 살아가는 사람이 되기를 나는 기도한다. 나의 삶도 누군가에게 위로와 감동, 그리고 좋은 흔적이 되는 글로 남겨지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글이 다시 누군가의 삶에 따뜻한 울림이 되어, 선한 영향력으로 이어지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