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불복이라는 말은 '복이 오거나 안 오거나'라는 뜻으로 사람의 운수를 일컫는 말로 벌칙자를 선발하거나 식사 상품 등에서 제외시킬 때 사용되는 말이랍니다. 그런데 한국 예능 프로그램에서 복불복이라 하며 걸린 사람에게 고약한 벌칙을 받게 하면서 "나만 아니면 돼"를 외치며 그 고약한 벌칙을 받는 사람을 놀리고 자신은 그 벌칙을 받지 않은 것을 즐기며 기뻐하는 모습을 방송에서 가끔 보게 되는데 그 방송들이 정말 많은 사람들이 보는 방송이라고 합니다. 복불복으로 걸린 사람은 자신이 잘 못해서 걸린 것도 아니고 그 중에 누군가는 걸리는 상황에서 단지 걸렸을 뿐인데 벌을 받아야 하고 그 벌칙을 받는 사람들을 향해 놀리고 자기는 즐거워하는 모습은 방송이라고 웃고 넘어가기엔 우리 문화와 사회와 우리의 자녀들의 사고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 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쩌면 정말 '나만 아니면 돼'라는 이런 의식과 태도와 자세가 아이들에게도 어른들에게도 우리 사회에도 자리를 잡아 가는 것 같아 무섭고 걱정이 됩니다. 아마 인간 모두에게 '나만 아니면 돼'까지는 아니어도 '나는 아니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을 것입니다. 교통 사고도 암과 같은 질병과 같은 고통과 아픔의 문제들에 대해 '나는 아니면 좋겠다' 생각이 누구에게나 있지 없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그런 생각이 있다고 그 생각이 맞는 것은 분명히 아닙니다. 더군다나 '나는 아니면 좋겠다'는 수동적인 이기적인 생각을 "나만 아니면 돼"라는 적극적인 악한 말을 하면서 그 악함을 마치 정당화하고 괜찮은 것처럼 만들어가는 방송은 사람들을 더 악하게 만들고 자신의 악함에 무덤덤하게 만드는 악한 일이다 싶습니다. 왕따를 당하고 폭력을 당하는 아이를 보고 옆에서 동영상을 찍고 그것을 SNS에 올리는 아이들의 생각 속에는 아무래도 '나만 아니면 돼'라는 악한 생각이 악하다고 느껴지지 않기에 일어나는 현상이 아닐까 싶습니다.
부모들은 자녀가 아플 때에 "내가 차라리 아팠으면 좋겠다" 합니다. '내가 아니라 다행이다'라는 생각조차 부끄러운 것은 이런 사랑 앞에 설 때입니다. 이 세상이 삭막해지고 사랑이 식어가고 잔인해 지는 이유가 이런 '나만 아니면 돼'라는 생각이 괜찮은 것이라고 부추기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나만 아니면 돼'와 정반대가 '내가 너 대신 죽으마'하시고 찾아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입니다. 이 사랑을 받은 예수 믿는 사람들은 '나만 아니면 돼'라는 이기적인 내면의 소리를 십자가 앞에서 내려 놓고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로마서 12:15),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하지 않더냐" (고린도후서 11:29)는 말씀과 같이 상대의 아픔과 기쁨에 공감하며 더불어 함께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