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이제 중년에 접어들었고, 점점 나이가 들어가면서 신체적인 변화를 실감하고 있다. 때때로 "내 인생은 실망스럽다!"라는 말을 하곤 한다. 아마 여러분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아마 그것이 지금은 사실일 수도 있다. 어느 날, 한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가장 오랜 세월을 산 사람이 아니라, 그 삶의 해 동안 가장 많은 생명을 누린 사람이다." 그는 이어서 "인간이 갈 수 있는 두 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삶을 보호하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삶을 추구하는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이 말은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0장 39절에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개념과 동일하다. 우리가 이 세상의 삶을 붙들려고 하면, 영원한 삶을 놓치게 된다. 왜냐하면 우리가 추구하는 것들이 궁극적으로는 녹슬고 좀먹히는 유한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시선을 이 짧은 인생에서 주어지는 일시적인 쾌락과 장애물에 집중할 때, 우리는 그야말로 한정된 것에 매몰되고 만다. 물론, 이 세상이 제공하는 것들에 매혹되지 않는 것이 쉽지는 않다. 더군다나 우리가 영광스러운 미래를 미리 볼 수 없는 현실은 이를 더욱 어렵게 만든다.
그러나 우리는 변함없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만약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주와 구주로 영접하면 이 일시적인 삶을 버리고 창조주와 함께하는 영원한 승리의 삶을 얻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 구원은 우리의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선물이다. 그러나 일단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면, 우리는 이 현재의 삶에서 복잡한 문제들을 극복해 나가며 그 생명을 이루어가야 한다.
이 극복의 과정은 삶을 보호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추구하는" 개념과 같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곧 생명이라고 말씀하셨다(요한복음 14:6). 따라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대상은 바로 예수님이시다. 하지만 이를 실천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시련이 따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련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강력한 군사로 단련시키기 위해 사용하시는 도구이며, 우리가 맞닥뜨리는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도록 만드는 과정이다.
우리가 주님께 삶을 드릴 때,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며, 그분은 세상에 있는 그 어떤 것보다도 더 크신 분이심을 알게 된다. 따라서 우리 안에 거하시는 초자연적인 능력을 통해, 우리는 인생의 도전을 극복하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사명을 향해 나아갈 힘을 얻게 된다.
우리가 극복하는 과정에서 직면하는 주요한 도전 중 하나는, 이미 평범한 삶에 안주한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그들과 같은 수준으로 끌어내리려 한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의 노력은 대개 자신들의 삶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에서 비롯된다. 마치 바구니 속의 게들이 탈출하려는 다른 게를 끌어당기는 것처럼, 우리는 우리 앞의 시련을 극복하려고 할 때 주변 사람들로부터 방해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평균적인 수준을 넘어 하나님의 축복을 붙잡기 위해 용기를 내어 나아가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우리는 완벽한 삶을 살려고 애쓰기보다, 참된 생명을 주시는 분께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시간은 누구도 기다려주지 않는다. 세월은 빠르게 흘러가고, 우리는 그것을 되돌릴 수 없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은 우리가 이 땅에 있는 동안 반드시 이루어야 한다. 만약 우리가 인생을 허비한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는 것과 다름없다.
또한 우리는 인내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싸우는 전투를 통해 우리를 단련시키시며, 우리가 그분께서 준비하신 영원한 생명을 받을 자격을 갖추도록 하신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약속의 땅을 차지하도록 명령하실 때 "가라"(여호수아 1:2)라고 말씀하신 이유이다. 진정한 삶을 살고 승리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적극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우리는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바라보며 살아서는 안 된다. 우리는 "정복자 이상"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나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