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덕영
장덕영

제조업자 다이달로스는 못 만드는 게 없다. 그 조상이 대장간의 신 헤파이스토스였으니 어지간하겠는가. 인류 최초로 날개라는 걸 제작하여 아들 이카로스에게 날아 보게끔 했으니 인정할 만하다[1]. 뭐든 스스로 만드는 재주가 있어 남부럽잖겠다. 비즈니스를 위해 주문받은 대로 만들어 낼 테고 물건은 돈 받고 넘기면 끝이다. 수요자의 요구에 맞춰 성실히 따르면 되겠는 바, 어딘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생각 양심 배려는 무시해도 되는지.

크레타 섬의 왕비 파시파에는 포세이돈이 보낸 황소[2]를 흠모한 나머지 기묘한 생각을 품는다. 파시파에는 황소를 보고 욕정을 느껴, 크레타 섬에 조카 살해죄로 유배와 있던 다이달로스에게 나무 암소 한 마리 깎아 달라 주문한다. 그 안에 들어가 황소의 씨를 받아 아들을 낳으니 황소 머리에 인간의 몸, 미노타우로스다. 해괴망측한 사건에 분노한 미노스왕 역시 다이달로스를 시켜 영원히 빠져나올 수 없는 미로 라비린토스를 짓게 해 괴물을 가두고 만다. 이후 이야기는 테세우스 신화로 넘어간다. 다이달로스는 파시파에 주문과 미노스왕 명령에 따라 제조와 건축을 성실히 행할 뿐이다.

1945년 7월 16일 사상 최초의 핵폭발 트리니티 실험이 진행된다. 삼위일체 트리니티가 이런 데 쓰여 몹시 불편하다. 어쨌거나 실험 후 두 종류의 핵폭탄을 제조해 낸다. 리틀보이와 팻맨이다. 미 국방부는 세계대전을 종식시키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핵폭탄 투하를 결정한다. 8월 6일 리틀보이가 히로시마에, 8월 9일 팻맨이 나가사키에 떨어진다. 폭탄 두 개로 25만가량 죽는다. 승리자의 기술이 가져온 참상이며 패배자의 오만이 몰고온 재앙이다. 기밀유지하 UC Berkeley 이론 물리학자 오펜하이머를 주축으로 한 맨해튼 프로젝트(원자폭탄 제조계획)의 결과다. 원폭 성공과 일본 패망을 확인한 후 1945년 10월, 오펜하이머는 원자폭탄 설계와 제작 일을 맡아온 로스 알라모스 연구소 소장직을 그만둔다. 오펜하이머도 공직자 생활 내내 국가의 주문에 충실했고 주문받은 물건을 세상에 내놓았을 뿐이다.

나치 친위대 소속의 루돌프 아이히만이란 자가 있다. 독일 패망 후 아르헨티나로 도망하여 15년간 은둔하며 세상 평화롭고 자유롭게 살아간다[3]. 이스라엘 정부가 들어서고 정보기관 Mossad는 전범자 추적에 나선다. 한민족 우리가 일본 전범자를 잡아내고 싶은 이유와 같다. 모사드는 지구 끝까지 찾아가 결국 체포, 이스라엘 법정에 세우고 만다. 루돌프 아이히만. 당시 유럽에 퍼져 사는 1200만 유대인 중 절반을 색출, 그들을 동으로 동으로 쓸어 모아 최종 도착지 폴란드 가스실로 압송한 수송 최고 책임자다. 초급장교 중위 때 이미 오스트리아에서 5만의 유대인 긁어모으기를 시작으로 3년간 600만을 게토로 보내거나 가스실에 공급하여 중령까지 진급한, 좋게 말해 그도 국가의 명령에 충성한 군인일 뿐이다.

