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셉 마테라 박사 크리스천포스트에 "아름다움이 강력한 변증이 되는 이유 10가지"란 제목의 글을 게재했다. 그는 성경의 진리를 변증하고 오늘날의 포스트모던 문화에 대한 설득력 있는 방어를 제공함으로써 성경의 렌즈를 통해 시사를 다루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다음은 그의 글 전문이다.
오늘날 문화적 환경에서 진리는 종종 주관적인 것으로 여겨지고, 선(善)은 점점 더 의심받고 있다. 그러나 아름다움은 국경과 장벽을 초월하는 보편적인 언어이다. 유대교와 기독교의 보수적 학자들은 아름다움이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다고 믿는다. 하나님은 선하고 참되며 아름다운 모든 것의 궁극적인 원천이시다. 아름다움은 단순한 미적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의 완전함과 질서, 그리고 영광을 반영하는 요소이다.
◈아름다움의 세 가지 조건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름다움을 결정하는 세 가지 핵심 속성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Summa Theologica, I, Q. 39, A. 8).
1. 완전성(Integrity): 조각상의 일부가 없거나 손상되었을 경우 온전함을 잃고 아름다움이 감소한다.
2. 비례(Proportion, 조화): 아름다움은 전체를 구성하는 요소들 사이의 적절한 균형과 조화에서 비롯된다. 이는 질서 있고 이성적인 구조를 반영한다. (음악이 아름다운 이유는 음들이 균형과 비례를 이루기 때문이다.)
3. 명료성(Clarity, 밝음 혹은 광채): 어떤 것이 본질을 명확하고 지적으로 드러낼 때, 그 아름다움이 더욱 빛난다. (예술 작품이 아름다운 이유는 대상의 진리를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하나님, 모든 아름다움의 원천
하나님은 완전하시고, 온전하시며, 창조 속에서 질서와 조화를 이루시는 분이시므로 가장 아름다우신 분이다. 아퀴나스는 "하나님은 그 자체로 아름다움이시다. 그분의 본질은 완전한 실재이며, 어떠한 결함도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창조된 세계의 모든 아름다움은 하나님의 신성한 아름다움을 반영한다. 태양에서 빛이 나오는 것처럼, 창조된 아름다움은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다.
다윗은 시편 27편 4절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은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시편 27:4)
이는 하나님의 아름다움이 도덕적이며, 영적이고 초월적인 것임을 보여준다. 그분의 거룩함, 의로움, 위엄은 가장 순수한 형태의 아름다움을 구현한다. 시편 29편 2절과 96편 9절에서 "거룩한 아름다움으로 여호와께 경배하라"고 말씀하신 것은, 구약에서 아름다움과 거룩함이 분리될 수 없는 개념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종교개혁 이후 일부 교회들은 우상 숭배에 대한 우려로 인해 아름다움을 배척하고 단순함을 추구했다. 이러한 반응은 교회를 복음의 강력한 변증적 도구 중 하나를 상실하게 만들었다.
아래는 아름다움을 교회의 사명에 필수적인 요소로 삼아야 하는 10가지 이유이다.
1. 아름다움은 하나님의 본성을 반영한다
하나님은 아름다움 그 자체이시다. 창조의 시작부터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영광을 만물 속에 드러내셨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분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시편 19:1)
우주의 정교한 구조, 황홀한 노을, 장엄한 산맥, 인간의 신비로운 몸 구조-all these testify to a Creator who delights in beauty. 교회가 아름다움을 외면하면, 하나님의 중요한 속성을 간과하는 것이다. 아름다움을 받아들임으로써, 우리는 선하고 아름다우신 하나님을 세상에 증거한다.
2. 아름다움은 경배의 행위이다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것은 우상 숭배가 아니라 경배의 행위가 될 수 있다. 출애굽기 35~36장에서 하나님은 브살렐과 오홀리압에게 성막을 만들도록 기름 부으셨다. 그들은 금과 보석, 그룹(천사) 형상을 활용하여 정교한 장식을 만들었다. 이처럼 아름다움은 신성한 목적을 가진다. 교회가 건축, 음악, 예술을 통해 아름다움을 추구할 때, 이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된다.
3. 교회는 하늘나라를 이 땅에서 보여주어야 한다
성막과 솔로몬 성전은 하나님의 보좌를 반영하기 위해 설계되었다(히브리서 8:5). 이는 하나님의 완전함과 에덴의 원래 조화를 상징한다. 마찬가지로 교회는 이 땅에서 하늘나라를 반영해야 한다. 아름다운 예술과 건축, 예배 의식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예고하며, 온전한 회복을 소망하게 한다.
4. 아름다움은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이끈다
아름다움은 언어와 문화를 초월하는 강력한 언어이다. 신학적 논쟁과 도덕적 논의가 사람들을 나누는 반면, 아름다움은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힘이 있다.
5. 아름다움은 인간의 존엄성을 확인시킨다
창세기 1장 27절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음을 가르친다. 일부 신학자들은 우리가 하나님의 "아이콘"(Icons)으로서 그분의 영광을 반영하도록 부름받았다고 해석한다. 우리가 예술, 음악, 건축 등을 통해 아름다움을 창조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구현하는 것이다.
6. 아름다움을 거부하면 전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교회가 아름다움을 멀리하면, 복음의 매력적인 요소 중 하나를 잃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신학적 논쟁이 아니라, 웅장한 대성당, 경건한 성가, 정교한 예배 의식을 통해 기독교에 끌리게 된다. 아름다움은 감성과 이성을 동시에 자극하는 강력한 변증 도구이다.
7. 아름다움은 다음 세대의 창조적 문화인을 영감한다
교회는 역사적으로 예술과 문화를 후원하며 미켈란젤로, 바흐 같은 위대한 예술가들을 배출했다. 아름다움을 중시할 때, 우리는 다시 한번 예술가, 과학자, 건축가 등 다양한 창조적 인재들을 배출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다.
8. 아름다움은 속죄를 반영한다
골로새서 1장 20절은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이 만물을 자신과 화해시키셨다고 말한다. 속죄는 단순한 죄 사함이 아니라 창조 세계의 회복까지 포함한다. 이사야 61장 3절은 "재 대신 아름다운 관을" 주신다고 말하며, 하나님의 변혁적 능력을 보여준다.
9. 아름다움은 세속적 세계관을 거스른다
현대 사회는 효율성과 실용성을 우선시하지만, 아름다움은 이러한 세속적 가치관에 반하는 강력한 증거가 된다. 하나님 없는 삶은 허무로 이어지지만, 교회가 아름다움을 추구할 때 사람들은 물질을 넘어선 초월적 현실을 경험하게 된다.
10. 아름다움은 화해의 사명과 일치한다
기독교는 본질적으로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그리고 창조 세계와 창조주 사이의 화해를 이야기한다(고린도후서 5:18-19). 아름다움은 이러한 회복과 조화의 증표이며, 하나님이 역사를 궁극적인 아름다움으로 이끄시는 증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