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는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선교를 활발히 펼치고 있는 교회 이야기를 담으려고 한다. 많은 나라가 있음에도 도미니카 공화국을 선정한 이유는 뉴욕에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온 이들이 많으며, 또한 기자가 지난 여름에 도미니카 공화국 단기선교를 참여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 첫번째로 순복음 뉴욕교회(담임 김남수 목사)가 산토도밍고에 위치한 다리밑 교회(실제 명칭은 '영원한 소망교회')에 9.11 참사로 목숨을 잃은 준구를 기억하며 세우게 되는 준구 메모리얼 스쿨 이야기를 담고자 한다. 다리밑교회 김성욱 선교사(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미주총회 뉴욕노회 소속)와 김 목사와 만남은 도미니카 공화국에 선교차 방문했던 김남수 목사가 다리밑 마을을 지나다가 우뚝 솟아있는 십자가를 발견하고 지나가던 차를 멈추고 찾아오며 시작됐다. 선교지 어린이 교육을 집중적으로 펼치고 있는 순복음 뉴욕교회와 7백여 명 어린이를 지도하고 있는 다리밑 교회는 비전을 공유하고, 이곳에 준구 메모리얼 스쿨을 건립하기로 결정하고 현재 부지를 매입했으며, 설계도까지 논의한 상태다.

또한 순복음 뉴욕교회가 1990년 단기선교를 처음 시작할 때, 준구 작은아버지인 강성관 목사와 다수 청년이 도미니카 공화국 산토 도밍고를 찾는 인연이 있기도 하다. 당시 단기선교팀은 현지 주일학교 사역 및 교회건축을 도왔으며, 노방전도·축호전도·부흥회 등을 실시했었다. -편집자 주-


2001년 9월 11일 오전 8시45분, 110층 높이인 뉴욕 세계무역센터(WTC) 북쪽 건물 상층부에 이슬람 테러리스트 납치여객기가 충돌하는 것으로 9.11 참사가 시작됐다. 이어서 세계무역센터 남쪽 타워에 납치 여객기가 충돌하며 전 건물이 완전히 붕괴 됐고, 미국 국방부 건물인 펜타곤 건물에 납치 여객기가 충돌하고 백악관을 목표로 한 납치 여객기는 가는 도중에 추락했다.

끔찍한 동시다발적인 테러는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를 경악하게 했으며, 충격 속으로 빠트렸다. 911테러로 쌍둥이 빌딩과 세계무역센터의 47층짜리 부속건물, 펜타곤 일부의 건물이 붕괴됐다. 또한 워싱턴의 국무부 건물 앞에서도 두 차례의 차량 폭탄테러가 발생했으며, 국회의사당과 링컨기념관에 이르는 국립광장에도 폭발로 보이는 불이 나면서 전국 정부 건물에 대피령이 내려졌다.

911테러는 3천여 명의 목숨을 잃게 했으며, 수천 명이 부상당했으며 6년이 지난 지금도 유가족들의 아픔은 지워지지 않고 있다. 이중 20여명의 한인도 목숨을 잃었으며, 순복음뉴욕교회 강성순 집사·강필순 권사 부부의 아들인 강준구 씨(당시 34세)가 포함돼 있었다.

911테러가 6년이 지난 후 9월의 어느 날, 강 집사의 집에서 강 집사의 4형제(둘째 강성관 선교사-파라과이 선교사, 셋째 강성윤 씨, 넷째 강성호 씨)와 도미니카 공화국 영원한 소망교회 김성욱 선교사가 자리를 함께 했다. 순복음뉴욕교회에서 도미니카 공화국에 준구를 기억하며 준구 메모리얼 스쿨을 설립하기로 했기에, 마침 뉴욕에 온 김 선교사와 식구들이 한 자리에 모인 것이다.

강집사 부부의 첫째 자녀였던 준구씨는 5살 때부터 부모와 헤어져 살았었다. 고향에서 의료사업을 하던 강 집사는 아들을 서울로 보내 공부를 시켰던 것이다. 81년에 미국으로 이민 오며 7년만에야 아들과 함께 살았다고 회상하는 강 집사는 "어릴 적 부모의 사랑을 받고 살아야 하는데 너무 미안하다. 이런 일을 겪으니까 더욱 생각이 난다"고 아들을 그리워한다.

준구는 미국에서 브롱스 과학고를 다니며 브로클린 택에서 공부했다. 증손이었던 준구는 아래로 3명의 여동생을 뒀다. 미국에 와서 말썽 한번 안 부리고 똑바로 컸던 준구였다. 부모에게 싫은 소리 한번 듣지 않고 자랐던 준규는, 때로는 부모의 비즈니스를 돕기도 했으며, 동생들이 숙제를 안하면 회초리를 들면서 부모 역할을 했던 믿음직한 아들이었다. 뿐만 아니라 '교회 모임이 끝난 뒤 집에 안 가고 늦게 돌아다니면 안 된다'며 교회 동생들도 혼낼 만큼 사랑이 많은 사람이었다. 어린 시절, 미국인 목사에게 신앙을 배웠던 준규는 교회 봉사에 열심이었다. 커네티컷에서 혼자 살 때도 선교지로 꼬박꼬박 선교헌금을 보내며 믿음생활을 했던 아들이었다.

결혼한 뒤 커네티컷에서 신혼집을 차렸던 준구씨는 처가가 있는 뉴저지로 이사 오며 세계무역센터 100층부터 105층까지 위치한 캔터 피츠체럴드사의 재정 파트에서 매니저로 일했다. 부모는 책임감이 큰 일을 맡았던 아들이었기에, '백인과 이스라엘인 사이에서 일하는 게 얼마나 힘들겠는가'라며 걱정했었다고 한다.

