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작전명 발키리>, 해당 계획 흥미진진하게 그려
본회퍼, 반정부 활동 이유로 체포됐다가 가담 드러나
현 집권세력, 히틀러와 달리 매우 소심하게 정국 운영
◈신학과 암살: 디트리히 본회퍼와 영화 <작전명 발키리>
미국 내 종교학 관련 학회들 가운데 최대 규모인 미국종교학회(American Academy of Religion)의 연간 정기 학술회의가 11월 말 개최되어 12월 10일까지 진행되었다.
작년까지 미국 현지에서 컨퍼런스 장소를 정해 대면으로 전체 발표와 토론을 진행했던 것과 달리, 올해는 코로나19 확산 때문에 화상회의 시스템을 이용해 회의를 진행하게 되었다.
올해 학술회의는 미국성서학회(Society of Biblical Literature)와 공동 주관으로 개최되었다. 회기 중간 중간 한국의 신학 연구자들도 발표하고 토론하는 장면들이 목격되었다.
미국 현지에 방문하지 않고 전 세계에서 온라인 혹은 모바일 기기를 통해 학술회의 참석이 가능해졌다는 점에서, 코로나19가 국내 신학 및 종교학 연구자들에게 오히려 좋은 기회를 마련해준 셈이 되었다.
코로나19의 확산 사태 자체는 당연하게도 불행한 일이지만, 이를 통해 비대면으로 학술연구 발전 기회를 얻을 수 있었던 점은 만연한 불행 속의 작은 위로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학회에서 본회퍼 연구분과의 발제 및 토론회에 입장해 본회퍼 신학에 대한 다양하고 새로운 해석과 견해들을 접할 수 있었다. 클리포드 그린(Clifford Green) 같은 본회퍼 연구의 거장을 온라인으로 만나보는 참신하고 뜻깊은 경험도 할 수 있었다.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국내에서도 신학 및 종교학 연구자들이라면 적어도 한 번 이상 반드시 들어본 적 있는 신학자일 것이다.
그는 반정부 활동으로 나치 당국에 체포되어 2년간 수용소에 수감된 뒤, 1944년 시도된 히틀러 암살 계획에 가담한 사실이 확인되어, 독일의 항복 선언을 약 한 달 남겨놓은 시점에서 교수형을 당한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영화 <작전명 발키리>(Valkyrie, 2008)는 본회퍼가 연루된 히틀러 암살 미수 사건, 이른바 '발키리 작전'의 내용을 흥미진진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본회퍼는 독일 육군 참모총장 출신의 예비역 장성 루트비히 베크와 클라우스 폰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이 계획하고 있던 7‧20 음모(1944년 7월 20일 히틀러를 암살하고 베를린의 예비군 병력을 동원해 수도를 장악해 새로운 정부를 구성하는 계획)에 가담하고 있던 1943년 4월, 미리감치 나치 정권에 의해 체포되어 수용소에 수감되었다.
▲7‧20음모를 다룬 영화 <작전명 발키리>에 등장하는 클라우스 폰 슈타우펜베르크 대령(톰 크루즈 분). 거사의 실행을 주도했던 인물이다. |
이 히틀러 암살 계획에는 당시 히틀러의 정국운영과 전쟁 방향에 반대하던 7,000여명 가량의 독일 내 유명 정치인들과 군부 지도자들이 대거 가담하고 있었다. 이들 중 약 5,000여명이 사건 이후 체포되어 사형을 당했다.
본회퍼는 1943년 체포될 당시 히틀러 암살미수 사건이 아니라 나치 정권의 폭력적 국가 운영에 반대하는 독일 고백교회 지도자로서 반정부 활동을 한 이유로 체포됐다가, 1년 후 7‧20 음모가 실패한 뒤 관련 인물 조사 과정에서 해당 암살 시도에 가담한 것이 드러나 수용소에서 사형을 당했다.
이렇듯 본회퍼는 정의 구현을 위해 폭력조차 불사하고 목숨을 바친 저항과 실천의 기독교 지도자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이러한 행적은 그의 신학적 사고 전반을 조망해 봤을 때 단지 말단의 결과론적 면모에 불과하다.
그와 같이 절박한 행동에 나서기 전, 그는 미리감치 독일의 철학과 신학 역사 전반을 통해 형성된 근대 독일의 인간 이해에 대한 심오한 분석과 비판을 마친 상태였고, 그 심각한 문제점을 지목해 대단히 정교한 신학적 대안을 제시해 놓은 상태였다.
본회퍼가 히틀러 암살시도에 가담한 것은 나름 방대한 신학적 작업을 이뤄놓은 상황에서, 탄탄한 사상적 고찰과 고민을 바탕으로 결정한 일이었던 것이다.
◈신학과 실천: 본회퍼에 대한 심층적 이해의 필요성
지난해 전광훈 목사가 현 정권과 대통령에 대한 비판의 각을 세우면서, 문재인 대통령이 이끄는 대한민국 정국을 "미친 자가 운전대를 잡은 자동차"로 비유해 물의를 일으킨 일이 있었다.
