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탑과 바이러스
"바벨탑은 무너졌다!"
바벨탑은 하나님께서 무너뜨리셨다. 인간이 하나님을 대적하려고 세웠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무너뜨리시니 말도 안 되게 하루아침에 무너졌다.
'코로나19'. 지금 전 세계적으로 유행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결국 세계적으로 감염병이 대유행하는 상태를 일컫는 펜데믹(Pandemic)을 선언했다.
우리나라 국민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확진자가 9,037명(3월 23일)이다. 사망자도 120명이나 된다. 격리 해제자도 3,507명으로 많다. 우리나라보다 많은 확진자가 나온 나라도 많다.
중국(81,171명), 이탈리아(63,927명), 미국(43,214명), 스페인(33,089명), 이란(23,037명), 프랑스(19,857명) 등이다. 세계의 코로나19 확진자 총 인원 수는 366,117명이다. 사망자는 16,126명에 달한다.
'코로나19' 은 변종 바이러스로 인한 전염병이다. 전 세계가 이에 대한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아직 백신도 개발하지 못하고 있다.
바벨탑은 하나님께서 무너뜨렸지만, 인간은 '코로나19' 로 인해 도리어 무너지고 있다. 바이러스가 초토화되어야 하는데, 무너지기는커녕 인간의 삶의 균형을 무너뜨리고 있다.
사람들의 정상적인 삶이 무너졌다. 나아가 경제도 무너졌다. 항공, 여행업은 이미 무너졌다. 전 세계적으로 주식이 추락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환율은 급등하고 있다. 결국 삶이 피폐해지고 있다.
코로나19는 일상까지도 확 바꿔놓았다. 많은 직장인의 재택근무를 한다. 국가는 사회적 거리를 강조하고 있다. 학교는 개학이 계속 미루어지고 있다. 벚꽃이 활짝 피었지만 꽃구경을 갈 수도 없다. 개인의 위생을 위해 30초 이상 손 씻기는 필수가 되었다.
길거리에 차와 사람이 확 줄었다. 식당이나 카페 등도 손님이 거의 없다. 교회 예배가 온라인으로 진행되고 있다. 세계는 한국인 입국을 금지하고 있다. 동시에 외교부도 특별여행주의보를 발령해, 한국인의 한 달간 해외여행을 못하게 하고 있다.
활동 영역이 밖이 아니라 집안이 되었다. 외출 시에는 반드시 마스크를 써야 한다. 필수품인 마스크도 요일별로 두 장만 구입할 수 있다. 심각한 것은 코로나19 사태가 언제쯤 끝날지 모른다는 것이다.
국가의 '코로나19'에 대한 대책
정세균 국무총리가 3월 21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관련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종교·체육·유흥시설 보름간 운영중단 강력권고'.
정세균 총리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화하자고 했다. 지금보다 훨씬 더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국가에서 보기에 앞으로 보름 동안이 코로나19와의 전쟁에서 승기를 잡는 결정적 시기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정세균 총리의 담화는 권고에 그치지 않았다. 만약 이들 시설을 불가피하게 운영할 경우에는 시설 업종별 준수사항을 철저히 지키라고 했다. 만약 준수사항을 지키지 않을 경우, 직접 행정명령을 발동해 집회와 집합을 금지하겠다고 했다.
사울시는 정세균 총리의 담화보다 한 발 더 나갔다. 서울시는 종교시설을 중심으로 하는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주말 교회의 현장 예배를 지도하고 감독하겠다고 했다. 돌발 상황에 대비해 경찰관과 동행하겠다고 한다.
교회가 국가에서 하는 일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 그러나 국가는 교회에 대해 불평등한 인상을 주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한다.
'오프라인 예배'에서 '온라인 예배'
코로나19는 교회예배도 직격탄을 줬다. 신천지가 코로나19 확산 주범이 된 결과, 교회도 신천지와 같은 취급을 당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세상은 교회의 모임 행태를 주시하고 있다. 좋지 않은 의미로, '주시 대상'이 되면 안 된다. 교회는 국가의 시책에 따라 주일예배를 온라인으로 드리고 있다. 이는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예배 형태다.
교회만 그런 것은 아니다. 한국 천주교는 235년 만에 처음으로 천주교 전 교구에서 미사를 전면 중단했다. 불교도 별반 다르지 않다.
