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민 목사(팰리세이드교회)
김성민 목사(팰리세이드교회)

누구나 자라면서 주위 사람들에게 얻은 별명이 있을 것이다. 나도 어릴 때 주위 사람들이 붙여준 별명이 있었는데 듣기에 조금 거북했지만 “썩은 동태 눈깔”이었다. 그때 나는 너무 어려서 동태가 썩은 것을 본 적도 없었지만, 주위 사람들이 나를 보면서 사랑스럽다는 표현을 그렇게 했던 것 같다. 눈동자의 초점이 확실하지 않아서 일수도 있고, 눈동자 자체가 잘 보이지 않아서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사람들이 그 말을 하면서 나를 많이 귀여워 해 주었다는 것에 위로를 받았다. 그런데 자라나면서 그 말이 왜 생겨났는지 알게 되었다. 그 이유는 아버지를 닮아 눈이 많이 쳐졌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눈꺼풀이 많이 내려와 있었고, 사람들 보기에 두꺼워 보여 자연히 눈동자가 확실하게 보이지 않은 탓이었다. 하지만 “썩은 동태 눈깔”이라는 이름표가 벌써 붙은 탓에 나는 어떤 방향으로 눈을 크게 떠도 결국 “썩은 동태 눈깔”이었다.

그러다 보니 그것이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불렀던 애칭이고, 그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던 별명이었지만 나에게는 조금씩 행복하지 않은 말로 들리기 시작했다. 그 별명이 그리 자랑스럽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그 말을 듣기 싫어서 눈을 크게 뜨려고 했던 때도 있고, 가끔씩 손으로 눈을 치켜 올려보는 습관도 갖게 되었다. 그러면서 자연히 나의 몸에서 가장 부끄러운 부분이 눈동자가 되어 갔던 것이다. 분명한 사람이 되고 싶어 했던 때도 있었고, 눈을 조금 더 날카롭게 떠서 똑똑한 척 하고 싶은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시간이 지나며 나에게 그리 큰 영향을 주지 않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별명과 같은 큰 아픔이 되지 않을 호칭이라면 괜찮겠지만, 우리가 주고받는 수많은 말 가운데 서로에게 오랫동안 깊은 상처를 줄 수 있는 것들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를 향한 표현이 더욱 긍정적이고 사랑이 흠뻑 담긴 것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빌립보에 보낸 사도 바울의 편지를 통하여 서로가 서로에게 얼마나 힘이 될 수 있는 관계인지를 알게 하신다.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 (빌립보서 1장 9-11절) 이 말씀을 보면 지금부터 영원까지 늘 행복하기를 바라는 내용이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우리가 묵상해도 힘이 되는 말씀이 아닌가? 내가 하는 말이 아무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하여도 상대방 가슴에 깊은 상처를 남길 수 있는 단어라고 한다면 하나님 사랑을 흠뻑 받은 나의 입에 결코 담지 말아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하나님은 나를 이 세상에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사랑으로 사랑하신다는 것을 셀 수 없는 많은 비유와 단어들로 표현하시지 않았는가? 그 중에 가장 귀한 말씀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다는 말씀이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요한복음 3장 16절을 묵상 할 때에 위로를 받고, 확신하며, 또 다시 힘을 얻어 살아가지 않는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사는 성도는 서로의 가슴에 오래 남아 있을 사랑의 말, 위로의 말, 생명의 말을 더 많이 하고 살아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성도의 변화되어가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사랑의 말로 서로를 위로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살 때 복음 전파는 저절로 되리라 믿는다.