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평 관객들, 일본 특유 정적 연출과 옅은 감정선 연기 낯선 듯
저출산에도 유아동 수출 1위국 민낯, 90%가 미혼모 낳은 아이
양육 포기한 아이들 보살필 제도도, 민간 역량과 자원도 부족
"영혼 사랑한다" 자처하는 기독교, 영화가 던지는 질문 답해야
박욱주 교수님의 이번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 코너에서는 지난 5월 제75회 프랑스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일본 고레에다 히로카즈(これえだひろかず) 감독의 한국 영화 <브로커>를 분석합니다. 배우 송강호(상현), 강동원(동수), 배두나(수진), 이지은(소영), 이주영(이형사) 등 초호화 캐스팅을 자랑하는 이 영화는 이종락 목사님이 운영하시는 '베이비박스'를 모티브로 하고 있으며, 지난 8일 개봉 후 지난 편에서 분석한 <범죄도시 2>에 이어 박스오피스 2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편집자 주
◈일본의 아동권리: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바라본 일본의 아동권리 침해
베이비박스에 버려지는 아이들, 그리고 그 아이들을 빼돌려 불법 입양의 대가로 돈을 받는 브로커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브로커>가 지난 주 개봉했다.
이 영화는 일본의 사회문제, 특히 가족의 붕괴라는 주제를 진지하게 다뤄 감독으로서 역량을 인정받아온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연출과 각본을 맡았다. 이 작품으로 주연을 맡은 송강호 배우는 얼마 전 개최된 2022년 칸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영화에 대한 감상평은 호불호가 크게 갈리는 중이다. 지루하고 밋밋한 전개에 혹평을 남기는 관객들이 다수 눈에 들어온다. 일본 영화 특유의 정적인 연출 방식과 감정선 옅은 연기 및 대사가 국내 관객들에게는 낯설게 느껴지는 듯하다.
이로 인해 오랜만에 한국영화 1천 만 관객을 앞두고 있는 <범죄도시 2>에 비해 상당히 빈약한 티켓파워를 보여주는 중이다.
그러나 영화 연출 방식이나 서사의 흥미로움에 대한 혹평과는 별개로, <브로커>가 전달하는 주제의식은 누구든 한 번쯤 깊게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특히 자라나는 세대에 대한 신앙 교육과 전도의 책임을 지고 있는 기독교인들의 입장에서 영아 유기 및 아동학대 문제는 반드시 대응책을 강구해야 하는 문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활동 초기인 1991년부터 1994년까지 사회문제를 고발하는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두각을 드러낸 고레에다 감독은 1995년 상업영화 분야로 진출한 뒤 줄곧 일본의 현실적인 삶의 문제, 특히 가족의 문제를 다루는 영화들을 여러 편 연출한 바 있다.
그는 <아무도 모른다>(誰も知らない, 2004), <걸어도 걸어도>(歩いても 歩いても, 2008), <어느 가족>(万引き家族, 2018) 등의 작품으로 명성을 얻어, 현재 일본 영화를 대표하는 감독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 특히 <어느 가족>은 2018년 칸 영화제 최우수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해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고레에다 감독이 가족 문제에 주목한 이유는 그만큼 2000년대 이후 일본 내 가족 문제, 특히 가족의 붕괴와 아동 학대 문제가 심각해졌기 때문이다. 일본은 2000년 '아동 학대 방지 등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다. 한국이 2014년 '아동 학대 범죄의 처벌 등에 대한 특례법'을 제정한 것보다 14년이 빠르다.
일본은 1990년 후생노동성이 최초로 아동 학대 상담 건수를 통계로 조사하기 시작했는데, 조사 이후 상담건수는 매년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또한 아동 학대로 인한 사망건수는 증가세를 보이지는 않지만 매년 40-50명선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속내를 들여다 보면 일본 내 일반적인 아동 학대는 친부에 의해 자행되는 경우가 많지만, 아동 학대 살해나 치사 건수는 친모에 의해 자행되는 경우가 더 많다.
▲고레에다 감독의 영화 <아무도 모른다>. 네 남매를 버려두고 떠난 한 미혼모의 실화를 모티브로 삼는 작품이다. |
◈한국의 유아인권: 역대 1위 아동 수출 기록과 늘어나는 아동학대 사건들
이렇게 매년 점진적으로 늘어나는 아동 학대 상담 건수와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는 아동 학대 살해 건수를 놓고 일본에서는 많은 연구자들과 정책 결정자들이 문제의식을 표명하고 사태 해결을 위한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그리고 일본의 대중문화계도 이런 동향에 발맞춰 아동 학대에 관련된 드라마, 영화를 여럿 제작해 대중에 대한 교육과 계몽을 시도하고 있다.