1961년 이스라엘 법정에 아이히만이 서 있다. 그의 얼굴에서 악마성이라곤 전혀 볼 수 없는, 그저 평범한 이웃이다. 법정에서 그는 전쟁 상황을 언급하고 명령이란 어휘를 거들먹거리며 조국에 충성했음을 주장한다[4]. 첫 재판부터 403회에 걸쳐 진행된 재판 과정을 한나 아렌트가 목도하여 책으로 출간한다. 한나는 법정에 선 그를 무슨 죄로 판결할가에 고뇌한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 이름 붙여 '악의 평범성' Banality of evil을 세상에 알린다. 그에 충분히 적확한 이 죄목은 돌에 새기고 파피루스에 적은 사사로운 법령까지 포함하여, 함무라비 법전 이후 존재하는 모든 법률문서에 명시된 바 없고 뉘른베르크 전범재판 이전엔 듣도보도 못한 신개념 타이틀이다. 악은 악마에게서만 나오는 게 아니다. 인간 누구나 극한 상황에 들어가면 악마적 요소가 드러난다. 하다못해 평범한 이웃 아저씨도 주문과 명령에 따라 목숨 600만을 아무렇지 않게 제거한다. 악은 평범 속에서도 생겨나 세상을 파괴할 수 있다. 한나 아렌트는 '생각 없는' 그의 행동을 유죄로 기록한다.

이날은 안식일이니 유대인들이 병 나은 사람에게 이르되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

이 말을 오늘 어떻게 바꾸어야 쉬이 이해할 수 있을까 고민한다. 병원 쉬는 날이니 피 흘리더라도 집에서 고통을 참고 있어라 혹은 휴일이니까 병 나면 안 돼, 뭐 이런 정도 아닐까.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출산하면 안 되고 아프지 말아야 하며 교통사고는 더더욱 나서는 아니된단 말이다. 안식일이니까. 서른아홉 항목에 걸쳐 일일이 열거해 둔 안식일 금지 목록 ( Melacha라 한다 )을 보면 참으로 가관이다. 태반은 농사 관련 노동에 대한 금지다. 밭 갈고 씨 뿌리며 추수하여 타작하는 것과 실 뽑기나 베틀에 실을 거는 행위, 매듭, 바느질, 재단, 도축, 불 피우기와 불 끄기, 건축은 말할 것도 아니고, 공공장소에서 대략 2미터 이상 물건 이동 금지 등 참 하릴없는 인간들이나 할 짓이라 하겠다. 안식일에 알파벳 철자 두 개 이상 쓰거나 지울 수 없다는 조항은 멜라카의 압권이다. 과히 유대인이라 하겠다. 지구촌에 저렇게 하고 사는 족속이 누구란 말인가. 그 옛날 농경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그에 맞는 일상 행위의 금지 곧 농사가 노동의 전부였기에 안식일에 노동을 금지하여 천지창조 때에도 하루 쉬었던 그때를 잊지 말자는 좋은 전통으로 받아들이겠다. 백보 양보하여 이해하겠다. 그럼 지금 그들은 어떤가.

오랜 세월 거래한 어느 유대인 고객이 하도 급하다 설치는 바람에 밀어붙여 공사한 적이 있다. 부지런 떨어 공사 준비 싹 해놓은 후, 전기 스위치만 좀 켜 달라고 부탁한 바, 자기네는 스위치 켜는 일조차 할 수 없다며 나보고 알아서 해달라 한다. 별 도리 없어 토요일 새벽에 뛰어나가 스위치만 켜고 집에 돌아온 기억을 갖고 있는 내게, 유대인들은 상종 못 할 구약에 머문 사람들로 인식되어 있다. 그토록 안식일 금지 규정을 지키고 싶으면 농경사회로 돌아가든가 (물론 농경사회에서도 저 안식일 규정은 문제겠지만) 공동사회를 떠나야 한다. 며칠간의 노동을 마치고 하루 쉰다는 게 얼마나 숭고한가. 유대의 안식일 규정은 창조 때 명시한 안식이 아니요 억지 생트집으로 짜여졌다고 본다. 율법주의에 매여, 늘 율법 지키는 일에만 몰두하다 본질의 중요성을 망각한다. 안식일에 병자 고친 사건으로 유대인들이 예수를 박해하게 된 제1차 안식일 논쟁 이야기가 그거 아닌가.

