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차별 금지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름만 들으면 참 좋은 법처럼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용으로 들어가면 그렇지 않습니다. 이법이 남성과 여성에 대한 차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을 금지 한다는 골자로 만들어 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간혹 우리가 성경이 여성 차별적이라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 하라. 여자는 머리를 가리라는 말이 유독 여성에게만 차별적으로 이런 부당한 대우를 한다고 생각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성경은 여성의 차별을 깨는 쪽으로 말씀을 합니다. 여성의 동등성에 대해서 더욱 강조합니다. 구약의 회당 예배는 남성만 드렸습니다.
그러나 초대교회는 남녀 모두가 예배에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여성의 사역까지도 허용했습니다. 당시로서는 파격이었습니다. 여성과 어린아이는 숫자로도 세지 않던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자유를 맛본 교회 여성들이 그 시대의 문화를 너무 앞서 나가게 되었습니다. 머리를 가리는 것을 무시해 버린 것입니다. 여자가 머리를 가린다는 것은 당시 문화로서 겸손과 정결의 의미였습니다. 그래서 인지는 몰라도 지금도 중동지방의 여자들은 히잡, 차도르를 하고 다닙니다. 사실 이것은 죽고 사는 문제 아니니까? 하면서 문제가 생기면 그냥 뒤로 후퇴해 버립니다. 그러나 이런 문제는 문화에 맞추어주는 것이 성경의 접근입니다.
그러나 초대 교회는 달랐습니다. 여성을 세웠고, 함께 예배하는 것을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푸는 쪽으로 나갔고. 오해가 생기면 해명하는 쪽으로 나갔습니다. 이것이 지금 관점에서는 차별같이 보이는 것입니다. 교회의 대원칙은 주안에서 하나 됨입니다. 유대인과 헬라인이 하나요. 종이나 자유자가 하나요. 남자나 여자가 다 예수 안에서 하나입니다. 사소한 문제는 양보하고 맞춰주라는 것입니다. 문화는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해결되는 것입니다. 믿은 사람들은 사소함을 문제 삼지 말아야 합니다, 사소함을 가지고 배제나 거절로 나가지 말아야 합니다. 사소함으로 하나 됨을 깨는 것은 마귀에게 속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본질과 정신은 철저히 붙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주안에서 하나 됨입니다. 여성도 남성과 동등하게 쓰임 받는 것입니다. 혹시라도 문화적인 익숙치 않음 때문에 배척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한 사소한 문제를 관철시키려고 너무 저돌적으로 충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웬만한 것은 문제 삼지 않는 정신과 자세가 건강한 태도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혹자는 은혜를 받아야 까칠해 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영적으로 여분의 에너지를 채우는 시간이 성도들에게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넘치는 축복으로 채우라는 것입니다. 여유로 움에서 사소함을 품을 수 있는 넉넉함이 나오고 좋은 신앙의 인격자로 사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김병규 칼럼]까칠함보다 인격자로 살기를 원해야 합니다.
© 2020 Christianitydaily.com All rights reserved. Do not reproduce without permis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