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흔히 사탄을 빗대어 쓰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이 "귀신같이 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마귀는 우리말처럼 다 아는 존재가 아닙니다. 무소부재하지 않습니다. 전지전능하지 않습니다. 영원불멸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마귀는 자기의 졸개를 삼기 위해서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보통 사람들에게 마귀는 무섭고 사납고 두려운 존재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어떤 곳에 가면 머리가 아프고, 눌리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말은 거짓말이 아닐 수 있습니다. 이런 때에 하나님께 예배가 드려지고, 찬송이 울러 퍼지면, 그런 기운들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는 것을 종종 경험하게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악한 마귀를 온전히 이길 수 있는 무기가 있습니다. 마귀가 모르는 것으로 정복하면 되는 것입니다. 마귀는 사랑을 모릅니다. 그래서 성도들끼리 서로 사랑하며 돕는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희생하는 사랑을 보게 되면, 이상하게도 어리둥절하면서 납득을 하지 못한다는 반응을 보입니다. 그것은 마귀에게는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귀는 믿음을 모릅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행동하고, 믿음으로 고백하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듯이 우왕좌왕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믿음의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한다는 히브리기자의 말씀처럼. 잠시 세상을 쥐고 있는 마귀는 믿음을 감당 하지 못하고 그게 뭔지 몰라 놀라서 넘어지게 됩니다.
그러나 마귀는 인과응보만은 잘 압니다. 주고받는 원리만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욥의 고난과 진정성도 오직 인과론으로만 파악을 하려 합니다. 그리고 욥이 그런 고난에도 까닭 없이 하나님을 섬길 리 없다고 주장을 합니다. 이렇듯 마귀는 인과론을 넘어서는 그 어떤 것도 이해를 하지 못하고. 느끼지를 못합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는 바울의 말처럼, 마귀에게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능력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예배의 가치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오직 세상에만 속해 있기 때문입니다.
마귀를 이기는 길은 마귀가 모르는 것으로 정복하면 됩니다. 마귀가 아는 인과율로 싸우기 보다는 마귀가 모르는 사랑과 믿음과 예배로 싸우는 것입니다. 마귀는 사랑의 공동체를 이해하지 못하고, 남을 위해 희생하는 십자가를 이해하지 못하고. 믿음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욕심으로 행하면, 넘어뜨리지만, 믿음으로 행하면, 무력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귀가 모르는 것으로 채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런 무기의 강력함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때론 우리를 어려움 상황으로 몰아가십니다. 그러나 어려움은 기회입니다. 마귀를 멸하는 강력한 무기를 발견하는 엄청난 기회인 것입니다. 위기를 강력해지는 기회로 삼으시기를 기도합니다.
[김병규 칼럼]마귀가 모르는 것으로 위기를 이겨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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