부모의 환갑잔치 대신 2주 동안 알레스타 효도관광을 보내줬던 준구씨는 공항에서 부모를 모시고 집까지 갔던 9월 10일이 마지막이었다. 9월 11일, 아픈 몸을 이끌고 출근했던 준구씨는 쌍둥이 빌딩 서쪽의 104층에서 일했던 모든 직원들과 함께 아무런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그때 출근 안 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몸이 아프면 돈 벌어서 뭐하냐고 했었는데.. 하나님은 너무 일찍 열매를 따가셨다"고 안타까워하는 강 집사는 "고통과 어둠 속에서 6년이라는 세월을 지냈다. 그 일을 당한 뒤 1-2년 동안 너무 견디기 힘들었는데, 이제는 건강도 회복해 가고 있는 중이다"고 언급한다.

강 집사는 "장성한 아들을 하루아침에 주님 곁으로 보냈지만, 믿음으로 천국에서 다시 만난다는 기약을 가지고 생활하니 빨리 회복한 것이다"며 "지금도 너무 힘들어하는 유가족들이 많다. 당해보지 않은 이는 모를 거야"고 말끝을 흐린다.

지금도 젊은이들 중에 준구 만한 이를 찾아보기 힘들 것이라는 강 집사는 "준구가 뉴저지 안디옥교회를 다녔는데, 34살 때 장로를 시키겠다는 말을 할 정도로 교회에서 모범적으로 신앙생활을 했었다. 준구가 빨리 돈 벌어 자비량 선교를 하겠다는 말을 많이 했었다"고 회상했다.

준구씨는 2명의 자녀를 뒀다. 큰 딸이 현재 중학교 2학년인데, 아이는 '제일 좋은 게 아빠의 땀 냄새'라고 말하며 아빠를 기억하고 있다. 강 집사는 "며느리도 너무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지금은 샌디아고에 살고 있는데, 아이들을 건강히 잘 키워줘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고 언급했다.

현재 강집사 부부는 우드사이드에 위치한 아파트에서 8년째 살고 있다. 911테러를 당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는 이웃들은 911만 되면, 위로 카드도 보내고 저녁에는 촛불을 들고 추모해주고 있다고 한다. 올해에는 집에 늦게 왔는데도 촛불을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강 집사 부부는 "좋은 이웃들이 살아서 감사하다. 함께 눈물을 흘려주고 친절히 위로해줘서 감사하며 또한 조심스럽다"고 밝혔다.

이날 함께 식사를 끝낸 뒤 준구를 떠올리며 그의 모습이 담긴 비디오를 봤다. 할아버지 할머니 칠순잔치때 준구씨와 3명의 여동생이 함께 공연하는 모습과 그의 결혼식 장면, 그리고 911테러 이후 방송에서 취재한 준구씨에 대한 부분이었다. 칠순잔치때 멋지게 색소폰으로 '천사의 말을 하는 사람도'를 연주한 준구씨는 '할아버지는 밥 한 톨도 남기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공부안하면 회초리를 같이 맞으시며 저를 사랑해 주셨습니다"며 "우리가 사랑에 대한 노래를 많이 부른 것은 사랑을 많이 받았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은 기다리지 않는다고 했는데, 나중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 사랑 이야기를 많이 불렀습니다"고 말한다.

부모보다 먼저 간 준구씨 때문일까? 그의 어머니 강필순 권사는 눈물을 터트리고 만다. 어떻게 허망하게 잃은 목숨을 잊겠는가? '준구가 차지했던 자리가 너무 커 자리를 메우기 힘들다'고 말하는 강 권사는 아들이 생각이 날 때마다 비디오를 보며 그리움의 눈물을 흘린다.

이에 김성욱 선교사는 "준구와 같이 산 것보다 영생을 준구와 같이 살아간다는 것을 놓치면 안 된다. 우리가 잃은 게 아니라 백만 년 아니 그 이상을 함께 함을 할 것이다"며 "상처를 잘 이기고 준구보다 못한 이들을 도와주자. 하나님도 가장 사랑하는 아들을 이 땅에 보내, 십자가 달려 갈기갈기 찢어짐을 보시지 않았는가. 이 일로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가고 아픔을 이기면 더 큰 상급이 있을 것이다. 준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서다. 준구 메모리얼 스쿨로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유족들을 위로했다.

김 선교사는 "예수님이 천하보다 귀한 생명이라고 했다. 우리는 이 땅에서 해야 할 하나님의 사명이 있기에 목숨이 있다. 준구를 통해 다른 사람들을 인도한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당부했다.

한편, 준구 메모리얼 스쿨이 설립되는 도미니카 공화국 산토 도밍고의 김성욱 선교사가 사역하는 지역은 다리 밑에 2천여 세대의 판잣집이 있는 빈곤한 곳으로, 일주일에 2번밖에 물이 공급되지 않으며, 저녁에는 마약매매로 총소리가 끊이지 않는 극빈층이 살고 있는 지역이다. 김 선교사는 이곳에 영원한 소망교회를 통해 7백여 명의 어린이 사역을 하고 있다. 초등학생을 위해 설립되는 학교는 교실, 강당, 무료식당, 농구장 등이 들어서며 직업기술학교를 운영해 기술을 가르쳐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도 전할 계획이다.

도미니카 공화국은 인내교구(교구장 김종복 장로)에서 중심적으로 선교하고 있는 나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