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는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당나라 승려 도선이란 사람이 쓴 '교계신학비구행호율의'란 책에 나오는 말입니다. 존경하는 스승을 대하는 제자의 바른 마음을 설명한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을 자신의 스승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스승의 그림자를 밟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스승과 함께 길을 갈 때도 그를 주목하기 위해 웃거나 떠들지 않고, 또 스승의 그림자를 밟지 않기 위해 얼마 간의 거리를 두고 따라간다는 것입니다. 번거로운 일이지만, 정말 그 사람을 스승으로 생각한다면, 기쁜 마음으로 그렇게 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아직 신학생이었을 때, 던즈와일러라는 교수님의 수업을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당시 선배 전도사님들이 이구동성으로 들어보라고 권해서 수강신청을 했는데, 사실 첫 수업을 듣고 나서는 적지 않게 실망을 했습니다. 수업이 너무 지루했기 때문입니다. 수업이란 것이, 그냥 연로하신 교수님은 자리에 앉으셔서 준비한 강의안을 읽어 내려가시고, 학생들은 그저 교수님이 나눠주신 강의안을 눈으로 함께 읽어 내려가는 것이 전부였기 때문입니다. 흔히 명강의의 조건이라고 여겨지는 교수와 학생 간의 역동적인 상호 작용이나 다양한 학습 자료의 활용은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랬던 제가, 그 교수님을 진심으로 존경하는 제자가 되기까지는 몇 주가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교수님께서 역동적인 교수법으로 전환하셨기 때문이 아닙니다. 여러가지 시청각 자료를 활용하시며 학생들의 지적 욕구를 채워 주셨기 때문도 아닙니다. 2-3주를 지나면서 예수님을 향한 교수님의 진심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교수님은 여전히 자리에 앉아 강의안을 읽어 내려가셨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그분의 최선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기를 원하시는 그분의 진심이었습니다. 간암 말기 환자였던 교수님은 극심한 통증이 찾아올 때마다 창 밖을 바라보셨습니다. 창 밖을 응시하시며, 자신에게 맡겨진 제자 양성의 사명을 끝까지 감당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런 교수님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분은 진짜다!" 그렇게 저는, 그 분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제자가 되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교수의 신분으로 학생들을 만난다고 해서 다 그들의 스승이 되는 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인생을 살면서 만났던 수 많은 선생님들 가운데 과연 '스승'이라고 기억될 만한 사람이 내게 몇 명이나 될까...를 생각하면 쉽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스승은 단순히 관계상의 지위일 수 없습니다. 단지 지식을 가르쳐 주는 기능인일 수 없습니다. 스승은 설명하는 사람이 아니라 보여주는 사람입니다.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길이 되는 사람입니다. 왜 그 길을 가야 하는지, 어떻게 그 길을 가야 하는지 자신의 삶을 통해서 증거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여러분들에게는 스승이라고 기억될 만한 분들이 계십니까? '가서 제자를 삼으라'시는 주님의 명령 앞에 어떻게 반응하는 삶을 살고 계십니까?
수업을 마친 어느 봄 날, 던즈와일러 교수님과 학생들이 주차장에 서서 담소를 나누었던 적이 있습니다. 지금보다 훨씬 더 영어를 못하던 시절, 교수님의 말씀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앞으로 나와 서 있다가 교수님의 그림자를 밟고 서 있던 것을 깨닫고, 뒤로 물러갔던 적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교수님의 길을 저도 걷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을 사랑합니다. 장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