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의 수도. 현지어로는 '알 까히라'(Al-Qāhirah)라 부른다. 나일 강 델타 끝부분, 지중해를 바라본 곳에 위치해 있다. 면적 83㎢, 인구 약 1700만 명. 1922년 이집트가 독립했을 때만 해도 인구가 60만 명 정도에 불과했지만 이후 급격히 늘었고, 지금도 계속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연평균 강수량 25㎜의 사막기후로, 연간 한,두 차례 적은 양의 비가 내리는 정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인구가 생활할 수 있는 것은 나일 강의 혜택 때문이다. 7월 평균기온 27.7℃, 1월 평균기온은 12.7℃다. 사막기후라고는 하지만 위도가 높은 편이고 건조하기 때문에 아라비아반도의 사막이나 이집트 남부 아스완 같은 지역에 비하면 견디지 못할 정도의 더위는 아니다. 오히려 따뜻하고 쾌적한 편이어서 유럽 관광객들이 많이 찾을 정도다.

고대 이집트 제국은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에게 정복됐고, 알렉산드로스의 휘하 장군이던 프톨레마이오스의 지배를 받는 땅이 됐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마저 클레오파트라를 마지막으로 로마제국 초대 황제 옥타비아누스(아우구스투스)에게 멸망한 뒤 이집트는 유럽세력의 지배를 받았다. 그러다가 7세기 아라비아반도에서 이슬람교가 등장하고 아랍인들의 정복전이 벌어지면서 642년 아랍에 넘어갔다. 당시 아랍 군을 이끌고 이집트를 점령한 아무르 이븐 알 아스는 나일강 하류(나일강은 북쪽이 하류다) 바다 가까운 곳, 고대도시 알렉산드리아와 인접한 푸스타트에 군영을 설치, 통치 거점으로 삼았다.

AD 870년 바그다드(오늘날의 이라크) 칼리프와 다마스쿠스(오늘날의 시리아) 칼리프들이 서로 나뉘어 싸움을 벌이는 와중에 아흐마드 이븐 투른은 반(半) 독립적인 왕조를 세우고 푸스타트 북동쪽에 신도시 카타이를 세웠다. 그러나 카타이 시대는 오래 가지 못했고, 100년 뒤인 969년 파티마 왕조의 칼리프 무이즈가 다시 이집트를 정복해 카타이 바로 옆에 새 도시를 만들었다. 무이즈는 이 도시에 '카히라(승리자)'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것이 알 카히라, 오늘날 카이로의 출발이 됐다.

당시 성벽으로 둘러싸인 시가지는 여러 지구(하라)로 구획됐고, 하라에는 모스크와 시장(스쿠), 공중목욕장(하맘) 같은 생활공간들이 있었다. 예루살렘을 기독교세력에게서 수복한 이슬람의 영웅 살라후 앗딘(서방에는 '살라딘'으로 알려져 있다)은 이집트의 군주이던 시절(12세기) 카히라으로 도시를 확대했고, 이후 카이로는 바그다드를 대신해 이슬람 세계의 중심이 됐다.

1517년 오스만투르크의 셀림 1세의 정복으로 이집트는 속주가 됐고, 카이로도 영광의 빛을 잃었지만 주민 수는 계속 늘었다. 나폴레옹의 원정 같은 수차례 전쟁을 겪고 19세기 무하마드 알리 왕조 아래에서 근대도시 카이로가 정비돼 오늘날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됐다. 오늘날의 카이로는 알리 왕조의 올드 카이로를 비롯해 피라미드가 있는 기제, 헬리오폴리스 등을 모두 포함한 메갈로폴리스다.

여기서 현대 카이로를 설명하기 전에 카이로의 밤 풍경을 소개하려고 한다. 이집트의 인구는 약 7천만으로 추정하며 카이로 인구는 1,700만 명이다. 중동지역은 아프리카와 아라비아 반도의 사막성 기후이기 때문에 낮에는 무척 뜨겁고 밤에는 시원하다. 그러므로 이 사람들이 낮에는 활동이 극히 제한되어 있으므로 밤에 거리로 쏟아져 나와 낭만을 즐기고 있다. 카이로에는 맥주 집, 카페, 클럽 등 술집이 전혀 없고 유흥업소는 법으로 규제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놀거리가 전혀 없는 재미없는 죽은 도시에 불과하다. 그러나 젊은 연인들이 다 낡은 고물차를 타고 시내광장으로 모여들어 수천, 수만 명의 군중들이 맑은 밤하늘의 별을 보며 행복을 찾고 사랑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간간히 서있는 가로등 밑에서, 혹은 잔디광장, 대개는 아스팔트 위에 모여 앉아 밤을 지새우고 있는 것이다. 특히 주말이면 카이로의 밤은 마치 무슨 축제라도 벌이는 것처럼 수많은 인파로 장관을 이루고 있다.

미국이나 선진국가에는 먹을거리, 놀거리 문화가 발달되어 먹고, 마시고, 즐기면서도 행복을 찾지 못하고 살인, 강도, 폭력 등이 난무하여 밤거리가 두렵고 무섭지만 이들은 가진 것도 별로 없고 부자도 아니어서(GNP 600-700달러) 고작해야 물병 하나로 목을 축이며 선진국가에서 쓰다버린 2,30년 전 모델의 고물차를 몰고 다니다가 길 한복판에 서기가 일수지만 마음만은 그 어느 민족보다도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