예를 들어, 2004년작 고레에다 감독의 <아무도 모른다>는 1988년 한 미혼모가 아파트에 어린 네 남매만 남겨두고 집을 나간 스가모 아동 방치 사건을 모티브로 삼고 있다.
2008년작 <장미 없는 꽃집>(薔薇のない花屋)은 어렸을 때 유기되거나 스스로 부모와 연을 끊어야 했던 상처받은 아이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2010년작 <마더>(Mother)는 친모의 애인에게 매일 구타를 당하는 어린 소녀를 죽은 것으로 꾸며 데려가 사랑으로 키우는 한 조류학자의 위태로운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2015년작 <유리의 갈대>(硝子の葦)는 심한 가정폭력과 학대에 시달리던 이들이 치밀한 계획을 세워 가해자들을 살해하는 복수극을 주된 서사로 삼는다.
역시 2015년 제작된 <너는 착한 아이>(きみはいい子)는 2010년 발생한 오사카 아동 아사 사건을 모티브로 삼은 작품이다.
이처럼 일본에서는 고레에다 감독의 <아무도 모른다> 이후 영아 유기나 아동 방치, 아동 학대 사례들에 대해 엄중한 문제의식을 표명하는 작품들이 자주 제작되었다.
한국은 뒤늦게 관련 주제에 대한 영화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드라마 <킬미, 힐미>(2015)와 <시그널>(2016)이 단편적으로나마 아동학대에 관련된 서사를 선보였고, 2018년 일본 드라마 <마더>가 국내에서 리메이크되었다.
그리고 2021년 초 정인이 사건에 대한 전국민적인 공분이 아직 수그러들지 않은 시기, 아동학대 문제를 정면으로 저격하는 <고백>(Go Back)이 개봉된 적 있다.
국내 대중문화계에서 확인되는 이런 조류는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한국의 유아 인권 및 아동 권리 침해 실태를 반영하고 있다.
한국도 2010년대 들어 유아나 아동에 대한 친권자들의 무책임과 폭력이 돌이킬 수 없는 비극으로 비화되는 사례들이 점차 증가 추세에 있다.
▲외국인의 눈으로 바라본 한국의 영아 유기, 불법 입양 등 국내 유아인권 침해 실태를 저격한 영화 <브로커>. |
그런데 한국은 이미 1970년대부터 영유아 및 아동 인권이 대단히 취약한 나라로 전 세계에 인식되고 있었다.
미혼모를 크게 멸시하는 풍토와 입양에 대한 부정적 인식 때문에, 한국은 1970년대 이래 누적 수치로 따져 세계에서 가장 많은 아기들을 외국으로 수출해 입양시킨 기록을 갖고 있다.
대한민국은 197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압도적인 유아 및 아동 수출 1위 국가였다. 그 뒤 2011년까지 세계 3-5위 선을 유지하다 2011년 다시 1위 국가로 올라섰고, 이후로도 아동 수출 수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이렇게 수출된 아이들은 거의 대부분 미국으로 보내져 입양된다.
우리나라만큼 아동을 많이 수출하는 국가로는 중국, 러시아, 에티오피아 등이 있다. 한국은 유독 경제 발전도에 비해 아동 수출 비율이 높아, 향상된 국력에 부합하는 유아 인권 및 아동 권리 의식을 갖추지 못한 나라로 평가되고 있다.
이렇게 수출되는 아동의 90%는 미혼모가 낳은 아이들이다. 국내에서는 미혼모들이 양육을 포기하거나 무책임하게 버린 아이들을 적절히 보살필 만한 제도적 지원도, 민간의 역량과 자원도 부족하다. 베이비박스같은 방편이 제도적으로 인정받지도 못한다.
그나마 길바닥에 버려지는 아이들을 어떻게든 살려보려 일부 기독교 단체에서 베이비박스를 운영하지만, 영아 유기를 조장한다는 반대 여론에 시달리고 있다.
<브로커>에서 고레에다 감독이 영아 유기 문제를 서사의 핵심 요소로 다룬 데는 이러한 배경이 자리잡고 있다. 가족 간 사랑, 책임, 희생, 유대감을 중시하는 외국인 감독의 눈으로 볼 때, 한국의 가족 문제 가운데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문제가 영아 유기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영화 <브로커>의 메시지는 높은 수준의 인권의식, 인간애, 그리고 예리한 비판 능력을 지닌 외국인들이 국내의 유아 인권 상황을 두고서 한국인들에게 던지는 질타 섞인 물음이나 다름이 없다.
우리 한국인, 특히 자라나는 세대의 영혼을 사랑한다고 자처하는 한국 기독교인들은 이 물음에 성실히 답해야 할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다. <계속>
▲아동 수출은 한국의 고질적인 유아인권 및 아동권리 문제를 보여주는 증거로 인식되어 왔다. |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