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에게 에이스 사역자는 디모데였습니다. 바울이 4번이나 그를 믿음의 아들이라고 부르는데서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골치 아픈 고린도 교회 수습을 위해서 디모데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수습이 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디도를 보냅니다. 디모데 대신 갔던 디도는 고린도 교회의 문제를 잘 수습했습니다. 그것은 바울이 고린도가 변화되었다는 소식에 무척 기뻐 할 뿐 아니라 이제는 고린도 교회를 향한 신뢰가 회복이 되었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디도는 거의 무명의 사역자였지만 해결사였고 변화를 일으키는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은 분명히 디모데를 편애했던 것이 사실 입니다. 그래 중요한 일을 디모데에게 맡겼는데 처리하지 못했습니다.
대신해 디도를 보냈는데 디도가 해결을 gkq니다. 디도는 뒤처리 전담 사역자요 해결사이었습니다. 사실 고린도교회 만큼 골치 아픈 곳이 그레데교회이었습니다. 그곳 사람들은 질이 안 좋아서 항상 거짓말쟁이이요, 악한 짐승이요, 배만 위하는 게으름뱅이란 소리를 듣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바울은 또 디도에게 그레데를 맡깁니다, 그런데 디도는 맡기면 다 풀어 버립니다. 우리도 디도 같은 일꾼이 되고 싶어야 합니다. 그런데 디도에게는 문제를 푸는데 특징이 있었습니다. 간절함이 있었습니다. 바울의 말을 빌리면,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마음을 지녔다는 것입니다. 또한 정성과 집중이 있었습니다. 영혼 없는 말이나 영혼 없는 사역이 아닌 겁니다.
그리고 자원함이 있었습니다. 자원이란 자기 멋대로 란 뜻이 아니라 "주의 뜻과 묶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가고자 하는 길을 포기한 마게도니야 환상에 주님이 보여주신 길을 갑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한다." 말을 합니다. 이때의 인정이 바로 "주의 뜻과 묶는다."는 뜻과 같습니다. 아브라함이 모리아 산에서 이삭을 바칠 때에, 아브라함은 117세요, 이삭은 17세쯤 되었습니다. 이삭이 아버지 불과 나무는 있는데 번제할 어린양은 어디 있냐? 묻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신다고 제단 쌓고, 이삭을 결박할 때 이삭이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결박합니다. 이것이 자원인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에도 디도처럼 주님과 동행하는 자요, 예수와 함께 주위 일에 함께 동행 하는 자들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소속이 분명해야 합니다. 디도를 자신의 동역 자를 5개 명사로 말합니다. "동료요, 동역자요, 형제요, 사자들이요, 영광이라고",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이 소유격입니다. 누구의 누구라고 표현되는 소속이 분명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나의 동료요, 너희를 위한 나의 동역자요 우리 형제들로 말하면 교회의 사자들이요 그리스도의 영광이니라."했습니다. 우리는 정체성을 애매하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양다리 걸치려는 시도를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디도 같은 일꾼이 되고 싶어야 하고, 디도 같은 일꾼이 그리 워야 합니다.
[김병규 칼럼]본 받고 싶은 일꾼이 되고 싶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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