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일교 대책활동을 벌였던 故 박준철 목사의 소천 이후 부인인 이영선 사모가 통일교대책협의회 사무총장으로 새롭게 임명됐다. 이번 결정은 이영선 사모가 사무총장 직을 맡아온 고인의 뜻을 이어가기 원했으며 통대협 임원들도 이같이 뜻을 모음에 따라 이 사모가 통대협 신임 사무총장으로 활동하게 됐다. 이영선 사모는 인터뷰에서 한국교회의 통대협에 대한 지원에 대해 감사의 뜻을 밝히는 한편, 통일교 척결을 위해 한국교회가 지속적으로 경각심을 갖고 기도와 물질로 후원해 줄 것을 요청했다.
-故 박준철 목사의 소천으로 한국교회의 통일교 대책활동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앞으로 통대협이 추진할 통일교 대책활동의 방향을 알려달라.
고인이 해 왔던 사역을 그대로 이어갈 것이다. 그리고 2년간 쌓아온 업적을 이어서 이제 한국교회 전체 차원에서 통일교 대책이 이뤄질 수 있도록 범위를 확산시킬 것이다.
먼저 '피스컵2003코리아'대회 저지운동을 계속 벌일 예정이다. 제2의 피스컵 대회가 2005년도에 있는데 12팀을 초청, 통일교 선전으로 이용할 것이다. 이를 저지하고 기독교인들을 참석하지 못하도록 적극적으로 피스컵의 실체를 알리고 반대운동을 확산시켜야 한다. 또 통일교 선전수단으로 초·중·고교를 이용하는 순결캔디 보급을 차단할 수 있도록 한다.
이와함께 통일교 합동결혼식 피해자 신고를 접수하고 집단 합동결혼식 저지운동도 펼칠 것이다. 고인이 계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용평스키장을 비롯해 통일교 제품 불매운동도 확산시킬 것이다.
규모적인 면에서도 한국교회의 더 큰 지원을 얻게 됐다. 지금 성남시에서는 매월 규탄대회를 교회별로 순회하며 개최하고 있는데 이를 전국적으로 확대해서 지역별 통일교 규탄대회를 열어야 하며 각 교단별로도 통일교 대책협의회를 조직, 범교단적인 통일교 대책이 이뤄지도록 추진하고 있다.
-故 박준철 목사의 통일교 대책활동으로 부채를 상당액수 안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재정적인 어려움에 대해서도 말해 달라.
고인이 통일교 정체를 폭로한 책 '빼앗긴 30년, 잃어버린 30년'이 재판으로 보급이 중단된 상황이어서 재고가 3000권 남아 있다. 또 그동안의 민형사재판에 의한 부채 6000만원이 있어 유족돕기운동을 한국교회가 전개해 주고 있다. 또 통일교대책협의회 후원회 운동도 추진해 더 강력한 통일교 대책운동을 펼칠 수 있도록 하겠다.
- 故 박준철 목사가 소천한지 한달채 되지 않았는데 사무총장으로 선임되는 등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다. 아직 슬픈 감정이 남아 있지는 않은가.
슬픈마음은 있지만 지금 슬퍼할 시간도 없다. 고인이 통일교 대책활동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기 원했기 때문에 바쁘게 움직여야 하므로 앉아서 회상에 잠길수 없는 상황이다.
-통일교에서 어떻게 나오게 됐나.
1970년 6월 통일교에 입교하여 고등학교 1학년 시절부터 문선명 집단에서 신앙생활을 31년간 하였다. 그리고, 1975년 1800쌍 합동 결혼식 때 고 박준철 목사를 만나 목회자 사모로 활동했다. 그러나 문선명 통일교 집단의 허구성을 깨닫고, 2001년 1월 9일, 문집단에서 박준철 목사와 같이 가족이 모두 탈퇴하였다.
통일교 탈퇴 후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식당에서 일하며 고 박준철 목사의 활동금을 지원하다가 생활이 너무 어려워 보육교사 수료 후 어린이집을 운영하면서 남편의 활동을 지원했다. 그러던 중 2003년 7월에 통일교대책협의회 사무간사로 일하던 막내딸이 과도한 업무로 루푸스라는 불치병으로 쓰러지면서 한양대학병원에 입원했고 다음달에 어린이집을 정리하고 직접 9월부터 통일교대책협의회 일을 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외부 활동은 고 박준철 목사가 해왔고 모든 업무 처리 등 내부 살림은 사무간사가 일해왔다. 앞으로 외부활동은 통대협 최재우 대표회장이 맡게 되며 나는 주로 내부적인 업무들을 진행할 것이다. 임원들과 같이 안과 밖으로 통일교대책협의회를 출실히 이끌어 나가겠다.
-남편과 자녀들이 모두 탈퇴할 수 있었던 것이 하나님의 축복으로 보인다. 가정을 버리고 혼자 탈퇴하는 경우도 있는가.
