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나에게 나를 따르라고 말한다면 쉽게 따르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누군가를 따른다는 것은 나를 버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나를 따르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어려운 일에 제자들이 일단은 자신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그러나 주를 따른다는 것은 내 뜻의 관철이 아니라 주의 뜻을 이루는 것이 됩니다, 그러나 대개 내 뜻은 그냥 잘 되는 만사형통을 말합니다. 많은 돈을 얻고, 권세를 얻고, 높은 지위에 올라가 건강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목적은 없습니다. 그냥 평탄한 삶 만사태평을 원하는 것이기 때문 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아닌 배부른 돼지가 되는 길입니다.
과연 누가 이것으로 만족하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죽어라 내가 원하는 것에 매달려 삶을 삽니다. 그러보니 때로는 그것마저도 얻지 못할까봐 두려움과 염려로 위축된 삶을 살게 됩니다. 이렇듯이 실상은 내가 원하는 것이 나를 얼마나 불행하게 만드는지 모릅니다. 내가 원하는 것에 집착할 때 그 집착 안에 내가 나를 내 안에 묶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중세 신비주의자 마이스터는 다 없어져도 사라지지 않는 기쁨이 진짜라는 말을 했습니다. 역설적인 말 같지만. 있어야 기쁜 것은 가짜라는 말입니다. 반면에 없어도 사라지지 않는 것이 진짜라는 말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취하고자 하는 마음은 귀하지만 어리석은 일입니다.
이란 상인이 인도 출장을 가면서 가족과 종들과 집에 기르던 앵무새에게 원하는 선물을 묻습니다. 그러자 앵무새가 말하길. 난 선물은 필요 없고. 숲속에 내 가족에게 나는 좋은 집에서 잘 살고 있지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우리 가족이 누리는 자유는 누리지 못하니 기도 해달라는 부탁이었습니다. 일을 마친 이란 상인이 앵무새가 말한 숲에 가서 집의 앵무새에게 들은 이야기를 다 전달하자 한 앵무새가 "꽥!"하고 떨어져 죽었습니다. 놀랍고 미안함 마음에 집에 돌아와 앵무새에게 이 말을 전하자 집에 있는 앵무새마저도 "꽥!"하고 떨어져 죽었습니다. 근데 묻어주려고 땅을 파는 순간, 푸드덕하고 앵무새가 나무로 날아 올라갔습니다.
그때 앵무새가 말하기를 내 가족이 내게 자유 얻는 법을 가르쳐 준 겁니다. 이제 내가 원하는 것을 버리니, 이제 내가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원하는 것을 붙들려고 집착합니다. 애착을 버리지 못합니다. 그래서 행복했는가? 오히려 두렵고 근심에 빠지고 묶이게 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새장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이 나를 가치 있게 만들고 자유롭게 만듭니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것으로 살지 말고. 주가 주신 것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자유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역설적이지만 가장 좁은 길을 가는 사명 자가 가장 자유로운 사람인 것입니다. 내 뜻의 삶이 아니라 주의 뜻을 위해서 살기 때문입니다.
[김병규 칼럼] 내 원하는 삶이 아닌 주님 원하는 삶을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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