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방문하게 될 때, 몇 년 전부터인가 자연스럽게 운전하는 것을 포기하게 되었다. 서울이 항상 복잡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길들, 모르는 길들이 너무 빨리 생겨서 어디를 갈려고 해도 길을 몰라 헤매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급변하는 세상의 흐름을 대변하듯 길의 종류도 많아지고 복잡해지고 있다.

길은 매일 매일 살아가면서 계속 선택하고 누구나 마주하는 것으로, 땅이라는 공간에서만 펼쳐지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나 과정도 길을 걷는 것이라고 말한다. 길은 한자로 도(道), 즉 진리를 말한다. 아무 것이나 진리라고 하지 않듯이, 아무 것이나 우리가 가야할 길이라고 할 수 없다. 더욱이 거리에서 길을 잃으면 천천히 오던 길을 다시 되짚어가면 되지만, 인생의 여정에서는 되돌릴 수가 없다.

그러므로 인생의 성공을 바란다면 본이 되는 올바른 사람의 길을 따라 걷는 것이 중요하다. 어느 길로 들어서느냐에 따라 종착지가 달라지는 것처럼, 누구의 본을 따르느냐에 따라 인생의 성패가 좌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백범 김구 선생님은 ‘눈 오는 길을 걸어갈 때 발걸음 함부로 하지 말아라. 오늘 내가 남긴 자국은 드디어 뒷사람의 길이 되느니라’고 말했다.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인생을 지혜롭게 살아가는 분명한 방법은 인생의 길을 올바로 걸어간 앞선 사람들을 따라가는 것이다.

우리가 따라야 할 최고의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길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을 아버지께로 인도하는 길(요14:6)이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길이 되시기 위해 하늘 보좌를 버리고 친히 이 땅에 오셨다. 그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 세례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셨다. 하나님의 모든 의를 이루시기 위해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침례를 받으실 때,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하였다. 분명히 침례는 예수님이 이 땅에서 친히 보여주신 두 가지 예식, 성찬과 세례 중 하나이다.

지난 금요일은 교회에서 침례식을 가졌다. 순복음교회(Full Gospel Church)는 처음의 순수한 복음, 성경 그대로의 복음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원칙과 열망 가운데 침례를 행하고 있다. 한글 성경은 “세례”라고 번역되어 있지만 정확한 번역은 분명히 “침례(Baptism)”이다. 침례를 받는 성도는 몸 전체가 물속에 완전히 잠겼다가 올라오게 된다. 아담의 타락 이후로 원죄와 자범죄 가운데 살아가던 인류는 대속의 은혜를 베푸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통하여서만 죄 사함을 얻게 되고, 또 예수님의 부활을 믿음으로 새 생명을 얻는 구원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침례는 예수님의 죽으심에 동참하는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예식으로써 육신에 속하였던 옛사람을 장사 지내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한 새 사람으로 변화되었음을 선포하는 것이다.

또한 침례는 하늘나라에 예비된 영원한 기업에 대한 약속과 보장의 의미도 함께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한 사람이 성도로서 천국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외적인 모양은 침례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렇기에 침례는 받는자 뿐만이 아니라, 이미 받은 모든 성도들이 함께 기뻐하고 축복하는 축제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