교회는 예배가 중요하다. 온라인도 중요하지만, 지금까지 해 왔던 오프라인 예배가 없으니 뭔가 꺼림칙하다. 그 이유는 신앙생활이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 생활이었기 때문이다.
교회의 주일예배가 오프라인 예배에서 온라인 예배로 전환되었다. 주일예배뿐 아니라 수요예배, 새벽예배, 금요기도회 등도 동일하다. 즉 예배에 대한 신학적 정의를 새롭게 내리도록 만들었다.
코로나19 사태는 교회 기능을 '설교'로 축소시켰다
예배 행위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던 것이 설교다. 코로나19로 설교는 큰 비중이 아니라 전부가 되었다.
목회자의 사역 방향에 있어 완전히 새로운 재정의를 요구받고 있다. 목회는 설교, 교육, 양육, 심방, 행정 등 수많은 것을 포함한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해 목회자들은 장례식도 마음껏 집례할 수 없다. 단순하게 설교 하나로 축소되었다.
온라인 예배를 드려야 하는 지금의 목회자는 설교자로서만 기능한다. 목회자는 강단에서 설교 동영상을 찍어 유튜브 등으로 촬영해 각자 집에서 예배를 드리게 하고 있다.
목회가 예배 중심에서 설교 중심으로 옮겨갔다. 앞으로 한국교회에는 큰 변화가 예고되어 있다. 전과 다른 방식의 목회 방향을 설정해야 할 것이다. 분명한 것은 목회자는 설교자로 살아야 한다. 이젠 설교에 올인해야 한다.
많아진 시간, 말씀 묵상하는 시간으로 보내야 한다
설교자들에게 시간이 많아졌다. 코로나19로 인해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문제는 '이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이다.
타의로 6주간이 주어졌다. 이 6주간 설교자들은 두 가지를 하면서 보내야 한다. 하나는 말씀 묵상이다. 또 다른 하나는 독서다.
그 이유는 설교자는 묵상가이자 독서가이기 때문이다. 목회자에게는 말씀을 묵상하고 독서를 함으로 말씀 묵상과 독서의 참 맛을 볼 수 있는 최적의 기회가 주어졌다.
먼저 말씀 묵상이다. 설교자는 설교를 위한 묵상을 해야 한다. 목회자가 전과 같이 설교를 많이 하면, 오랜 시간 묵상하는 것이 부담스럽다. 하지만 지금은 오랜 시간 깊이 묵상할 수 있는 시간이 충분하다.
보통 묵상을 성경 읽기라고 한다. 성경 읽기로만 그치면 아쉬움이 크다. 깊이 있는 자기만의 주석 만들기까지 가야 한다. 말씀 묵상에 그치지 않고 말씀 연구로까지 들어가야 한다. 그 이유는 성경 읽기가 주가 되는 말씀 묵상은 설교로 이어지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설교자들이 제게 묻는다. "왜 말씀묵상에서 '시간'을 중시하는가?"
시간 사용이 묵상의 질과 깊이를 결정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설교자는 설교를 해야 한다. 그러려면 말씀 묵상을 오랜 시간 해야 한다.
말씀 묵상을 오랜 시간 하면 설교자가 말씀을 통한 변화가 일어난다. 필자의 경험으로는 많은 시간을 투자할 때 변화가 이루어졌다. 이런 이유로 저는 말씀 한 본문을 5시간 이상 묵상하길 원한다.
하나의 말씀 본문을 5시간 이상 묵상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힌다. 말씀의 은혜가 커서, 개인적으로 말씀의 역사를 감당하지 못한다. 그 결과 설교할 때 자기 의지대로 전하기가 쉽지 않다.
말씀 묵상 시간이 길면, 하나님의 은혜가 엄청나게 된다. 그럼 변화가 쉽지 않은 목회자에게 저절로 변화가 시작된다. 나아가 이런 식의 묵상을 하면 성경 읽기는 저절로 된다.
5시간 말씀을 묵상하면 성경 100번을 읽고도 남게 된다. 목회자는 이 많은 시간을 깊이 있는 말씀 묵상으로 보내야 한다.
많아진 시간, 독서하는 시간으로 보내야 한다
또 하나는 독서를 해야 한다. 아트설교연구원 회원들은 코로나19 사태를 기점으로 독서에 매진하고 있다. 필자는 하루에 한 권씩 독서하라고 이야기한다. 이번 기회가 아니면, 하루에 한 권 독서할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많은 회원들은 아침에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한 뒤, 나머지 시간에 독서에 매진하고 있다. 주일 설교 한 번만 준비하기에, 하루에 책 한 권을 읽을 시간이 충분해졌기 때문이다.
