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 한 어머니가 이렇게 불평하는 것을 듣게 됐다.
“목사님, 우리 아이가 컴퓨터를 너무 많이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잔소리를 하면 막 화를 내고 대들어요. 정말 못 살겠어요. 너무 지쳤어요. 그냥 놔 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계속 잔소리 할 수도 없고, 어떻게 하지요?”

많은 부모가 청소년 비전센타에 전화해 이런 질문들을 한다. 그 질문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이렇다. “어떻게 하면 우리 아이 행동을 고칠 수 있지요? 목사님, 우리 아이를 좀 바꿔 주세요”

어떻게 하면 우리 자녀들이 행동을 바꿀 수 있을까? 모든 부모가 묻는 질문이다. 그런데 우리 부모는 너무나 중요한 한가지를 놓치고 있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그것은 부모가 아이 행동을 바로 잡기 위해서, 우리 자녀와 관계를 망치고 있다는 것이다. 자녀와 관계가 완전히 망가진 다음에 아이 행동만 고쳐지면 자녀 교육에 대해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어리석은 것이다.

나는 학부모에게 이렇게 조언한다. “행동을 고치는 것보다 관계가 먼저입니다. 아이와 먼저 친밀한 관계를 세우세요. 그 아이를 먼저 이해하려고 하고, 그 아이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무조건 우리의 생각에 맞추어서 아이 행동을 바꾸려고만 하지 마세요. 관계가 다 망가진 다음에 행동을 고쳐봐야 아무 소용없어요. 더 빗나가기만 할거예요. 하지만 관계가 잘 세워지고 나면 행동은 저절로 고쳐지게 돼 있어요. 시간이 걸려도 조금만 인내하고 참아 보세요.”

어떻게 하면 우리 아이 행동을 고칠 수 있을까? 그것은 바로 자녀와 관계를 먼저 세우는 것이다. 사랑의 관계를 세우는 것이다. 두려움이 없는 관계를 세우는 것이다. 많은 사람은 사랑의 반대말을 “미움”이라고 생각한다. 아니면, 좀 더 깊이 생각한 사람이라면 “무관심”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성경은 사랑의 반대가 바로 두려움”이라고 말한다. 요한 1서 4장 18절은 이렇게 선포한다.

“사랑 안에는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그렇다. 사랑의 반대말은 “두려움”이다. 사랑 안에는 두려움이 없어야 한다. 부모 자식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자녀가 아무리 어처구니 없는 행동을 해도, 엄마 아빠에게 두려움이 없이 말할 수 있어야 한다. 학교에서 나쁜 성적표를 들고 제일 먼저 달려가고 싶은 사람이 바로 엄마이고 아빠여야 한다. 나쁜 친구와 어울려서 어처구니 없는 잘못을 저질렀을 때도 제일 먼저 사실을 말할 수 있는 사람도 부모여야 한다. 물론 너무나 죄송한 마음을 가지고 말이다. 우리 부모는 언제든지 아이가 달려 올 수 있는 항구와 같은 존재여야 한다. “너의 모습이 어떻든지 간에 너는 나에게 소중한 존재다”라는 사실을 늘 자녀에게 상기시켜 줘야 한다.

하지만 만약 아빠에게 두려움이 있어서, 자신 진짜 모습을 보여 주지 못한다면, 부모와 자신 관계에서 뭔가 크게 잘못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모가 두려움과 죄책감을 주면서 자녀 행동을 고치고 통제하려는 것은 아주 어리석은 방법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 아이는 늘 부모 앞에서 자신을 거짓된 모습으로 포장하게 될 것이다. 겉으로는 착한 척 하지만 속으로는 엄청난 분노를 안고 살아가게 될 것이 뻔하다.

우리 자녀 모습 속에 또 다른 조승희 모습이 만들어져 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먼저 엄마 아빠와 좋은 관계가 형성되지 않으면 어떠한 것도 효과적이지 않다. 친밀한 관계를 만드는 것을 실패하면서 아이에게 무언가를 요구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