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작용, 뇌신경 활성을 통해 기능해
하나님 부여하신 영혼과 자유의지 있어
그 분의 뜻대로 살도록 작정하게 하셨다

우리의 각종 선택은 뇌조직의 결정에 따를 뿐인 것인가? ⓒ픽사베이
우리의 각종 선택은 뇌조직의 결정에 따를 뿐인 것인가? ⓒ픽사베이 

오늘 점심은 짜장면으로 먹을까? 아니면 짬뽕을 먹을까? 이런 결정은 내가 스스로 자유의지를 가지고 하는 것일까? 아니면 나의 뇌조직이 결정한 것을 실행에 옮기는 것뿐인가?

2019년 미국 캘리포니아 채프먼 대학 뇌연구소에서 자유의지에 관한 국제학술대회가 열렸다. 학회에 참석한 학자들은 자유의지를 규명하기 위해 학제간 연구 프로그램을 실시하기로 합의하였다. 그래서 17개 대학에서 온 8명의 뇌과학자들과 9명의 철학자들이 연구팀을 구성하였다.

이들은 뇌과학과 뇌철학 간의 융합연구를 통해 자유의지에 대한 과학적 검증을 하기로 했다. 자유의지는 외부 요소에 영향을 받지 않고 자신의 행동과 의사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자유의지에 대한 뇌과학적 해석은 1983년 벤자민 리벳의 연구에 의해 촉발되었다. 5명의 피실험자들을 대상으로 머리와 오른쪽 손목에 전극을 붙이고, 컴퓨터 화면을 주시하도록 했다.

모니터에는 초록색 점이 2.56초마다 한 바뀌씩 돌고 있었다. 피실험자는 자신이 정한 타이밍에 손가락을 움직이도록 하였다. 피실험자가 실험을 수행하는 동안, 리벳은 전극을 통해 전해지는 신호를 측정하였다. 손가락이 움직인 실제 시간과 머리에 붙인 전극을 통해 전해지는 전위의 변화를 실시간으로 측정하였다.

연구 결과에 의하면, 실질적인 손가락의 움직임이 일어나기 전에 뇌에서 전기적 신호가 감지되었다. 이를 준비전위라 하였다.

즉 손가락 행동보다 0.55-1초 전에 뇌조직에서 준비전위가 상승하기 시작하였다. 인간이 손가락을 움직이기 전에 뇌가 이미 그 행동을 준비하고 결정하도록 했다는 것으로 해석하였고, 자유의지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이후 2007년에 막스플랑크 연구소 존 데일란 하인즈 박사팀이 또 다른 실험을 하였다. 이 연구에서 피실험자는 무작위로 나타나는 모니터 앞에 앉아 양쪽에 있는 버튼 중 어느 것을 누를지 스스로 결정하고, 한쪽 버튼을 누르게 했다. 이때 버튼을 누르기로 결정한 순간 모니터에 뜬 알파벳을 기억하게 하였다.

실험을 실행하는 동안 피실험자의 뇌활성을 기능성자기공명장치로 측정하였다. 이 실험에서, 피실험자가 버튼을 누르기 최대 10초 전에 의사결정을 관장하는 뇌부위가 활성화됨을 관찰하였다. 그리고 버튼을 누르기 5초 전에 운동피질 영역이 활성화됨을 확인하였다.

이 결과를 바탕으로, 사람은 인식하기 10초 전에 뇌조직은 무의식적으로 이미 결정을 내리고, 운동을 관장하는 뇌부위에 신호를 보낸다고 해석하였다. 따라서 인간은 뇌가 결정하는 대로 움직일 뿐이라고 주장하였다.

이와 함께 2011년에는 캘리포니아 대학의 이자크 프라이드 박사가 또 다른 연구 결과를 발표하였다. 연구팀은 미세전극을 환자의 뇌에 삽입하여 뇌의 특정 부위의 활성을 측정하였다.

양 손에 버튼을 쥐어 주고, 스스로 어느 한쪽의 버튼을 누르게 하였다. 이때 환자가 버튼에 힘을 가하기 1초 전에 관찰자는 이 사실을 알아차렸고, 어느 쪽 버튼을 누를 것인지 60%의 확률로 예측하였다.

이 결과를 놓고, 우리의 의사 결정에는 의식이 참여하지 않고, 나중에 통보받아 인지하는 것으로 해석하였다.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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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의식적으로 하는 선택이 실제로는 무의식 단계에서 결정한 것을 따라가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뇌조직에 의해 먼저 결정된 것을 우리가 선택하는 것이므로, 자유의지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실험에 더하여 DNA 이중나선구조를 밝혀 노벨상을 받은 프란시스 크릭도 아주 극단적인 물질주의적 견해를 피력하였다.

우리가 느끼는 즐거움, 슬픔, 기억과 야망, 자신에 대한 정체성, 자유의지의 느낌은 단지 신경세포들과 관련분자들의 거대한 조합들의 작용에 따른 결과라고 하였다. 우리는 뇌조직의 물리적, 화학적 변화에 따라 움직이는 기계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내가 짬뽕을 선택하고 맛있게 먹을 때, 뇌의 특정 부분들이 반응을 할텐데, 이런 반응이 나로 하여금 짬뽕을 선택하게 만드는 것인가?