한 천사가 가끔 베데스다 연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한다. 물결 일 때 먼저 들어가야 병이 낫는 바, 사족 멀쩡한 인간들 때문에 이 환자는 물가에도 이르지 못하고 서른여덟 해를 속태우며 살아간다. 예수께서 "일어나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는 말씀으로 치유했건만 병자가 새 삶을 이어가는 아름다운 정의와 본질은 뒷전이고, 그날이 안식일이냐 아니냐는 무용의 탁상공론에 갇힌 게 유대인이요 오늘을 사는 우리더라.

다이달로스는 고객의 주문에 성실한 제조업자다. 오펜하이머는 공직자로서 관료 행정에 충실히 임한 공무원이다. 히틀러의 충복 아이히만만큼 조국의 명령에 철저한 군인이 어디 있는가. 한결같이 주문과 행정과 명령에 목숨 걸고 산 자임에 틀림없다. 문제는 요청받아 제조한 물건이 우리 세상에 어떻게 쓰이며 명령대로 시행한 행위가 우리 인간에게 적합한가에 있다. 아우슈비츠행 유대인 수송이 무슨 폴란드 단체관광인가. 아이히만은 수송 이유를 알려 하기는커녕 외려 주문자에게 따지라고만 주장한다. 누가 얼마나 죽어나가는지 헤아리기보다 되레 명령자에게 책임지라 떠들어댄다. 잡다한 짓거리들을 율법이라 늘어놓고 무모한 금기마저 정의롭다고 주장한다면 우리는 그런 행위를 성실 충실 충성이라 말하겠는가.

인간에게서 생각 양심 배려 없음은 주문과 명령에 충실했다손 쳐도 하나님 보시기에 인간적이지 못한, 너무나 인간적이지 못한 행위다

[1] 다이달로스는 집짓는 건축부터 제조 끝판왕이랄 만큼 온갖 재주가 있다. 조카 페르딕스가 물고기 가시(등뼈)에서 톱을 연상, 발명하자 시기하여 성채에서 밀어 떨어뜨려 죽여 신으로부터 크레타 유배를 판결받는다. 크레타 섬의 왕비 파시파에가 저지른 악행의 결과물, 미노타우로스를 제거하려 아테네에서 테세우스가 도착한다. 테세우스를 연모하는 공주 아리아드네에게 괴물 제거 후 미궁에서 테세우스가 무사히 빠져나올 방법마저 조언하는 바람에 다이달로스는 미노스왕의 미움을 얻어 아들 이카로스와 함께 성채에 갇힌다. 날개는 세상을 날아보자는 꿈 이전에 탈출을 위한 도구로써의 기능이 먼저였다.

[2] 제우스와 에우로페 사이에 세 아들이 크레타 섬에서 태어나고 이들은 크레타 왕의 양자로 들어간다. 왕위 계승을 둘러싸고 첫아들 미노스는 포세이돈에게 도움을 청한다. 포세이돈은 흰색 황소 한 마리를 주며 신들께 제물로 바치라 한 일이 있는 바, 왕이 된 미노스가 이를 무시했는지 기억 못 했는지 하여튼 결과적으로 요청 미이행으로 포세이돈의 저주를 받는다. 포세이돈은 크레타로 다시 황소를 보내 왕비 파시파에가 욕정에 빠지게끔 한다.

[3] 연합군 포로수용소에서 아이히만은 고급장교 신분을 감추고 공군 이등병으로 위장하여 목숨을 연명한다. 이차저차 수용소를 탈출, 시골에서 나무꾼으로 살다가 1950년 나치 비밀조직의 도움으로 이탈리아를 거쳐 아르헨티나로 도망한다. 현지에서 새로 신분증(가명, 리카르도 클레멘트)을 발급받아 오스트리아에 있던 가족들마저 용케 빼내오더니 벤츠 공장에 취업하여 먹고산다. 능수능란한 악마의 사술을 들여다 본다. 참고로 아이히만 체포조는 12명의 자원자로 구성되고 이중에는 어릴 적 아우슈비츠에서 목숨 건진 유대인도 있다. 마치 12지파를 대표하여 한 명씩 나왔다는 생각이다.

[4] 종전 직후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소에 불려 나온 나치 고급 장교의 태반이 명령복종에 따른 무죄를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