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미션대학교 윤임상 교수
(Photo : 기독일보) 월드미션대학교 윤임상 교수

20세기 위대한 설교가 중 한 명인 A.W. 토저(Aiden Wilson Tozer, 1897 -1963)는 그가 살던 그 시대인 1960년대 기독교를 “자판기 기독교” 라고 꼬집어 말합니다. "왜냐하면 쿼러 동전 하나를 넣으면 필요한 것이 즉시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라고 비유하며 과거 우리 믿음의 선진들이 뜨겁게 하나님을 예배하며 찬양하며, 기도했던 신앙 사상을 상기 시키려 했습니다. “그들은 두려움, 놀람, 갈망, 사랑, 숭모의 감정에 사로잡혀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들이었다.”라고 이야기하며 그는 두 사람의 예를 듭니다.

18세기 초 북아메리카에서 인디언들에게 복음을 전했던 선구자적 선교사요 죠나단 에드워즈의 사위인 무릎 성자 데이비드 브레이너드(David Brainerd, 1718-1747)는 한겨울 눈이 쌓인 곳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와, 중보기도, 그리고 경배에 몰두했는데 그가 기도를 끝냈을 때는 그가 앉았던 자리의 눈이 원형으로 녹아있었다고 합니다.

죤 웨슬리와 함께 사역하며 감리교가 배출한 위대한 성자 죤 플레처(John Fletcher,1729-1785)는 아무 세간살이도 없는 골방 바닥에서 무릎 꿇고 기도하곤 했는데 그의 사후에 사람들이 그곳을 찾았을 때 그 골방 바닥이 오목이 들어간 곳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또한 그 방의 한 벽면은 그가 하나님을 갈구하면서 내뿜었던 입김으로 인해 변색되었다고 합니다. 그곳에서 그는 거룩함과 영광 가운데 거하시는 하나님을 경배했던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이것이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주 하나님을 사랑하는 숭모의 정신이라 말하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바르게 예배하며 찬양하는 예배자의 정신입니다. 우리 믿음의 선진들은 하나님을 바르게 경배하며 찬양해야하는 가르침과 교훈을 바로 시편에서 찾았습니다. 비록 시대와 상황에 따라 예배의 형태는 변하였지만, 그 예배 안에서 바뀌지 않은 것은 시편 찬양이었습니다

구약의 제사 제도를 통한 예배에서도, 신구약 중간기 회당의 예배에서도, 신약 예수님 시대에서도, 초기 기독교 예배에서도 중세 서방교회나 동방 교회에서도, 그리고 종교개혁 시대에서도 동일했습니다. 비록 종교 개혁자들이 찬양을 표현하려는 방법은 달랐지만, 내용은 시편의 찬양을 중심으로 표현하려고 했던 것은 모두 같았습니다.

이 시편 가운데 시편 150편은 모든 시편의 종결입니다. 즉 시편 전체에서 이야기 하고자 하는 중심 내용이 총 6절로 구성된 이곳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먼저 시편의 대명제인 “할렐루야”를 시작과 종결에서 표현합니다. 시편의 핵심은 할렐루야 즉 야회(Yahweh) 하나님을 찬양하는 행위가 시작이요 끝이라는 것입니다. 이어서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 구체적인 요소를 4가지 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첫 번째로 “어디에서(Where - 1절)” 성소에서, 하나님의 권능이 나타나는 성소를 포함한 모든 곳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라 명령하십니다. 두 번째로 “무엇을(What – 2절)”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신 행동, 즉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능력의 힘을 찬양해야함을 알게 합니다. 세 번째로 “어떻게 (How -3~5)” 모든 악기들을 동원하고 피조물이 행할 수 있는 모든것을 동원해서 각 시대별로 허락신 조건과 환경에 어울리게 찬양할 수 있음을 이해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누가(Who – 6절)”시편 전체의 최종 종결을 나타내는 부분으로 이 세상에 호흡이 있는 모든 하나님의 피조물들이 영원토록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이 내용에 담겨있는 내면의 메시지는 하나님이 모든 피조물을 창조하신 본질적 목적은 그들에게 찬양받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입니다.(사43:21)

이 위대한 시편을 역사적으로 많은 작곡가들이 각자의 특성에 맞게 표현하였습니다. 필자는 이 지면을 통해 또 한 명의 작곡가가 만든것을 소개합니다. 한국의 젊은 작곡가 김신웅께서 곡을 만들었는데 특이한 것은 우리말로 된 시편의 가사를 우리의 운율에 맞게 리듬을 구사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특히 이 안에 담겨있는 “어떻게 (How -3-5)” 즉 방법론적인 면을 강조하여 악기들 나팔, 비파, 수금, 속, 현악, 퉁소 등을 직접 연상하며 표현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먼저 1절 을 사용 인트로를 팡파르 형식으로 오픈 합니다. 이어 1절의 내용 전체를 풀어서 여성, 남성이 교차하며 찬양할 수 있게 합니다. 두 번째 내용인 who 즉 , 하나님의 능하신 행동, 위대하심을 표현할 때는 불규칙 박자를 사용 하여 가사의 운율을 정확하게 표현하려 했습니다. 세 번째 찬양의 방법론을 표현할 때는 리듬을 잘 구사하여 모든 악기를 정확히 나열하는 모습, 때로는 비파, 수금을 글리산도 (glissando) 등으로 표현하며 이 곡 전체에서 가장 길게 할애하여 전개 합니다.

성악의 쉼을 위해 비교적 짦지 않은 간주를 전개한 후 첫 번째 멜로디를 다시 짧게 등장시키고 대단원의 종결을 향해 갑니다. 가사의 강조를 주려고 유니슨으로 그리고 템포를 천천히 하여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하라. 할렐루야” 라고 외치며 대단원이 막을 내립니다.

이 찬양의 드라마를 보며 A.W. 토저가 건네었던 두 분의 믿음의 선진들. 그 신앙의 열정을 떠올리게 합니다. 내가 앉아 찬양하는 자리가 마치 뜨거운 열기로 인해 얼었던 주위가 녹듯, 그 안에 담겨있는 메세지에 반응하며 내뿜는 우리의 땀과 열기로 벽면이 변색하어지듯 되어야 함을 다짐하게 됩니다.

우리의 찬양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며 그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는 시간입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나의 노력과 열정이 필요합니다. 이 일에 우리는 게으름뱅이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더군다나 알면서 게으름뱅이가 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C.S. 루이스(Clive Staples Lewis, 1898- 1963)는 그의 책 “순전한 기독교”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하나님은 게으름 뱅이를 좋아하지 않으시지만, 지적인 게으름뱅이는 더 좋아하지 않으신다.” 이 말이 오늘을 사는 예배자들에게 깊은 찔림과 도전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