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뭣이 중헌디? 뭣이 중허냐고?" 영화 '곡성'에서 어느 아역 배우가 남긴 명대사입니다. 외지인에게 험한 꼴을 당한 자신의 속도 모르고 이것 저것 캐묻고 있는 아버지가 하도 답답해서, 어린 딸이 욕설과 함께 옹골차게 던진 한 마디입니다. 이 대사는 후에 많은 광고와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차용되면서 한 세대를 특징짓는 '세태어'의 반열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정말 뭣이 중한 지를 모르는 시대라는 것입니다.
교회 앞 마당에 가을이 가득합니다. 나무에 매달린 잎들은 벌써 낡은 옷들을 꺼내 입었고, 어제 잠깐 내린 비 탓인지, 떨어진 잎새들이 파킹랏을 나뒹굴고 있습니다. 어제 오후, 교회 입구에 있는 책상에 앉아 주일 준비를 하다가 낙엽들을 보며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아무 것도 하지 못했는데 벌써 2020년이 다 지나고 있구나..." 그렇지 않습니까? 락다운이다 뭐다 하면서 좋은 시절을 다 보낸 것입니다. 그런 상실한 심정으로 그 시간들을 돌아보고 있는 것입니다. 문득, 내 인생도 이렇게 지나가겠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9월 19일 현재 미국의 총 확진자는 6,960,651명이고 사망자는 203,695명입니다. 어제 하루도 28,323명이 확진 되었고, 421명이 사망했습니다. City of Federal Way의 인구가 8만명이 조금 넘으니까, 지난 7개월 동안 훼드럴웨이같은 도시 2개 반이 사라진 것입니다. 속수무책인 것입니다. 몇 달이 넘도록 각 주정부의 명령에 따라 락다운을 실시했지만 20만 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은 것입니다. 그에 비해 한번도 락다운을 하지 않았던 한국은 사망자가 고작 383명에 지나지 않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우리가 무엇이 중한 지를 몰랐다는 것입니다. 팬데믹에 잘 대응하기 위해선 마스크 쓰는 일이 절대적으로 중요했었는데, 대부분의 미국인들이 마스크 쓰는 것을 터부시하다가 결국 이런 참담한 현실을 마주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억해야 할 것은, 뭔가를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왜 그 일을 하는지 또 어떻게 그 일을 해야 하는지를 기억하는 것도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1992년 3월 필라델피아로 유학을 와서 8년간 신학대학원 공부를 하는 동안 경제적으로 참 힘이 들었습니다. 은행 어카운트에 달랑 $50을 남겨두고 3개월을 버틴 적도 있습니다. 그렇게 힘들었던 어간에 돈에 관한 2번의 시험이 제게 있었습니다. 한번은 노트북 컴퓨터를 사고 $ 340 리베이트를 받았던 적이 있었는데 당시 Staples 사의 실수로 두개의 check를 받게 되었습니다. 정말 $1이 아까웠던 시절, $ 340은 제게 큰 시험이었습니다. 또 한 번은 저녁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파킹랏 근처에서 $5,000을 주은 적이 있습니다. 당시 학비때문에 밤 늦은 시간까지 건물 청소를 하고 있던 제게 오천 불은 정말 큰 돈이었습니다.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건가?"
생각해보면, 잠깐이라도 시험에 들었었다는 사실에 얼굴이 달아올라야 하는 것입니다. 목사가 되겠다고 헌신한 사람이 남의 돈에 마음이 흔들린 것입니다. 무엇이 중한 것인지를 잊었기 때문입니다. 불의한 돈으로 학위를 받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는 것을 잊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 삶에는 무엇이 중합니까? 보다 중한 것을 위해 삶을 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장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