일반 교회의 경우 사모님은 목회자의 보이지 않는 후원자로 활동하지만 통일교의 경우 주로 부부가 동등된 위치에서 활동을 벌인다. 보통 부부 중 하나가 마음이 돌아서면 같이 움직일 것 같지만 가정을 두고 혼자 탈퇴하는 경우도 많다.
-故 박 목사가 최종 재판을 남겨두고 소천했는데 재판은 앞으로 어떻게 진행되나
'빼앗긴 30년, 잃어버린 30년'에 대한 민·형사 재판이 진행됐는데 민사는 승소했고 형사재판에서도 19번까지 진술을 마치고 유리한 판결을 앞두고 있다가 소천한 것이다. 지금까지의 진술들이 다시 무효로 돌아가서 매우 안타깝다. 이번 재판에서 증거확보를 위해 테이프 하나를 구하려고 일본에 가서 1천만원 사용하는 등 쉽지 않은 싸움들이었다.
-이영선 사모의 故 박 목사의 업적에 대한 평가를 듣고싶다.
고인은 일생을 희생적으로 산 것이다. 30년동안 모르고 문선명에게 충성을 하다 회개하고 기독교에서 3년동안 활동을 했는데 그 3년의 삶이 일생이 되었다. 그 기간동안 통일교의 실체를 알리고 대책을 촉구하는 지상 보도가 무려 2000여회였다. 자기 몸을 아끼지 않았다. 척추에까지 암세포가 번져서 병원에서 손쓰지 못할 몸상태가 되도록 활동했고 병실에 누워서 돌아간 그날까지도 통일교와 싸우고 앞으로의 통일교 대책을 걱정했다. 정말 목숨을 다 바친 것이다. 그래서 지금 한국교회가 고인을 순교자로 추대하는 것을 추진 중인데 매우 감사하다.
-마지막으로 한국교회의 통일교 대책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린다.
교회가 통일교에 대해서 경각심을 늘 갖고 있어야 한다. 통일교는 지금도 가정연합, 문화센터 등 건전한 사회단체와 같은 이름을 내 걸고 사회내에 깊이 진출해 있다. 실제로 어떤 피해자는 결혼정보회사 통해서 결혼을 했다가 그것이 통일교의 합동결혼식인 것을 알고 나온 경우도 있었다. 그런 통일교의 수법을 알려서 누구도 희생이 안되고 이용당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지금 각 교단별로도 통일교 대책을 하고 있지만 더 활발히 진행돼야 할 것이다. 합동총회는 자체내에 통일교 대책협의회가 구성돼 있다. 노회도 협조를 많이 해서 서로 돕고 경각심을 일깨우면서 통일교 대책에 나서야 할 것이다.
-故 박준철 목사의 소천으로 한국교회의 통일교 대책활동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앞으로 통대협이 추진할 통일교 대책활동의 방향을 알려달라.
고인이 해 왔던 사역을 그대로 이어갈 것이다. 그리고 2년간 쌓아온 업적을 이어서 이제 한국교회 전체 차원에서 통일교 대책이 이뤄질 수 있도록 범위를 확산시킬 것이다.
먼저 '피스컵2003코리아'대회 저지운동을 계속 벌일 예정이다. 제2의 피스컵 대회가 2005년도에 있는데 12팀을 초청, 통일교 선전으로 이용할 것이다. 이를 저지하고 기독교인들을 참석하지 못하도록 적극적으로 피스컵의 실체를 알리고 반대운동을 확산시켜야 한다. 또 통일교 선전수단으로 초·중·고교를 이용하는 순결캔디 보급을 차단할 수 있도록 한다.
이와함께 통일교 합동결혼식 피해자 신고를 접수하고 집단 합동결혼식 저지운동도 펼칠 것이다. 고인이 계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용평스키장을 비롯해 통일교 제품 불매운동도 확산시킬 것이다.
규모적인 면에서도 한국교회의 더 큰 지원을 얻게 됐다. 지금 성남시에서는 매월 규탄대회를 교회별로 순회하며 개최하고 있는데 이를 전국적으로 확대해서 지역별 통일교 규탄대회를 열어야 하며 각 교단별로도 통일교 대책협의회를 조직, 범교단적인 통일교 대책이 이뤄지도록 추진하고 있다.
-故 박준철 목사의 통일교 대책활동으로 부채를 상당액수 안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재정적인 어려움에 대해서도 말해 달라.
고인이 통일교 정체를 폭로한 책 '빼앗긴 30년, 잃어버린 30년'이 재판으로 보급이 중단된 상황이어서 재고가 3000권 남아 있다. 또 그동안의 민형사재판에 의한 부채 6000만원이 있어 유족돕기운동을 한국교회가 전개해 주고 있다. 또 통일교대책협의회 후원회 운동도 추진해 더 강력한 통일교 대책운동을 펼칠 수 있도록 하겠다.
