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성서를 읽다보면 아주 특별한 단어 ‘유쾌하다 refreshing’는 단어를 만나게 됩니다(행 3:19). 나는 이 단어를 지나치며 '유쾌하다' 라는 말에 무척 흥미가 당겼습니다. 왜냐하면 인생은 그리 유쾌하다고 말할 수 없으며, 유쾌한 존재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반적 통념을 뛰어넘는 말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과연, 인생이 유쾌하게 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유쾌하게 될 수 있을까?

본래 ‘유쾌하다 refresh’ 라는 ajnayuvcw anapsucho 는 ajnav ana(반복, 역전) 라는 단어와 yuvcw psucho(호흡하다) 라는 두 단어로 만들어진 합성어입니다. 이 단어를 사도행전에서 ajnavyuxi" anapsuxis(refreshing) 이라는 형용사형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영어도 역시 re(다시)와 fresh(새로운, 신선한)의 합성입니다. 무슨 뜻인고 하면 본래 fresh 했는데, 언제부터인가 그렇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또 언제부터인가 그것이 회복 refresh 하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사도행전을 이해하고 믿음을 이해하고 성령 역사를 이해하는데 있어 중요한 의미를 주는 단어입니다. 그리고 yuvcw psucho(호흡하다) 명사형은 바로 yuchv psuche(호흡, 영)입니다. 굳이 의미를 따지자면 영이 회복이 되면 refreshingness가 이뤄지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해 에덴 동산에 살게 했는데, 그 때는 유쾌한 나날로 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이름조차도 ‘에덴 Eden(기쁨)’이었습니다. 에덴은 기쁨의 동산이었습니다. 하나님과 교제하며 나날이 즐거움이 넘치는 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삶의 패턴이 무너진 것은 바로 죄가 에덴 동산에 들어 온 이후부터였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회복하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어떻게? 바로 사도행전 2장의 역사가 일어난 이후부터라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은 성령 강림 사건을 말하고 있는 장입니다. 성령이 오시면 우리 인생에게 있어 ‘유쾌하게 되는 날 the time of refreshing'이 올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성령을 체험한 베드로 사도가 설교 중에 한 말입니다. 참으로 의미심장한 말입니다.

우리는 언제부터 어디서 freshing 한 날을 잃어버렸는지 알아야 하겠습니다. 인간사 속으로, 사람 속으로 죄가 들어오는 그 날부터였습니다. 그러나 감사한 것은 성령이 우리에게 오시면 우리는 다시 그것을 회복해 refreshing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 성령을 통해서 항상 refreshing 한 날을 살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인생에게 있어 아주 중요한 의미를 던져주는 말입니다. 우리는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항상 성령을 사모해야 하겠습니다. 오! 성령이여! 오시옵소서! 오늘도 우리에게 성령으로 충만케 하옵소서! 그래서 우리의 날이 상쾌한 하루가 되게 하옵소서! 날마다 상쾌하게 살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