아니면 내가 짬뽕을 선택하고 먹을 때 뇌가 그렇게 반응하는 것인가? 나의 뇌에서 나타나는 동일한 뇌부위에 전기자극을 가하면 누구나 짬뽕을 먹고 싶어지는가?

특정 뇌부위의 전기적 활성이 특정 생각과 동일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행동을 실행하기 전에 발생하는 특정 뇌부위의 활성을 보고 우리는 뇌의 활동에 따라 움직이는 꼭두각시라고 주장하는 것은 너무나 단순하게 해석하는 것이다.

우리가 결정을 하고 행동으로 옮기기 전에 뇌조직에서 관찰되는 무의식적 활성은 의식이 인지하여 행동을 진행하게끔 준비시켜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즉 피실험자가 실험방법에 대해 지시를 받을 때, 어떻게 지시대로 임무를 완수할 것인지, 뇌에서 먼저 인지되고 정보처리가 되어야 한다. 그런 다음 실험에 임할 때, 어느 손으로 버튼을 누를지 결정하고 실행에 옮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실험방법과 순서를 이해하는 작업에 특정 뇌조직이 이미 동원되었다. 따라서 지시된 실험을 실질적으로 수행하는 순간에 이들 뇌조직들은 활성화된다.

이어서 손가락 운동을 조절하는 운동중추 부위가 활성화되어 근육의 수축과 이완이 정교하게 일어나도록 만든다.

그러므로 버튼을 누르는 운동행위가 실행되기 전에 여러 부위의 뇌조직에서 활성이 나타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이를 두고 뇌조직이 시키는 대로 우리가 실행할 뿐이라고 설명하는 것은 복합적인 뇌기능을 일차원적으로 너무 쉽게 보는 것이다.

뇌조직은 매우 복잡하다. 인간의 뇌는 1,000억개의 신경세포들이 1,000조개의 시냅스를 통해 정보를 주고 받는 거대한 신경망으로 되어 있다. 뇌의 여러 부위들이 서로 긴밀하게 정보를 주고 받으며, 조화로운 신체기능을 발휘하도록 한다.

따라서 신경정보의 복잡한 처리과정을 거쳐 우리가 인지하게 되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뇌신경망의 생화학적 활성에 따라 움직이는 꼭두각시에 불과하다면, 우리에게 자유의지는 없다고 볼 수 있다.

이와 동시에 우리의 모든 행위에는 아무런 도덕적 의무가 없다. 어떤 사람이 살인을 저질렀어도 그 사람의 뇌가 미리 결정하여 명령한 것을 몸이 실행한 것뿐이다. 그러므로 그에게 책임이 없다. 그의 뇌가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인 것이다.

우리가 어떤 선택이든지 스스로 하지 못하는 단백질 덩어리에 불과하다면, 삶의 목적을 과연 찾을 수 있을까? 뇌조직의 물리 화학적 작용으로 발생되는 신호에 따라 또 다른 단백질 덩어리를 죽여 활성을 멈추게 한 것뿐인데, 이것이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일인가?

기능성 자기공명장치로 측정하면, 특정 임무를 수행할 때마다 다양한 뇌 부위에서 활성의 크기와 모양의 변화를 관찰할 수 있다. 뇌활성에는 크기, 모양, 위치 등 기하학적 특징들이 나타난다.

하지만 내 생각 자체에는 이런 특징들을 가지고 있지 않다. 나의 슬픔이나 기쁨이 기하학적으로 표현될 수 없다. 그러므로 뇌조직의 활성화로 발생하는 기하학적 패턴과 내 생각은 동일한 것이 아니다.

신무신론자 샘 해리스의 책 <자유 의지는 없다>.
신무신론자 샘 해리스의 책 <자유 의지는 없다>.

신경과학자는 내가 어떤 일을 수행할 때 발생하는 뇌조직의 활성을 의료장비를 통해 관찰할 수는 있지만, 그 일을 수행할 때 내가 느끼는 것과 똑같은 느낌을 갖지 못한다. 그때의 내 느낌을 알고 싶으면 내게 물어 보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동일한 뇌조직에 정확히 같은 활성을 일으키더라도, 내가 가지는 느낌은 매번 동일하다고 할 수 없다. 나의 느낌과 생각은 입력되는 자극의 세기와 시간에 따라 기계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자유의지가 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스스로 결정하는 주체가 되지만, 살아 있는 동안에는 육신에 묶여 있다. 그래서 뇌조직에 심각한 손상이 발생할 때, 내 영혼의 자유의지의 발현에도 영향을 준다.

다시 말해서 내 영혼이 나의 몸에 영향을 주기도 하지만, 내 영혼 역시 내 몸으로부터 영향을 받는 것이다. 내 마음의 작용은 뇌신경 활성을 통해서 기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서 내 마음의 자유의지와 뇌조직의 생화학적 및 물리적 활성이 같은 것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영혼과 자유의지가 있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데 책임을 져야 하는 존재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복잡한 신경망을 가진 한낱 단백질 덩어리 기계로 만들지 않으셨다.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도록 하시고 그 분의 뜻대로 살도록 작정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주셨다.

우리의 영안이 열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음은 엄청난 복이다.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spirit)과 혼(soul)과 몸(body)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살전 5:23)."

김경태 교수.
김경태 교수.

김경태 교수
한국창조과학회 이사, 포항공과대학교 생명과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