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바이러스보다 더 무섭고 끔찍했던 재앙이 이집트에서 있었습니다. 하룻밤 사이에 모든 가정에 살던 첫째 아들이 죽고, 모든 동문들의 첫 새끼가 죽는 사건이 발생한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같은 지역에 살던 한 소수 노예민족만은 이러한 사건을 예상하고, 양을 죽여서 그 피를 현관 앞 문설주에 발라 놓았는데, 아침이 밝았지만 곡소리를 하는 집이 없을 정도로 무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낸 죽음의 천사가 그런 집은 그냥 지나쳐 갔던 것입니다. 죽음의 저주가 하나님의 은혜로 넘어갔다고 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날을 유월절(Pass Over)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대명절로 지키고 있습니다.
사람이 지금 편안하다고 하더라도 옛날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을 기억하며 살아야 겸손할 수 있습니다. 나는 그 옛날 벌써 죽었어야 할 사람인데, 하나님의 은혜로 이렇게 살아남아서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는 감사 의식이 있어야 행복합니다. 내가 강해서 살아남은 것이 아닙니다. 내가 남들보다 똑똑하거나 지혜로워서 생존할 수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불쌍하게 여겨 주셨기 때문입니다. 내 생명을 지켜 준 것은 바로 어린 양의 피였습니다. 그 양이 죽어야 할 이유가 없었지만, 내 대신 죽은 것이지요. 예수 그리스도를 어린 양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바로 이런 상징적 의미 때문입니다. 나를 이해하시고 나를 사랑하신 주님, 내 이름을 부르며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 주님을 우리는 항상 기억하며 사는 것입니다.
90세가 넘으신 치매가 걸린 권사님이 계셨습니다. 결국 자신의 이름까지 기억하지 못해서 이름을 묻는 간호사에게 이름을 얘기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권사님은 비록 내가 내 이름은 기억하지 못해도,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과 예수님께서 나를 구원하셨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놀라운 고백 아닙니까? 자녀의 얼굴을 보면서도 누군지 기억하지 못해도, 내 이름을 기억하지 못해도,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의식,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믿음만은 또렷하게 기억했던 것입니다.
코로나 때문에 사람들이 예민해지고 날까로워진 것이 사실입니다. 불안하고 신경질이 날 만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주님의 희생으로 살게 된 사람들 아닙니까? 또한 죽어도 부활하게 될 것을 믿는 사람 아닙니까? 주님께서 우리와 동행하신다는 사실을 알지 않나요? 따라서 우리는 아침마다 감사한 마음으로 시작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살아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