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굴된 사본들

이곳에서 발견된 문서로는 공동생활의 규칙, 말세론, 금욕주의, 에스더서를 뺀 모든 구약의 사본들이 흩어져 있던 39개의 동굴에서 발견됐다. 사해 문서(Dead Sea Scrolls, DSS), 사해 두루마리 또는 사해 사본은 히브리 성경을 포함한 900여 편의 다양한 종교적인 문서들을 아우른다.

쿰란

1947년에서 1956년경까지 사해 서쪽 둑에 있는 와디 쿰란(사해의 북서쪽 해변에 있는 고대 키르벳 쿰란 근처) 주변과 11개의 동굴들에서 발견되었다. 이들의 연대는 기원후 100년 이내로 올라가기 때문에 엄청난 종교적, 역사적 가치가 있다. 현재 대부분의 문서는 예루살렘 박물관의 성경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탄소 측정법과 문서에 대한 분석, 글씨체에 의해 사해 문서들은 대략 기원전 2세기부터 기원후 1세기 사이에 쓰인 것으로 보인다. 대선지자 이사야 문서는 기원전 335년에서 기원 후 107년 사이의 것으로 추정한다.

사해 사본 이외에는, 십계명이 담겨 있는 이집트의 Nash 파피루스 정도가 이에 비견할 만한 오래된 순서였다. 비슷하게 쓰인 문서들이 근처, 특히 마사다 요새에서 많이 발견되었다. 일부 문서는 파피루스에 쓰여 있고, 많은 문서들이 갈색 동물 가죽 위에 쓰여 있다. 탄소 계열의 재료로 만들어진 잉크로 새의 깃털 촉으로 쓰였다. "구리 두루마리"라 이름 붙인 문서는 종이처럼 얇은 구리판에 기록되어 있다.

사해 문서 가운데 80%~ 85%는 각각 고전(또는 성서) 히브리어, 사해 문서 히브리어와 원시 탄 나이트 히브리어로 불리는 3개의 히브리어 방언들로 쓰였다. 일부 문서는 아람어와 코이네 그리스어로 쓰이기도 했다.

◈동굴과 주거지

쿰란

성전 문서가 제11동굴에서 발견 되었으며 이는 가장 긴 두루마리이다. 현재 남아 있는 부분의 길이는 8.148미터이다. 내용으로 미루어보았을 때 원래의 길이는 8.75미터로 추정된다. 이 지역의 발견은 1951~1956년의 최근의 일이며 폐허속의 주 건물은 폭 27미터 길이 44미터 정도로써 석고가 거칠게 발라져 있는 큰 돌로 만들어진 것이다. 북쪽에는 수비 탑이 있으며 부엌과 붙어있는 식당에서는 1,000여 점의 토기가 발견되었다. 주 건물 주변에는 옹기장이집, 방앗간, 염색집, 7개의 저수 탱크 등이 발견되었으며, 의자, 책상, 말라버린 잉크가 담겨진 잉크 스텐드가 있는 기록실이 발견된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쿰란 주변 11개 동굴에서 발견된 사해 사본들 가운데 두루마리 형태로 잘 보존되어 있는 것은 불과 10개이며 나머지는 수없이 많은 조각들로 발굴되었다. 이들 중 약 1/4이 구약사본이며, 나머지는 구약주석, 신학서, 쿰란 공동체의 규율집들로서 대부분 양피가죽이나 파리루그위에 고대 히브리어로 적어 놓은 것들이다. 사해구약사본은 현존하는 구약사본들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며, 에스더서만을 제외하고는 구약의 모든 책들이 전부 포함되어 있다.

