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탁소에 갓 들어온 새 옷걸이한테 헌 옷걸이가 한마디 했습니다.
-"너는 옷걸이라는 사실을 한시도 잊지 말길 바란다."
-"왜 옷걸이라는 것을 그렇게 강조하시는지요?"
-"잠깐씩 입혀지는 옷이 자기의 신분인 양 교만해지는 옷걸이들을 그동안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정채봉,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라』 중에서)
교회 사이즈가 커지면, 우리(옷걸이)들은 목소리도 달라지고 사람을 대하는 태도도 변합니다. 그러나 실상 교회의 주인은 사람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말로는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지만, 속 마음은 교만으로, 자신의 성공(?)에 대한 자부심으로 가득 차곤 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옷걸이가 되지 말고, 그리스도로 옷 입으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은 우리의 속마음,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자기 정체성(self-identity), 즉 신분의 변화가 있어야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는 의미입니다.
세상의 모든 교회에게 하시는 말씀을 요한계시록은 7가지 유형의 교회로 압축하여 설명했습니다. 주님의 칭찬과 격려, 그리고 책망이 담겼는데, 칭찬을 들은 교회들의 특징은 고난과 핍박, 유혹을 어떻게 대응했느냐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소위 말하는 성공적인 목회 여부에 따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규모나 예산이나 인기나 세상의 평가에 의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외부의 압력이나 핍박에도 불구하고, 성도들이 어떻게 이겨냈는지, 어떻게 견디었는지, 어떻게 순교의 결단까지 할 수 있었는지 그 중심을 보시고 주님께서 해주신 말씀입니다.
고난이나 핍박을 이겨낸 교회들이 어떻게 이길 수 있었는가에 대한 분석은 여러가지입니다.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들라고 하면 저는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또렷한 자기 인식이 분명한 사람이 고난을 이겨낼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하나님께 구원받고 사랑받는 사람이라는 자기 의식이 선명한 사람은 유혹이나 고난을 이겨낼 수 있지만, 이러한 의식이 희미하거나 오락가락 하는 사람은 타협할 수 밖에 없습니다.
코로나 이후 이 사회와 교회가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에 대한 호기심이 강렬합니다. 의학적으로,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여러가지 예측과 가능성들을 열어놓고 논의하고 있습니다만, 저는 개인적으로 성도님들 한 분 한 분이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으로 내가 달라졌다>는 자기 고백이 분명해진다면, 코로나보다 더 센 폭풍이 몰려온다 하더라도 성도님들이 이겨낼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요셉은 가족에게 버림받고 수 많은 고난을 겪으면서 자기 정체성이 더욱 분명해졌기 때문에 보디발의 부인이 유혹해도 뿌리쳤고, 억울한 감옥살이도 견딜 수 있지 않았을까요?
내가 하나님의 자녀이고, 하나님이 지금도 나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믿으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