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민 목사(새생명비전교회)
강준민 목사(새생명비전교회)

소박한 행복은 일상에서 작은 행복을 찾아 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특별한 날들을 기대하며 삽니다. 특별한 행복을 꿈꾸며 삽니다. 그런 까닭에 일상 속에 감춰진 행복을 보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일상 속에 행복을 감춰 두셨습니다. 일상은 평범합니다. 담백합니다. 하지만 우리를 참으로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일상 속에 있습니다. 

날마다의 삶 속에 작은 행복을 누릴 줄 아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것처럼 행복은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대단한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은 위험한 사람입니다. 대단한 행복은 극단적입니다. 심지어 파괴적입니다. 때로는 폭력적입니다. 사람들은 "엽기적 그녀"와 "조폭 마누라"와 같은 영화를 좋아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 내면에 감춰진 폭력성 때문입니다. 참된 행복은 과도한 쾌락이 아닙니다. 진정한 행복, 깊은 맛이 있는 행복, 아름다운 행복은 기쁨을 제공해 주면서도 과도하지 않아야 합니다. 에우리피데스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더 이상 바라는 것이 없고 삶의 소박함을 느끼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행복하다."라고 말합니다. 

소박한 행복은 작은 것 속에 담긴 기쁨을 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작은 것 속에 감춰져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겨자씨에 비유하셨습니다(마 13:31). 작은 누룩에 비유하셨습니다(마 13:33). 예수님은 작은 것에 충성된 자를 칭찬하십니다(눅 16:10). 그 이유는 작은 것 속에 하나님의 나라의 비밀이 담겨 있고, 천상의 기쁨의 비밀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작은 것을 소중히 여기며, 작은 행복을 키울 줄 아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작은 것 속에 담긴 무한한 잠재력을 볼 줄 아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도토리 한 알을 심으면서 참나무 숲을 볼 줄 아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작은 성취, 작은 목표 달성, 작은 선행, 작은 깨달음, 작은 진보에 기뻐하십시오. 

소박한 행복은 사소하고 작은 것들을 축하하는 것입니다. 사소하고 작은 것들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소박한 행복은 겸손한 성품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겸손한 사람은 더 많은 것을, 더 큰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겸손한 사람은 주어진 것에 감사합니다. 아직 남아 있는 것에 감사합니다. 무슨 일을 만나든지 원망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건을 만나든지 그것을 불행, 비극, 그리고 절망이라고 이름을 붙이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가 불행, 비극, 그리고 절망이라고 생각하는 사건을 통해 아름다운 기적을 창조하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놀라운 기적과 역전의 드라마는 우리가 불행이라고 붙인 사건을 통해 전개되었습니다. 

소박한 행복은 적응을 잘하는 데 있습니다. 탁월한 인물들의 특징은 탁월한 적응력에 있습니다. 저는 요셉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웁니다. 그는 적응하는데 탁월했습니다. 그는 졸지에 사랑하는 아버지와 친동생 베냐민과 생이별을 하고 애굽에 종으로 팔려 갔습니다. 그런데 그가 팔려 갔던 보디발의 집에서 잘 적응합니다. 그가 머무는 곳에서 최선을 다합니다. 머무는 곳에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습니다.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물리친 대가로 억울한 옥살이를 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는 누구도 탓하지 않습니다. 그가 머무는 곳에서 최선을 다합니다. 그는 감옥에서도 인정을 받습니다. 그는 감옥에서도 사람들을 잘 섬깁니다(창 40:4). 

소박한 행복은 자족하는 데 있습니다. 자족의 반대는 불만입니다. 불만을 품으면 불행합니다. 반면에 자족하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자족하는 사람은 자신의 작은 소유나 자신이 처한 환경에 만족합니다. 자족은 원죄를 타고난 인간의 천성은 아닙니다. 자족은 우리가 배우고 익혀야 할 신성한 성품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족하는 법을 배우고 익힐 줄 알았던 사람입니다.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빌 4:11-12). 

소박한 행복은 우정을 가꾸는 데 있습니다. 이번 모국 방문 중에 장경철 교수님을 만나 교제했습니다. 장교수님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행복은 우정이었습니다. 우정은 소박한 기쁨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친구라고 부르십니다(요 15:15). 우정은 격렬하거나 뜨거운 사랑이 아닙니다. 고요하고 은은한 사랑입니다. 소박한 사랑입니다. 그래서 우정은 천천히 자라는 나무와 같습니다. 참된 우정은 쉽게 시들지 않습니다. 우정이 주는 행복은 격렬하고 충동적인 사랑에 비해 그 수명이 깁니다. 우리 함께 소박한 행복을 배우고 가꾸도록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