◈쿰란의 오늘날

오늘날 순례객들이 주로 보는 동굴들은 39개 이상의 동굴 중 4동굴(길이 약 10미터)이라고 이름이 붙은 곳이다. 이 동굴에서 이사야서 1장에서 66장까지 발견되었다(지금은 예루살렘에 있는 이스라엘 박물관에 있는 책의 전당이라는 곳에 전시되어있다). 속속들이 발견된 문서들에 의해 쿰란 공동체에 대한 것이 밝혀지고 우리가 생명으로 여기는 구약 사본들이 원본에 가장 가까운 상태로 발견되어진 것이다. 그들은 결국 보배를 감춘 사람들이 되었다. 성경은 보배보다 더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금 읽고 있는 성경은 마소라 계통의 사본(기원 후 11세기에 필사된 레닌그라드 사본)을 기초로 한다. 하지만 쿰란 사본들은 1005년 레닌그라드 사본보다 1,000년이나 앞선 것으로 원본과 가장 가까운 사본인 것이다. 이곳에서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이곳을 처음 발굴한 수케닉 교수가 두루마리 중 하나를 베들레헴에 가지고 가서 보관하였다 한다. 하지만 보관된 사본은 2주만에 썩어 버렸다고 한다. 2000년을 버텨왔던 사본이 단지 2주만에 썩어버린 것은 환경의 차이다.

쿰란

쿰란이 위치한 사해 지역은 해저 405미터이고 베들레헴은 해발 800미터 지역이다. 쿰란은 광야로서 보잘것 없는 곳이었지만 성경을 보존 할 수 있는 환경을 가졌고 베들레헴은 풍요로운 빵집이었지만 성경을 보관할 수 없는 환경이었다. 하나님은 광야의 외치는 자들을 통해 쿰란에서 구약을 필사하게 하셨고, 2000년을 보관케 하시다가 이스라엘의 독립과 성경의 보존술이 발달한 현대에 와서 성경을 후세들에게 선물한 것이다. 역시 이번에도 환경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말씀대로 사는 삶이 중요한 것임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된다. 자기가 살고 있는 곳에서 말씀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다 보면 언젠가는 하나님이 귀하게 들어쓰실 날이 오는 것이다. 광야의 외치는 자들을 오늘도 쿰란에서 만나 볼 수 있다. 이곳에 사해 화장품을 판매하는 매장이 있고, 순례객들은 4동굴 앞에서 '빛의 사자들이여 어서가자' 찬송을 부르면서 이곳에서 살았던 사람들처럼 척박한 환경에서도 오직 주만 바라보자던 다짐을 무너뜨리고 진흙팩과 크림들을 사기 위해 정신없다. 한순간에 빛의 사자들이 어두움의 자식들이 되고 있다. 역사적 아이러니도 아니고 그저 사람들이 사는 세상이 그렇다는 것이다.

◈성경의 번역과정

구약은 히브리어와 에스라, 다니엘, 예레미야서 일부는 아람어로 기록되었다. 신약은 헬라어와 일부에서 아람어가 발견되어진다. 바벨론 포로 이후 디아스포라된 유대인들에게 당시 지배 언어인 헬라어로의 번역본이 필요하게 되었다. 따라서 주전 2세기에 구약을 헬라어로 번역한 70인경이 나왔다.

한편 유대인들의 통용어였던 아람어로 구약이 번역되었는데 이것은 주후 2세기에 등장한 아람어 탈굼이다. 이 시기에 헬라어로 된 신약이 수리아어로 번역되었다. 또한 이 시기에 신약이 라틴어로 번역되기도 하였다. AD 400년에 제롬이 교황의 위임을 받아 신, 구약을 라틴어(벌게이트역: 공통이라는 뜻)로 번역하였고 이 성경이 중세교회의 공식성경이 되었다. 중세시대에는 약 33개의 언어로 번역이 되었고, 주후 7세기에 고대 영어본이 나왔다.

14세기에 위클리프는 중세 영어로 성경 전체를 처음으로 번역하였다. 1611년에 킹 제임스판이 출간되었고, 잇따라 RSV, NASB, NIV, NEB등이 나왔다. 1534년 루터에 의해 현대 독일어로 번역되었다. 그후 19세기에는 선교의 관심과함께 성경이 선교지 언어로 번역되기 시작하였다. 1823년에 중국어 완역판이 모리슨에 의해 이루어졌고, 1879년 브라운에 의해 신약이 일본어로 번역되었다. 1887년 존 로스에 의해 신약이 한글로 번역되었고, 1906년에 가서야 성서위원회에 의해 공인된 신약전서가 나왔다. 1910년에 구약이 이어 번역되었고, 1911년에 신, 구약 성경이 합본으로 출간되었다. 1937년 전면 개정되어 나온 성경이 “개역성경”이다. 현재는 현대인의 성경 등 새로운 물결을 타고 성경이 젊은 언어, 현대 언어로 번역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