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는 중동과 아프리카, 유럽을 잇는 요지에 있어 오래전부터 북아프리카를 대표하는 국제도시로 기능해왔다. 이집트는 물론, 북아프리카 정치, 경제, 문화 중심지다. 지금은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두바이에 밀려 중동 정치와 경제 중심에서 조금 밀려나는 듯한 느낌이지만 중동 맹주 역할을 해온 이집트 수도로서 카이로가 가진 위상은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실제 도시는 전형적인 개도국 대도시로서, 20~30년씩 된 낡은 차들이 뿜어대는 매연 때문에 숨쉬기 힘들 정도로 공기가 오염돼 있다. 수 천년을 버텨온 파라오 람세스 거석상이 환경오염 때문에 훼손될 지경이 돼 중앙역사인 람세스 2세역 앞 광장에서 2005년 다른 곳으로 옮겨졌을 정도다.

1960~70년대 이스라엘과 전쟁 이후에 아직까지도 복구가 제대로 되지 않았고, 경제도 미국 원조에 의존하는 탓에 성장하지 않아 도시 외관은 매우 낡고 허름하다. 주택난과 교통체증, 인프라 부족, 학교 부족 등 도시생활기반이 열악하고 때로는 식료품 같은 생필품 품귀현상도 일어난다. 1990년대 이래 몇 차례 테러 공격을 받은 바 있고, 2005년부터는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독재정권에 반대하는 거센 시위가 때때로 일어나는 등 불안한 기운이 감돌고 있다.

도심은 나일 델타(삼각주)가 두 갈래로 갈라지는 분기점 바로 상류에 있다. 가지가 뻗듯 갈라진 나일강이 여러 갈래로 카이로를 흐르는데, 다운타운은 주로 나일강 오른쪽 연안과 중간 섬인 게지라섬·로다섬, 강 왼쪽 연안을 따라 펼쳐져 있다. 시내는 전통적인 구시가지와 서구식 신시가지로 나뉜다. 노벨상 수상 작가 나깁 마흐푸즈 소설 배경이 됐던 구시가지는 남쪽 '올드 카이로'에서 동족 모카탐 구릉까지 이어진 넓은 땅에 펼쳐져 있다. 지금은 관광지로 변해버린 올드 카이로는 이집트 최후 왕조인 무하마드 알리 파샤 알리 왕조(1805∼1952) 시절 건설됐다. 오스만투르크 제국 총독으로 이집트에 파견된 알리는 오스만으로부터 독립을 선언, 독자적으로 왕조를 세우고 이집트 재건에 힘썼으며 근대화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이집트는 1882년 영국 군사점령에 들어갔고 간신히 명맥을 유지했던 알리 왕조는 1952년 이집트 혁명으로 붕괴됐다.

알리가 세운 올드 카이로 고풍스런 시타델(궁전) 성곽과 거대한 알리 모스크는 지금도 관광객 눈길을 끄는 명물이 돼 손님들을 반기고 있다. 하지만 매표소를 통해 들어가야 하는 올드 카이로를 제외한 그 주변 구시가지는 많이 낙후돼 지금은 슬럼가가 돼 있다. 이집트는 물론 전 세계 무슬림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이슬람 연구 본산 알 아즈하르 대학과 알 아즈하르 모스크도 구시가지에 위치해 있다.

신시가지는 운하를 매립해 만든 포트사이드에서 나일강 서쪽을 따라 펼쳐진다. 시내 중심은 타흐리르(해방) 거리와 람세스 거리. 정부 청사와 시청, 중앙우체국, 호텔 등이 몰려 있다. 투탄카멘의 황금마스크와 람세스 2세의 미이라 등 이집트가 자랑하는 보물들이 간직돼 있는 카이로 이집트박물관과 카이로대학, 아메리카대 같은 교육기관도 이 일대에 위치해 있다. 가든 시티와 가말릭, 마아디, 두키, 헬리오폴리스 등 신시가지에서 공항으로 이어지는 지역에는 고급 주택들이 들어서있다. 반면 람세스2세역 북쪽 슈브라에는 공장이 많고 노동자주택지가 형성돼 있다.

카이로 국제공항은 시 외곽 사막에 위치해 있다. 카이로 남서쪽에는 고대 근동 7대 불가사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유명한 피라미드들과 스핑크스가 있는 기제가 있다. 기제에는 쿠프, 멘카우레, 카프레 등 고대 파라오의 3대 피라미드가 있으며 그보다 더 시기가 앞선 조세르 왕의 계단식 피라미드나 후니 파라오의 굴절 식 피라미드를 보려면 사카라(고대의 멤피스) 같은 곳으로 더 나가야 한다.

위에서도 언급한바와 같이 카이로 거리는 교통 무법천지라 할 만큼 혼란하고 무질서하다. 거리에는 신호등이 거의 설치돼 있지 않으며 아무나 먼저 지나가는 사람이 왕이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특이한 현상은 자동차, 낙타, 달구지, 당나귀, 사람이 함께 섞여서 통행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동차 경우 새 차는 거의 없고 수없이 받쳐 북어대가리처럼 찌그러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얼굴을 붉히거나 시비가 없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들이 우리보다 더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