설교자는 독서광이어야 한다. 이번 사태는 독서광으로 살아갈 습관을 들이는 데 최적의 기회다. 설교자가 독서광이어야 하는 이유가 있다. 독서 없이 설교 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코로나19를 통해 한국교회가 위기를 맞고 있다. 그 말은 동시에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 때를 기점으로 위기로 전락하느냐 기회로 만드느냐는 설교자가 어떤 습관을 들이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설교자들은 이번 사태를 독서할 기회로 삼아야 한다. 독서의 습관이 생기도록 만들어야 한다. 습관은 21일이면 만들 수 있다고 한다. 그러니 6주간이면 독서의 습관으로 만드는데 충분하다.
영국의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는 습관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 "시간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한 사람의 얼굴을 바꿔놓듯이, 습관은 인생의 얼굴을 점차적으로 바꿔놓는다."
설교자는 독서하는 습관으로 살아야 한다. 독서하는 습관을 가지면 설교자의 인생이 바뀌는 기회가 온다. 한국교회의 미래를 바꿀 수 있는 기회도 올 것이다.
하루에 한 권씩 독서하라
이번 사태를 맞아, 하루에 한 권씩 독서하길 소망한다. 하루 한 권 독서를 한다고 해서 곧바로 많은 것을 얻지 못할 수도 있다. 사람들은 책에서 많은 것을 얻기를 원하는 듯하다. 꼭 많은 것을 얻으려 할 필요는 없다. 많은 것을 주는 책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책에서 한 가지만 얻고자 하면, 하루에 한 권 책 읽기도 충분히 할 수 있다. 우리가 책에서 한 가지만 얻어도 되는 이유가 있다. 모든 책이 그렇지는 않지만, 많은 책들이 책의 핵심 내용은 7-10%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굳이 책을 문자적으로 읽을 필요도 없다. 독서할 때 저자의 생각과 의도를 파악하는 읽기만으로도 충분하다. 책의 핵심 내용은 7-10% 정도에 불과함을 인지한다면, 하루 한 권 독서에 도전하는 것도 큰 의미가 있다.
하루 한 권 독서를 하면 몇 가지 유익이 있다. 그 중 하나가 책이 주는 유익이 뭔지를 스스로 터득하게 되는 것이다.
나아가 독서는 좋은 설교자를 만들어준다. 스스로 자존감을 갖고 강단에 설 수 있다. 이번 사태는 딱 하나, 독서하는 습관을 가질 수 있다면 코로나19는 위기가 아니라 기회가 된다. 설교자뿐 아니라 한국교회에 기회가 된다.
보통 독서는 자기 경영이라고 한다. 설교자에게 독서는 자기 경영은 물론, 설교에서 해답을 찾게 해준다. 누구나 24시간으로 된 하루를 살아간다. 그 하루를 뜻깊게 사는 방법이 하루 한 권 독서라 할 수 있다.
지금 각 교회는 6주 전후로 온라인 예배를 드리고 있다. 날짜로는 40여일이 된다. 40일간의 하루 한 권 독서는 설교자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찾게 하고도 충분할 것이다.
설교자는 말씀을 묵상해야 한다. 설교자는 독서가여야 한다. 설교자에게 있어 최고의 삶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다. 최선의 삶은 말씀을 묵상하는 삶과 독서하는 삶이다.
제가 알고 있는 독서가들은 하루에 한 권 읽기 독서를 꽤 한다. 하루에 한 권 읽기 독서를 인생의 기쁨으로 살고 있다. 하루 한 권 읽기 독서가 자기 인생을 책임졌음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김도인 목사/아트설교연구원 대표(https://cafe.naver.com/judam11)
저서로는 《설교는 인문학이다/두란노》, 《설교는 글쓰기다(개정 증보)/CLC》, 《설교자와 묵상/CLC》, 《설교를 통해 배운다/CLC》, 《이기는 독서/절판》《아침에 열기 저녁에 닫기/좋은땅》, 《아침의 숙제가 저녁에는 축제로/좋은땅》, 《출근길, 그 말씀(공저)/CLC》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