물론 이 말 자체는 본회퍼가 직접 한 말이 맞다. 이는 그가 테겔 수용소에 있을 때 동료 수감자에게 들은 질문에 답한 내용이다.
동료 수감자는 본회퍼에게 "기독교인인 당신이 어떻게 (정교분리 원칙을 무시하고) 국가의 미움을 받으면서까지 그렇게 정치적인 일에 관여하게 되었나?"라고 물었다.
이에 본회퍼는 "미친 자가 운전대를 잡고 운전하는 것을 볼 때, 목회자가 할 일은 그 자동차에 치어 죽는 이들의 장례를 주관하는 것보다 먼저 그 미친 자를 운전대로부터 끌어내리는 일이다"라고 답했다.
개인적으로는 전광훈 목사가 이 일화를 인용한 일이 한국의 일부 목회자들 사이에 퍼져 있는 본회퍼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보여준다고 믿고 있다.
전광훈 목사는 본회퍼의 사상과 행적의 가장 피상적이고 결과론적인 측면만 보고서, 자신의 대정부 비판 행위를 정당화했다. 하지만 본회퍼가 말한 '미친 자의 운전대'는 절대 그렇게 간단하게 인용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8.15 집회에서 본회퍼 발언을 인용하는 전광훈 목사. 한국교회 일각에 퍼져 있는 본회퍼 사상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입증한 사례로 알려져 있다. 뒤 현수막에도 본회퍼 이름이 보인다. ⓒ크투 DB |
이 말 한 마디에는 본회퍼가 이해한 하나님의 인간 창조 섭리, 인간 인식과 존재의 시간적-역사적 한계, 관계 유비(analogia relationis)의 원리, 인간의 선험적 사회성(고독과 포용의 변증법적 긴장과 얽힘), 루터교적 죄성 이해(자기 안으로 구부러진 마음), 하나님의 존재가 아닌 행위로서의 계시, 그리스도 중심적 교회 내부 인격 간 관계 모형과 그에 따른 비종교화(dereligionization)의 실천원리 전반이 모두 함축되어 있다.
따라서 이 말은 자신이 목회를 담당한 교회 신자들과 기독교계 내 동조자들을 이용해, 개인의 정치적 영향력과 기반을 확장하려 하는 사심으로 가득찬 인물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될 수 없다. 언중유골(言中有骨)이어야 할텐데, 막상 전광훈 목사의 본회퍼 인용에는 진정으로 존재해야 할 뼈(骨)가 없는 셈이다.
대한민국 국민이자 기독교인의 한 사람으로서, 문재인 대통령과 현 집권 세력의 정책 방향 및 정국 운영 방식이 결코 흡족하게만 여겨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수많은 허점과 실책들로 얼룩져 있음을 느낀다.
하지만 현재의 대한민국 집권자들과 기득권층이 본회퍼가 상대해야 했던 미친 자, 즉 히틀러 수준으로 취급될 정도라고 여겨지지는 않는다.
애초 그럴 깜냥 자체가 없었다고도 볼 수 있겠지만, 어쨌든 공산주의 적대국들에 맞서면서도 미국에마저 당당한 외교적 역량을 발휘했던 이승만 전 대통령이나, 국민적 반감과 국제적 고립을 감당하고서라도 유신체제와 반미자주정책을 추진했던 말년의 박정희 전 대통령에 비교해 본다면, 현재 한국의 집권 세력은 외부적으로는 주변 강대국들의 입장에 촉각을 곤두세우면서, 내부적으로는 국민들의 목소리를 조심스레 살피면서 상당히 '소심하게' 정국을 운영해 나가고 있는 실정이다.
현실적으로 전광훈 목사의 비유는 애초 성립될 여지조차 없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그의 실언은 꽤 시간이 지난 현재에도 기독교 우파 세력의 어리석음을 지적하는 이들에게서 간간이 언급되고 있다.
이것은 한국 기독교계 전반의 지적 평판 저하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국내 본회퍼 연구자들의 노력이 폄하되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국내에서도 다수의 신학 연구자들이 본회퍼의 사상에 대해 충분한 역량을 발휘하여 성실하게 연구를 이어왔고, 독일, 영국, 미국을 중심으로 해외에서 이루어지는 본회퍼 연구의 새로운 방향성에도 비교적 민감하게 반응하려는 노력들이 있었다.
이에 향후 몇 주간 이어지는 논평에서는 한국교회의 이러한 노력들을 부각시키는 한편, 본회퍼의 사상에 관련되어 있는 많은 오해와 편견들을 적절한 신학적-인간학적 통찰을 통해 불식시키는 내용들을 전하고자 한다.
개인적으로 본회퍼 신학의 이론적 성격이 가장 두드러지는 초기 및 전기 사상을 전문적으로 연구해 왔던 터라, 종교철학, 종교사회학, 그리고 신학사의 관점에서 본회퍼가 가르친 인격, 교회, 그리고 사회의 의미와 그가 제시하는 온전한 기독교적 실존방식에 관해 소개할 터이다.
▲올해 미국종교학회(AAR)의 본회퍼 연구분과 발제 및 토론의 진행과 사회를 맡았던 본회퍼 연구의 대가 클리포드 그린. ⓒ유튜브 |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