- 故 박준철 목사가 소천한지 한달채 되지 않았는데 사무총장으로 선임되는 등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다. 아직 슬픈 감정이 남아 있지는 않은가.
슬픈마음은 있지만 지금 슬퍼할 시간도 없다. 고인이 통일교 대책활동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기 원했기 때문에 바쁘게 움직여야 하므로 앉아서 회상에 잠길수 없는 상황이다.
-통일교에서 어떻게 나오게 됐나.
1970년 6월 통일교에 입교하여 고등학교 1학년 시절부터 문선명 집단에서 신앙생활을 31년간 하였다. 그리고, 1975년 1800쌍 합동 결혼식 때 고 박준철 목사를 만나 목회자 사모로 활동했다. 그러나 문선명 통일교 집단의 허구성을 깨닫고, 2001년 1월 9일, 문집단에서 박준철 목사와 같이 가족이 모두 탈퇴하였다.
통일교 탈퇴 후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식당에서 일하며 고 박준철 목사의 활동금을 지원하다가 생활이 너무 어려워 보육교사 수료 후 어린이집을 운영하면서 남편의 활동을 지원했다. 그러던 중 2003년 7월에 통일교대책협의회 사무간사로 일하던 막내딸이 과도한 업무로 루푸스라는 불치병으로 쓰러지면서 한양대학병원에 입원했고 다음달에 어린이집을 정리하고 직접 9월부터 통일교대책협의회 일을 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외부 활동은 고 박준철 목사가 해왔고 모든 업무 처리 등 내부 살림은 사무간사가 일해왔다. 앞으로 외부활동은 통대협 최재우 대표회장이 맡게 되며 나는 주로 내부적인 업무들을 진행할 것이다. 임원들과 같이 안과 밖으로 통일교대책협의회를 출실히 이끌어 나가겠다.
-남편과 자녀들이 모두 탈퇴할 수 있었던 것이 하나님의 축복으로 보인다. 가정을 버리고 혼자 탈퇴하는 경우도 있는가.
일반 교회의 경우 사모님은 목회자의 보이지 않는 후원자로 활동하지만 통일교의 경우 주로 부부가 동등된 위치에서 활동을 벌인다. 보통 부부 중 하나가 마음이 돌아서면 같이 움직일 것 같지만 가정을 두고 혼자 탈퇴하는 경우도 많다.
-故 박 목사가 최종 재판을 남겨두고 소천했는데 재판은 앞으로 어떻게 진행되나
'빼앗긴 30년, 잃어버린 30년'에 대한 민·형사 재판이 진행됐는데 민사는 승소했고 형사재판에서도 19번까지 진술을 마치고 유리한 판결을 앞두고 있다가 소천한 것이다. 지금까지의 진술들이 다시 무효로 돌아가서 매우 안타깝다. 이번 재판에서 증거확보를 위해 테이프 하나를 구하려고 일본에 가서 1천만원 사용하는 등 쉽지 않은 싸움들이었다.
-이영선 사모의 故 박 목사의 업적에 대한 평가를 듣고싶다.
고인은 일생을 희생적으로 산 것이다. 30년동안 모르고 문선명에게 충성을 하다 회개하고 기독교에서 3년동안 활동을 했는데 그 3년의 삶이 일생이 되었다. 그 기간동안 통일교의 실체를 알리고 대책을 촉구하는 지상 보도가 무려 2000여회였다. 자기 몸을 아끼지 않았다. 척추에까지 암세포가 번져서 병원에서 손쓰지 못할 몸상태가 되도록 활동했고 병실에 누워서 돌아간 그날까지도 통일교와 싸우고 앞으로의 통일교 대책을 걱정했다. 정말 목숨을 다 바친 것이다. 그래서 지금 한국교회가 고인을 순교자로 추대하는 것을 추진 중인데 매우 감사하다.
-마지막으로 한국교회의 통일교 대책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린다.
교회가 통일교에 대해서 경각심을 늘 갖고 있어야 한다. 통일교는 지금도 가정연합, 문화센터 등 건전한 사회단체와 같은 이름을 내 걸고 사회내에 깊이 진출해 있다. 실제로 어떤 피해자는 결혼정보회사 통해서 결혼을 했다가 그것이 통일교의 합동결혼식인 것을 알고 나온 경우도 있었다. 그런 통일교의 수법을 알려서 누구도 희생이 안되고 이용당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지금 각 교단별로도 통일교 대책을 하고 있지만 더 활발히 진행돼야 할 것이다. 합동총회는 자체내에 통일교 대책협의회가 구성돼 있다. 노회도 협조를 많이 해서 서로 돕고 경각심을 일깨우면서 통일교 대책에 나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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