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유명 정치인의 죽음이 또 한번 세상에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잊을 만하면 반복되고 있는 일이라 이제는 세상이 개벽하는 것처럼 놀랍지는 않지만, 그래도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컸던 사람이었기에 충격이 작지만은 않아 보입니다. 서로 다른 정치적 입장때문에 사람마다 그분의 죽음을 바라보는 시각이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모든 죽음은 본디 슬픈 것이기에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고인이 된 박원순 서울 시장은, 2011년 서울시장으로 당선되기 전까지, 오랜 기간 사회적 약자들의 편에 서서 그들을 도왔던 인권 변호사요 시민 운동가였습니다. 특히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여러 여성 인권 관련 사건들의 변호를 맡으면서 열악한 여성 인권을 지켜내는데 일조했으며, 미국의 '굿윌'과 비슷한 '아름다운가게'라는 사회적기업을 만들어 '기부'를 시민운동의 영역으로 확장시키면서 연간 40억원의 이익금으로 사회적 약자들을 돕는 일에 초석을 놓았습니다. 그런 의미 있는 인생의 족적을 남겼던 사람이었기에 그가 택한 '마지막 선택'이 더욱 아쉬울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아마도 많이 힘들었을 것입니다. 오랫동안 여성들의 인권을 위해 싸워왔던 그가 자신의 전직 여비서로부터 성추행과 관련하여 고소를 당한 일은,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애쓰고 수고했던 자신의 지난 30년을 부정하는 일과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죽음을 선택했을 것입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했을 만큼 괴로웠던 것입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어서라도 자신의 지난 시간들이 위선이 아니었음을 증명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살아야 했습니다. 끝까지 살아남아서 정말 잘못한 것이 있다면 진심으로 용서를 구했어야 했고, 사실이 아니었다면 진실을 밝혔어야 했습니다. 아무리 사람들이 손가락질을 하고 욕을 해도 끝까지 감내하며 후세들에게 반면교사가 되주어야 했습니다. 선택한 것에 책임을 지는 것이 어른이기 때문입니다. 죽음으로 책임을 질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금요일 아침, 정광자 권사님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마음이 아팠습니다. 아직도 애띤 새색시였을 때 전쟁으로 남편을 잃으시고 선물처럼 태어난 아들을 키우시며 90세가 넘으시도록 70여년을 수절하셨던 권사님... 마지막 가시는 길에 아무 것도 해드린 것이 없다고 생각하니 너무 죄송했습니다. 문득, 제가 심방 갈 때마다 권사님이 늘 반복하곤 하시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목사님, 제가 골반이 아파서 교회는 못 나가지만 날마다 우리 교회를 위해서 기도해요. 목사님하고 교인들을 위해서 날마다 기도해요..." 그리고 마지막에는 늘 이렇게 부탁하셨습니다. "우리 아들이 예수님 믿을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권사님은 박원순 시장에 비하면 무명한 분이셨습니다. 그분처럼 많은 사람들의 인권을 위해서 일하신 적도 없고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큰 일을 하신 적도 없습니다. 하지만 권사님은 믿음의 어른이셨습니다. 당신의 아들을 위해 끝까지 책임을 다하셨고, 당신의 교회를 위해 끝까지 기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실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런 권사님을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신 줄로 믿습니다. 권사님, 머지 않아 다시 뵙겠습니다. 여러분들을 사랑합니다. 장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