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게으름이라는 것을 몸을 움직이지 않는 것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게으름이란 변화를 싫어하는 것이고. 새로움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고. 낯선 세계를 거부하는 것을 게으름입니다. 게으름이란 지금의 당연의 세계에만 머무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뭐든지 당연하게 여기면, 감사도 없고 축복도 없습니다. 예를 든다면 매일 밥을 먹는 것도 당연하고, 매주 예배드리는 것도 당연하고, 일상의 출근을 하는 것도 당연하고, 잘 집이 있는 것도 당연하게 여긴다면 감사가 없게 됩니다. 그러다가 혹시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 사라지면, 어떻게 되는가? 격렬하게 분노합니다. 남을 원망하기도 하고 하나님을 향해서도 원망을 합니다.
영적으로 무너지게 되면 하나님을 자기의 당연한 행복을 빼앗아가는 폭군 같은 분으로 인식을 하게 됩니다. 결국은 자기 삶이 억울하다는 것입니다. 분노로 가득 찬 인생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계속되는 호의를 권리인 줄로 착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어렵 기에 도움을 주려고 매달 1000불씩 주다가 어느 날 못주게 되면, "왜? 내 돈 안주냐?"고 따지는 것이 죄인 된 사람입니다. 호의가 갑자기 당연한 권리로 바뀌고, 권리로 여기고 생각하다보니까 항의하고 투쟁을 하게 된다는 겁니다. 당연에 세계에 머무는 사람은 하나님이 주시는 감사와 기쁨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당연하기에 새롭게 보려는 태도가 없기 때문 인 것입니다.
이런 사람의 대부분은 그냥 지루하고 심심한 인생을 살게 됩니다. 그렇다고 많은 것을 보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그래도 감탄이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보기는 보아도 보지 못하는 인생이 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구비된 모든 것은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없는 것을 내 힘으로 추구하겠다고 열심을 냅니다. 그러나 얼마못가 내 힘으로 안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자신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인정하게 됩니다. 그때부터 일상의 경이로움에 감사를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생의 내려올 때입니다. 이때부터 안 보이는 것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일상이 경외심과 함께 다가오기 때문 입니다. 나의 당연함을 내려놓으니 기쁨을 알게 된 것입니다.
이렇듯이 우리의 보편적 일상까지도 당연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그러다보면 용기 있는 남편과 슬기로운 아내가 이제는 하나님의 선물인 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내 힘이 아닌 겁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감사한 것입니다, 그래서 기쁨이 넘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나도 다른 사람에게 선물이 되는 인생을 살고 픈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성이 깊어진 결과인 것입니다. 그래서 달란트 비유에서 보듯 게으름은 악입니다. 그리고 게으름은 당연의 세계에만 머무는 것입니다. 그래서 깨고 나와야 합니다. 어떤 새도 알 속에서는 하늘을 나는 법을 배울 수 없습니다, 깨고 나와야 하늘을 나는 인생이 될 것입니다.
[김병규 칼럼] 깨고 나와야 하늘을 나는 인생이 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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